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로 돌아간 그는 실제로 얼마 전 교황청 내 보수 강경파의 선두인 레이먼드 버크 추기경(66)을 세속국가의 대법원장에 해당하는 교황청 대심원장 직에서 해임하고, 추문에 휩싸인 고위 성직자를 구금하는 등 구체적인 개혁조치들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 교회에도 이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지난 11월 초 마산교구는 “교구장이 본당을 방문할 때 꽃다발을 준비하지 말고, 현수막도 달지 말고, 줄 서서 환영하지도 말고, 밥 먹을 때 따로 상을 차리거나 다른 반찬을 하지 말라”고 발표하였는데, 내게는 이 말에 앞서 “예산은 줄이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자선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마산교구의 선언보다도 이 발표가 훨씬 더 신선하였다. ‘교구장 신부가 평신도와 밥상을 함께 하겠다’는 말에 아주 많은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천주교회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희망을 가져도 될까. 그랬으면 좋겠지만, ‘순풍 뒤에는 늘 역풍이 불어왔다’는 사실을 아주 짧은 한국 교회역사가 보여준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한국 교회도 변화 요구에 부응하여 우리말로 의식을 진행하게 되었고 “보통 신자들도 ‘중학교 졸업 정도의 수준으로 이해할 수 있는 현대의 우리말로 옮겨져’ 있는 성서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성서에 대한 접근 능력 면에서 평신도는 사제와 완전히 동등해진 것이다.”
그러나 로마교황청이 다시 보수화되면서 사제와 평신도 사이의 넘지 못할 벽은 오히려 더 견고해졌다. 실례로 “평신도로 신학박사학위를 받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최근 신학대학의 잇따른 신설로 인해 교수 부족이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신학교의 전임교수직은 이들에게 전혀 개방되지 않고 있다.”
이밖에도 이른바 진보적인 평신도 단체들에 대한 주교회의의 활동정지 명령이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바탕을 둔 교회쇄신을 강하게 주장해온” 정양모·서공석·이제민 신부가 “교황청의 두 차례 경고서한에 따라 한국 주교회의와 해당 교구장의 징계”를 받은 일 등은 현재 프란치스코 교황이 불러일으키고 있는 변화의 앞날이 그리 순탄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민 신부는 “한국 천주교회는 ‘위로는 (교황청을 향해) 굽실거리고 아래로는 군주적인 교회’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고 혹평하였다는데, 과연 현재 교회 권력에서는 이 비판에 대해 자신 있게 ‘아니다’고 부정할 수 있을까.
한국 천주교회는 1971년의 주교대의원 총회에서 “남에게 정의(正義)를 말하려는 자는 먼저 자기의 눈에 정의로워야 한다”고 천명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 천주교회는 바깥세상뿐 아니라 교회 내부의 정의를 가꾸고 키우는 일에도 진력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진정한 정의와 평화의 구현이 아닐까.
이병두 문화체육관광부 종무관
[1272호 / 2014년 12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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