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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타얼사 [끝]

신심의 꽃으로 장엄한 티베트불교 중흥조 쫑카파 탄생지

시닝(西寧)역에 도착했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열차 밖으로 나간다. 23시간 만에 밟은 땅의 감촉이 포근하다. 잠시 짐을 내려놓고 안개에 젖은 아침공기를 한껏 들이마신다. 짙은 농도의 산소가 몸 속 구석구석에 파고든다. 고산증세가 씻은 듯 사라진다. 두통도 호흡곤란도 이제는 느껴지지 않는다. 실로 오랜만의 편안함. 아무런 장애 없이 숨 쉴 수 있다는 게 이토록 환희로운 일이었는지. 히말라야에 들고 나오며,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의 부재(不在)와 그에 따른 고통을 겪은 후에야 새삼 깨닫게 된다.

쫑카파 태어난 뒤 태반을 묻자
그 자리서 한 그루 보리수 자라
각 잎에 사자후불상 나타나기도

아들 그리워한 쫑카파 어머니가
탑 세우고 중창해 타얼사 이름
겔룩파 6대 사원 가운데 하나

부처님 공덕 기리는 팔보여의탑
벽화·비단·기름꽃 등 명물 유명

안개 자욱한 거리를 걸으며 시닝의 아침풍경을 바라본다. 시닝이 속한 칭하이성(靑海省)은 원래 티베트의 영토였다. 14대 달라이라마가 인도로 망명하기 전에는 칭하이성뿐 아니라 간쑤성(甘肅省), 쓰촨성(四川省), 윈난성(雲南省)에 걸친 광대한 영토를 자랑했다. 그러나 중국이 행정구역을 재편하면서 티베트는 지도에서 지워지고 시짱(西藏) 자치구만이 초라하게 남았다. 지금 순례단이 향하고 있는 타얼사(塔尔寺)는 한때 이곳에 티베트의 영향력이 미쳤음을 알리고 있다.

타얼사는 달라이라마가 속한 겔룩파의 6대 사원 가운데 하나다. 티베트불교의 중흥조 쫑카파가 탄생했다는 자리에 세운 탑이 기원이다. 쫑카파는 겔룩파를 창종했을 뿐 아니라 ‘보리도차제광론’이라는 방대한 저술을 통해 티베트불교의 수행체계를 구축해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쫑카파의 어머니는 그를 낳고 태반을 묻었는데, 그 자리에 한 그루 보리수가 자랐다. 보리수에는 10만장 잎이 자랐으며 각 잎마다 사자후불상이 현현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시간이 흘러 쫑카파가 히말라야로 들어간 뒤 어머니는 하얗게 샌 자신의 머리카락과 편지를 보내 돌아오라는 뜻을 전한다. 하지만 쫑카파는 “제가 태어난 자리에 태반을 넣은 불탑을 세우고 마치 저를 바라보듯 하시면 그리움이 덜 할 것입니다”라는 답장을 보낸다. 1379년, 어머니는 아들의 당부대로 탑을 세웠다. 타얼사는 이 탑을 중심으로 1560년 창건됐으며 이후 중창을 거듭해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 완만한 봉우리에 안긴 타얼사. 산세를 따라 티베트양식과 중국양식이 혼재된 전각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타얼사는 쫑카파의 태반을 넣은 탑에서 출발해 수 차례의 중창을 거쳐 오늘의 모습에 이르렀다.

햇살이 안개를 거둬내자 완만한 봉우리에 안긴 타얼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전각들이 산세를 따라 빼곡하게 들어찼다. 오색단청의 티베트양식과 기와를 올린 중국양식 전각들이 혼재돼있다. 입구를 통과해 광장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여덟 개의 흰 탑들이 보인다. ‘팔보여의탑’(八宝如意塔)이다. 이 탑들은 1776년, 석가모니가 이룩한 8가지 공덕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됐다. 각각 탄생, 성장, 출가, 고행, 깨달음, 전법, 열반, 가르침을 의미한다. 순례단 스님들과 함께 팔보여의탑을 돌며 부처님의 거룩한 일생을 찬탄한다. 각 탑을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2500여년 전, 이 땅에 나투신 부처님을 직접 뵙는 것 같은 환희로움이 순례단을 감싼다.

탑돌이를 마치고 경내에 들어서 호법신전(護法神殿)인 소금와사(小金瓦寺)를 참배한다. 2층 회랑에서 양, 곰, 원숭이 등의 동물표본이 순례자를 내려다본다. 치송데첸 왕이 불교를 국교로 공인한 이후 토속종교들은 서서히 자취를 감췄는데, 각 토속종교를 대표하는 동물의 표본들은 불교의 승리를 상징하며 2층 회랑을 장식하고 있다. 소금와사 다음은 기수전(祈壽殿)이다. 타얼사 스님들이 1717년 7대 달라이라마의 장수를 기원하며 세운 것으로 옥빛 유리로 치장된 외벽이 인상적이다. 내부에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가섭·아난존자, 보현보살, 16나한 등을 모셨다. 법당 바깥에는 돌들이 많은데 쫑카파의 어머니가 물을 짊어지고 오가다 잠시 휴식을 취했다하여 성스럽게 여겨진다.

