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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메아리와 한 판 두는 바둑영화

메아리이야기가 금강경에 많이 나온다. 메아리는 산골짜기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강의할 때 듣는 사람들의 반응도 메아리이고 운동선수가 묘기에 가까운 솜씨로 골을 성공시키거나 헛발질 했을 때 나오는 관중의 반응도 메아리이다. 메아리없는 강의나 메아리없는 운동경기는 생각만해도 팍팍해지는 느낌이 든다.

실체 있고 없음은 자성 없으니
메아리같은 생각 집착 말아야
인생은 드라마틱한 영화 같아
실감나고 씩씩하게 진행시켜야

골짜기가 메아리를 울리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메아리는 사실 실체가 없다. 그런데 그 실체없는 메아리가 거꾸로 사람을 잡기도 한다.

인터넷 매체에 올린 글에 대한 댓글도 일종의 메아리인데 격한 댓글은 글쓴 사람의 속을 엄청나게 강한 강도로 긁기도 한다. 귀에 돌아오는 것은 물론 눈에 돌아오는 모든 것들도 사실은 유형의 메아리일 뿐이다.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들이 모두 유형메아리이다. 감촉으로 와닿는 것도 마찬가지로 메아리이다.

원효 스님은 발심수행장에서 “메아리가 웅웅 도와주는 바위동굴로 염불당을 삼을지어다 [助響巖穴 爲念佛堂]”하고 말했다. 메아리를 긍정적으로 활용한 예라고 할 것이다.

“진리라고 집착하지도 말고 진리 아닌 것이라고 집착하지도 말라”고 한 금강경의 구절에 대해서 부대사는 다음과 같이 게송을 썼다.

有無無自性 (유무무자성)
妄起有無情 (망기유무정)
有無如谷響 (유무여곡향)
勿着有無情 (물착유무정)

실체가 있으니 없느니 하는 것은 자성이 없거늘 / 허망하게 있네 없네하는 생각을 일으키는 구나 / 있다 없다하는 것은 골짜기의 메아리와 같아서 실체가 없으니 / 있다고하는 생각과 없다고 하는 생각 둘다에 집착하지 말지어다.
 
영화화면에 온갖 장면이 펼쳐진다. 우주도 펼쳐지고 옷입은 사람도 나오고 안입은 사람도 나오고 입다만 사람도 나온다. 술주정뱅이도 나오고 술병도 나온다. 곤충도 나오고 바다도 나오고 해와 달도 나온다. 허리 아픈 사람, 다리 아픈 사람, 다리 부러진 사람도 나온다. 허나 영화상영이 끝나면 화면에 아무것도 없다. 거대한 파도와 셀 수없이 많은 별들 뿜어내던 빛도 다 사라져버린다. 강물은 어디로 다 흘러가버린 것일까.

우리 인생도 실시간으로 펼쳐지고 있는 입체총천연색실감영화다. 극장에서 보는 영화보다 한층 더 실감나는 영화이다. 극장영화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눈으로 밖에 볼 수 없지만 인생영화에서는 먹을 수도 있고 음식의 향기에 취하기도 하고 과식한 나머지 배탈이나서 자연으로 달려가기도 한다.

연말이면 늘 그렇게 느껴지지만 올 한해도 꿈결처럼 많이 흘러갔다. 연말에 갑자기 드라마틱한 장면들이 펼쳐지고 있어서 영화가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는 없지만 하여간 지켜볼 일이다. 현실감에 충실하면 영화인 것을 잊어버리고 그저 지나가는 한편의 영화이려니하는 생각이 강하면 현실감없는 사람이 돼버린다. 이왕 영화라면 멀뚱멀뚱 지켜볼 일이 아니라 실감나게 씩씩하게 영화를 진행시킬 일이다.

감독이 누구인지 몰라도 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실은 우리 모두가 이 실시간인생영화의 감독이고 극장주이고 작가이고 배우이고 조연출이기도 하고 조감독이기도 하고 주연배우이면서 동시에 단역배우이기 때문이다.

‘오는 중이오, 가는 중이오?’하는 질문에 ‘쉬는 중이다’하고 시원하게 대답하신 경봉 스님께서는 한판의 연극 멋들어지게 펼치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오청원 선생은 하산일국기(河山一局碁)라는 붓글씨를 부채에 썼다. 상생을 통해 완생을 향해가는 한판의 우주바둑을 두고 간 분이다.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273호 / 2014년 12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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