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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인 대중공사’가 성공하려면

우스개로 시작하고 싶다. 대학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그 대학 어느 학과 교수들이 두 파로 나누어져 대화조차 단절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연구실은 같은 층에 있었다. ‘앙숙’인 교수들이 연구실과 강의실을 오가며 마주칠 때마다 ‘지옥’이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학생들이다. 어느 교수 연구실에 갔다가 다른 교수 눈에 띌까 걱정이다.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대학원생들의 ‘고충’은 더 컸다.

들머리에서 ‘어느 대학’이라고 썼지만, 그런 일은 어느 대학, 어느 학과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대학에 그런 학과가 적어도 하나 이상은 있다. 대학의 고갱이가 ‘진리 탐구’이기에 학자들의 ‘파벌 다툼’은 세인의 조롱거리다. 기실 부끄러운 일 아닌가. 가장 ‘학식’ 깊다고 알려진 교수들이 저마다 아상에 사로잡힌 꼴이다. 그런데 교수 사회만이 아니다. 아상에 잡혀 아귀다툼 벌이는 세상을 정화해가야 할 스님들에게도 어금버금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모든 스님이 파벌을 형성하고 있다고 보편화할 뜻은 전혀 없다. 하지만 편견과 이해다툼에서 가장 자유로워야 마땅한 스님들조차 아상이 또렷하게 나타날 때면 하릴없이 쓸쓸하다. 스님들 사이의 갈등만 두고 이르는 말이 아니다. 단순화해서 어떤 재가불자를 가상해 예를 들어보자. 그는 ㄱ스님도 좋고 ㄴ스님도 좋다. 하지만 ㄱ스님과 ㄴ스님 사이는 좋지 않다. 그랬을 때 재가불자는 그 ‘사이’에서 몹시 불편할 수밖에 없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재가불자를 겨냥해 ‘배신’이나 ‘배은’ 따위로 무람없이 험담하는 스님들을 보았기에 더 그렇다.

스님들 사이가 원만하지 못함으로써 마음고생 하는 재가불자들이 늘어나는 풍경은 꼴사납다. 어디 재가불자 뿐이겠는가. 종단의 종무원들 심경도 십분 짐작할 수 있다. 종무원들에게 무시로 ‘줄서기’를 강요하는 스님은 과연 몇몇 뿐일까. 처지는 다르지만 교계언론도 크게 벗어나있지는 않은 듯하다. 어떤 신문, 어떤 기자는 어느 쪽이라는 식의 이야기가 나돌고 있잖은가.

명토박아 둔다. 스님들 사이의 갈등을 재가자들에게 옮기지 말아야 옳다. 종무원이나 교계언론인들에게는 더 그렇다. 종무원이나 교계언론인이 특정 스님에게 ‘줄’을 서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무릇 언론인이나 종무원은 언제나 시시비비를 가려야 옳다. 언론인이나 종무원이 특정 스님이 무슨 언행을 하든 따르기만 한다면, 바람직한 언론인도, 유능한 종무원도 아니다. 모든 스님이 장단점 있고 잘잘못이 있다. 그 스님이 권력이나 부, 명예를 지니고 있을 때, 시시비비를 그때그때 가려야 할 소임이 교계 언론에 있고 재가불자들에 있다.

물론, 그 문화가 뿌리 내리려면 교계 언론이나 재가단체 스스로 ‘정파’로부터 독립해 사안마다 사실에 근거해 시시비비를 섬세하게 가려가야 한다. 종무원들 또한 소신이 또렷해야 옳다. 하지만 조건부터 갖출 필요가 있다. 교계 언론인들에게 보도와 관련해 광고를 비롯한 물질적 압박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종무원들의 신분도 제도적으로 확실히 보장해야 마땅하다.

말이 좋아 사부대중이지 사부 가운데 ‘비구 스님들’의 힘이 지배적인 것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명료하다. 비구 스님들부터 그 ‘지배적 힘’을 내려놓아야 한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사부대중의 평등을 구현해가는 데 솔선하는 스님이 앞으로는 더욱 존경받을 수밖에 없다. 신자들과의 수평적 소통은 현대 종교 커뮤니케이션의 흐름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대표적 보기다. 기실 교계 언론인과 종무원들은 물론, 재가불자들을 의도적이든 아니든 줄 세워 보는 행태는 아상에 사로잡혀 있다는 자기 폭로에 지나지 않는다.

마침 종단은 ‘2030 조계종 100인 대중공사’를 기획하며 ‘사부대중이 동참한 가운데 투명하게 대화와 토론을 통해 지혜의 뜻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대중공사에 앞서 종단 스님들의 가슴이 더 열리기를 기대한다.

손석춘 건국대 교수 2020gil@hanmail.net

[1272호 / 2014년 12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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