 
노스님들의 요사채를 지나 대경당(大經當)에 도착한다. 평평한 지붕이 영락없는 티베트양식이다. 타얼사 전각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며 1000명 넘는 스님들이 이곳에서 경전을 읽는다고 한다. 대경당은 타얼사의 3대 명물로 손꼽히는 벽화, 두이슈(堆绣), 쑤여우화(酥油花)로 화려하게 장엄됐다. 정교하게 그려진 벽화는 물론이고 양털로 입체감을 불어넣은 비단인 두이슈는 어떤 사찰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곳만의 특징이다. 특히 쑤여우화의 아름다움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쑤여우는 야크나 양에서 얻은 동물성 기름이다. 온도가 올라가면 기름이 녹기 때문에 작업실은 언제나 영하의 기온으로 조절된다고 한다. 특히 쑤여우화 장인들은 작업 전 체온을 낮추기 위해 얼음물에 손을 넣는다고 하니, 그 정성이 참으로 대단하다. 타얼사는 이것으로 꽃을 만들어 장엄물로 사용하고 있다.

▲ 12세 쫑카파의 모습을 형상화한 존상.

대경당에는 10대 판첸라마와 12살 소년 쫑카파를 형상화한 존상이 모셔져있다. 판첸라마의 사진은 티베트 곳곳에서 많이 봤지만 존상은 티베트를 순례하며 처음으로 마주한다. 마치 살아있는 판첸라마를 친견하는 듯 생생한 모습이다. 일설에 따르면 10대 판첸라마가 입적하고 100일 후 존상에서 머리카락이 자랐다고 한다.

▲ 주법당 대금와사의 12m 규모 다인탑.

대경당 뒤편에는 타얼사의 주법당인 대금와사(大金瓦寺)가 있다. 대금와사는 쫑카파의 어머니가 아들을 그리워하며 만든 탑을 1711년 금으로 개조하면서 그 이름을 얻었다. 지금은 법당 내부에 12m 높이의 다인탑(大银塔)이 자리 잡고 있다. 타얼사 스님들의 배려로 일반인들에게는 공개하지 않는 다인탑을 참배한다. 순은으로 받침판을 만들고 금을 입혀 각종 보석을 끼워 넣었다. 경의를 뜻하는 흰색·황색·남색 비단인 ‘하다’를 수십 겹 포개놔 장엄함을 부각시켰다. 각종 조명, 상아, 꽃병 등이 주변을 에워쌌으며 탑 위에는 쫑카파 존상이 있다. 포탈라궁의 역대 달라이라마 영탑 못지않은 화려함이다. 순례단은 팔보여의탑에서와 마찬가지로 쫑카파를, 부처님을, 온 우주 생명을 찬탄하며 탑돌이를 한 후 대금와사를 나선다.

▲ 대금와사 바깥서 오체투지하는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이 대금와사 입구에서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법당 기둥에 몸을 기대고 그 모습을 바라본다. 오늘 충칭(重慶)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간다. 순례기간 내내 함께했던 이 풍경은 곧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 문득 뒤를 돌아본다. 순례를 끝낸 일행 스님들이 타얼사 밖으로 나가고 있다. 빠른 걸음으로 스님들을 따른다.

▲ 타얼사 광장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스님들은 순례기간 내내 깨달음을 좇는 구도자로서의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다시 타얼사 입구. 스님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든다. 티베트에서는 공안들의 날카로운 감시 탓에 사진 찍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공안들에게 플래카드를 압수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강렬한 자외선과 희박한 산소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건, 사사로운 행동마저 감시당할 수 있다는 공포였다. 느닷없는 상황과 익숙하지 않은 염려들이 순례자의 마음을 옥죌 때마다, 어떻게 된 일인지 티베트인들의 눈망울은 더욱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것을 느꼈다. 미혹에 빠진 중생을 위해 자비의 손길을 내미는 것 같았고, 그러기에 긴장감 속에서도 안도할 수 있었다. 모진 시대를 굳건히 살아내고 있는 그들은, 이미 희망 그 자체였다.

이제는 플래카드를 펼쳐도 제지하는 공안은 없다. 맑디맑은 호수를 쏙 빼닮은 눈망울도 보이지 않는다. 맹렬한 기세의 자외선도, 견디기 힘든 고산증세도 사라졌다. 모든 것은 저 히말라야 고원 너머에 남겨두고 다음으로 이어질 인연을 기약해본다. 타얼사를 나서기 전, 스님들이 하나 둘 카메라 앞으로 모인다. 플래카드를 펼친다. 스님들이 미소 짓는다. 마음 마음마다 진리의 보석 꽃이 피었다.

조계종 전 포교원장 혜총, 경주 골굴사 주지 적운, 교육원 교육국장 진광 스님 등 40여명 스님들의 덕화가 아니었다면 이번 여정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글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시닝=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273호 / 2014년 12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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