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침묵자기
45. 침묵자기
  • 인경 스님
  • 승인 2014.12.08 14: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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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규정하는 순간, 다른 무엇으로 변질 돼

무엇이 나인가? 무엇을 가리켜서 나라고 할 것인가?

무언가 규정하고 붙잡는 순간
그것은 그곳에 존재하지 않아
끊임없이 경쟁하는 우리 삶 속
진실한 나는 그 실체가 없어


이런 질문은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한번쯤은 자신에게 물어보았던 질문이다. 청소년기가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만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이런 질문은 인간만이 자신에게 던진다고 한다. 바로 이런 능력으로 인하여 인간은 생태계로부터 독립된 고유한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게 되었다. 또 이런 질문은 모든 문화적 전통에서 한결같이 발견되는 문제이다. 아마도 이런 질문은 인류가 생존하는 한 계속될 것이라고 본다. 이것은 초기불교 경전에서도 자주 거론되는 질문이고, 동북아시아 선종에서도 쉽게 발견되는 질문이다.

어떤 제자가 스승을 찾아가서 물었다. 무엇을 나라고 하는지를. 그러자 스승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제자는 돌아갔다가 재차 찾아와 물었다. 무엇이 나인지를. 그러나 스승은 여전히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제자는 실망하여 다른 스승을 찾아 떠날까를 생각했다. 그래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찾아가서 물었다. 무엇을 나라고 하는지를. 마침내 스승은 대답했다. 그것은 바로 ‘침묵’이라고. 나는 너에게 잘 말해주지만, 너가 그것을 잘 알지를 못한다고.

침묵. 무엇이 침묵일까? 이것을 언어로 설명이 가능할까? 눈이 내리면 산천이 하얗게 가득하다. 아이들은 미끄럼을 따면서 동네방네 소란스럽다. 이런 모두가 다 침묵이 아닌가? 이런 것들이 모두 나라면 이해가 될까? 우리는 끊임없이 논리적인 언어를 통해서 세상을 이해한다. 침묵도 다시 언어적인 해석을 해야 할 지경이다.

여기에 장미꽃이 있다. 하얀 종이 위로 던져진 겨울 장미이다. 무엇을 장미라고 할 것인가? 꽃잎인가? 녹색의 잎인가? 꽃받침인가? 이런 것이 모두 아니라면 무엇을 장미꽃이라고 할까? 어느 것도 모두 다 장미가 아니라면 무엇이 장미인가?

그러면 무엇이 나인가? 몸이 나인가? 몸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 어린 시절과 현재 그리고 먼 미래의 몸이 있다. 어느 몸을 나라고 할 것인가? 느낌이나 생각은 어떤가? 하루에도 수없이 바뀐다. 그런 것들이 나인가? 하나하나가 모두 나라면 나는 수없이 많은 개수로 나누어진다. 갈망은 어떤가? 무엇인가를 원하는 것이 나인가? 이것 역시 마찬가지로 한 가지로 결정할 수가 없다. 무엇을 나라고 할 것인가? 무엇인가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나인가? 하지만 주체적인 결정도 자세히 보면 결국은 주변의 환경적 영향이 크게 자리 잡고 있음을 본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인가? 나라고 할 만한 그 무엇도 없다. 나라고 규정하는 순간에 그것은 다른 무엇으로 변질되어서 다른 무엇이 되어 있다. 흐르는 동일한 물속을 두 번 걸어갈 수 없듯이, 우리는 그것을 허공처럼 잡을 수가 없다. 다만 그것은 흐름이고, 인연이며, 침묵이고, 바탕으로 그 자체로 존재할 뿐이다. 별도로 그것을 정의하거나 붙잡을 수가 없다. 규정하고 붙잡는 순간에 그것은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혜능은 대유령까지 쫓아온 혜명에게 ‘선도 생각하지 않고 악도 생각하지 않을 때, 그대의 본래면목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 우리는 끊임없이 선과 악을 구별하고 서로 논쟁을 한다. 좋음과 싫음, 옳음과 그름 등등으로 양분되어서 서로를 공격 한다. 바둑을 할 때도 흑백으로 나누어서 영토를 확보하기 위해서 싸운다. 대혜는 이참정과 조대제가 바둑 두는 것을 보다가 흑백을 쓸어버리고는 ‘자, 흑백으로 나누어지기 전에 바둑돌을 어디에 놓을 것인가?’ 질문을 했다.

우리의 삶은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착하고 악하고, 예쁘고 추하고, 긍정과 부정으로 분열되어서 서로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치열하게 경쟁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인연에 따라서 내게 찾아온 손님이지, 주인도 아니고 마음 자체도 아니다. 그러면 무엇이 진실한 나일까?

명상상담연구원장 khim56@hanmail.net

[1273호 / 2014년 12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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