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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눈먼 자

우리에게는 감각기관이 있다. 그 가운데 사물을 보는 기관을 시각기관이라고 한다. 이 시각기관이 기관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우리는 사물을 보지 못한다. 그러한 장애를 지닌 사람을 맹인이라고 한다. 맹인은 다만 사물을 보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그 만큼 불편할 뿐이다. 그것 뿐이다.

부처님 당시 아누룻다 존자란 분이 계셨다. 이 분은 잠을 자지 않고 수행에 정진한 끝에,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지만 눈이 멀고 말았다. 하지만 이 분은 천안제일(天眼第一)이란 능력을 더불어 얻게 되었다. 천안은 육안으로는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능력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모든 것을 관통하여 보는 능력과 뭇 생명이 죽은 뒤에 어디에 태어나는지를 아는 신통력을 말한다. 말하자면 아누룻다 존자는 시각기관으로서의 눈인 육체의 눈은 멀었지만, 지혜의 눈을 얻은 것이다. 그러면 육체의 눈은 멀쩡하지만 지혜가 없는 눈과, 육체의 눈은 멀었지만 지혜의 눈을 갖춘 사람 가운데 누가 진짜 눈먼 사람인가. 이에 대한 가르침이 앙굿따라 니까야에 나온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비구들이여, 누가 눈먼 자인가. 비구들이여, 이 세상에 어떤 사람은 얻지 못한 부를 얻게 하고 얻은 부를 증가시키는 그러한 눈도 갖추고 있지 않으며, 착하고 건전한 것과 악하고 불건전한 것을 알고, 비난 받을 만한 것과 비난받지 않을 만한 것을 알고, 저열한 것과 수승한 것을 알고, 어둡고 밝은 상대적인 것을 아는 그러한 눈도 갖추고 있지 않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은 사람이 눈먼 사람이다.”(An   ·gutta Nika-ya, Andhasutta 중에서)

경전에서 부처님께서는 얻지 못한 부를 얻고 얻은 부를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눈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먼저 언급하고 계신다. 이 때 부를 얻고, 증가시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속이고, 빼앗고,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여 부를 얻거나 늘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른 안목을 갖추고 바르게 노력하여 부를 얻어야 하고, 또 늘릴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착하고 건전한 것과 악하고 불건전한 것을 구분할 줄 아는 것, 또한 비난 받을 만한 것과 비난받지 않을 만한 것을 아는 것, 저열한 것과 수승한 것을 아는 것, 어두운 것과 밝은 것을 아는 ‘눈’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바로 눈먼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상대적인 가치에서 버려야 하고, 취해야 할 것을 아는 사람은 눈을 갖춘 사람이며, 그렇지 못하면 육체의 눈은 멀쩡하더라도 눈 먼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동안 회피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선택이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결정된다. 결정된 삶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선택에 의해 삶의 모습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 만큼 선택을 잘해야 한다. 그리고 선택한 순간 그 결과는 내가 짊어져야 한다. 그것도 마땅히. 이것이 바로 업인 것이다. 업을 회피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내가 선택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항상 갈림길에 놓인 것이 인생이다. 이것은 어린아이 다르고, 어른이 다른 것이 아니다. 태어난 순간부터 늘 갈림길에서 우리는 선택을 해 왔다. 그 선택이 잘못된 선택일 때도 있었고, 탁월한 선택이었던 때도 있다. 때로는 손해인 듯하지만 선택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기꺼운 마음으로 선택하고 후회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경문의 가르침과 같이 상대적 가치 가운데 어떤 것이 보다 가치있는 것이고, 지향해야 할 것인지를 아는 ‘눈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앞 못 보는 맹인일 따름이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1273호 / 2014년 12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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