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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악마관(惡魔觀)

기자명 이제열

▲ 그림=최병용 화백

인간과 세상을 파괴하고 불행을 가져다주는 악마나 마군은 과연 존재할까? 적어도 종교에서는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들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것을 가르친다.

기독교의 경우 악마는 그들의 창조신 여호와에게 대적하는 존재로 신이 하는 일을 방해하고 인간들을 타락의 길로 이끄는 존재이다. 본래는 신의 총애를 받던 천사장이였는데 스스로 신의 지위에 오르려다 신의 노여움을 사 악마가 되었다고 한다. 기독교에서는 지금도 악마가 활동 중이며 신과 인간을 분열시키고 세상을 악으로 물들이기 위해 온갖 술수를 부린다고 말한다.


과거 상당한 세력을 떨쳤던 이슬람교 이전의 조로아스터교에서도 악마의 존재를 인정한다. 조로아스터교의 악마는 창조신 아후라 마쯔다의 쌍둥이 아들 중 앙그라마이뉴이다. 그는 파괴와 불의와 죽음의 힘을 가진 신으로 같은 형제인 선한 신 스펜타 마이뉴와 대결하고 나중에는 그의 아버지인 아후라 마쯔다와 대결한다. 결과적으로 선이 승리를 하지만 악마의 영향을 받은 인간들은 후에 심판을 받아 지옥에 떨어진다. 조로아스터교는 이란에서 발생한 종교지만 유대교와 이슬람교, 힌두교 등에도 영향을 미친 종교다.

이와 같은 성격을 지닌 악마는 불교경전에도 자주 등장한다. 불교에서 악마는 부처님의 성도를 방해하고 부처님의 진리가 세상에 퍼지는 것을 훼방하는 존재이다. 또 중생들을 감각적 쾌락과 죄악에 빠지도록 유혹한다. 악마가 언제부터 어떤 과정을 통해 불교에 존재하게 되었는지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불교의 악마들은 다른 종교들처럼 극단적 대결구도로 몰아가지 않는다. 불교에서 악마를 인정하고 있지만 악마들의 힘이 기독교나 조로아스터교의 악마들처럼 강하지는 못하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법이고 행복과 불행은 중생들의 업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악마가 세상을 지배하려 한다고 강조하지도 않는다. 불교에서는 악마를 마라(mara)라고 호칭한다. 마라는 죽음·악마·유혹자·마왕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런 악마에 대해 초기불교와 대승불교는 그 성격과 역할을 다르게 설명한다.

초기불교에서는 악마를 크게 대략 네 종류로 분류한다.


첫째는 극악자 빠삐만이다. 빠삐만은 부처님에게 자주 나타나는 악마로 경전에 가장 많이 등장한다. 주로 변장을 하고 나타나는데 틈틈이 찾아와 부처님을 협박하고 회유한다.

둘째는 타화자재천신이다. 이 천신은 욕망을 추구하는 욕계의 최고 높은 신으로 감각적 쾌락을 유일한 가치로 삼는다. 그는 중생들이 감각적 욕망을 극복하려는 행위를 극히 싫어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부처님이나 수행자들이 행하는 일을 방해한다.

셋째는 세속적인 모든 존재들이다. 곧 열반이 아닌 모든 것들, 오온(五蘊) 십이처(十二處) 십팔계(十八界) 등 세상의 모든 것들을 악마로 지칭한다.

넷째는 죽음이다.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죽음을 조정하고 관장하는 신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죽음을 악마로 의인화하였다는 점이다.

여기서 초기불교의 악마들에 대해 살펴보면 특징적인 것이 부처님이 성도하시기 전이나 성도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부처님이나 제자들을 유혹하고 괴롭히려 한다는 점이다. 성도 이전에 고행할 당시는 물론이고 성도 직전이나 설법을 할 때에도 나타나고 공양을 할 때도 나타난다. 부처님이 입멸 할 당시에도 악마는 어김없이 나타나 입적을 재촉하고 희유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초기불교에 있어 악마들의 성격을 보면 모두 중생을 떠난 외적 존재들이라기보다 중생 자체를 상징화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빠삐만이나 타화자재천도 결국은 중생 자신이든지 중생 속에 내재하는 번뇌나 욕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쌍윷따니까야’ 악마의 경에서 부처님은 제자 라다에게 “물질이 악마이며 느낌이 악마이며 인식이 악마이며 의도가 악마이며 의식이 악마이다”라고 정의한 것을 보면 악마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인지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대승은 악마를 보는 관점이 전혀 다르다. 대승경전에는 부처님께 악마가 등장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대승의 시각에서는 일체의 번뇌를 조복받고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신 부처님에게 감히 악마가 등장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보았다. 부처님께 악마가 나타난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에게 아직도 번뇌가 남아 있다는 말 밖에는 되지 않는다. 대승경전을 보면 부처님을 찬탄하는 문구들이 자주 눈에 띈다. 그 곳을 보면 어렵지 않게 “온갖 마군들을 항복 받으셨다”는 내용들을 접할 수 있다. 이는 부처님께는 악마가 절대로 나타 날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승경전에 악마나 마왕들이 아주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승경전에 나타나는 악마나 마왕들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수행과 성불을 방해하는 존재들이고 또 하나는 수행과 성불을 도와주는 존재들이다. 수행과 성불을 방해하는 존재들을 보면 그 수효가 대단히 많고 종류도 다양하다. 차원이 높은 각종 천계의 천마(天魔)들이 있는가 하면 큰 신통력을 갖춘 대력귀(大力鬼)들이 있고 요사스러운 요괴(妖怪)들이 있다. 부처님은 대승경전에서 이들의 종류와 행동을 설하고 수행하는데 빠지거나 사로잡히지 말 것을 권유한다. 이와는 달리 수행과 성불을 도와주는 악마나 마왕은 보통 악마와 마왕이 아니다. 이들은 보살들이 중생을 제도하고 불법을 옹호하기 위해 화현한 존재들로 악함과 파괴를 수반하지 않는다. ‘유마경’이나 ‘화엄경’을 보면 악마와 마왕들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이러한 악마와 마왕들이 그렇다. 이러한 악마나 마왕들은 부처와 보살들이 자재한 능력으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일부러 몸을 나타낸 것으로 비록 모습은 악마와 마왕이지만 그 본질은 부처이면서 보살이다. 대승불교의 부처와 보살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갖가지 방편을 구사하고 헤아릴 수 없는 응신을 하기 때문에 때에 따라서는 악마와 마왕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같은 악마를 두고서도 초기불교와 대승불교가 서로 다른 관점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부처를 바라보는 시각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대승불교의 입장에서 초기불교의 부처님은 무언가 완벽성이 떨어진다. 대승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노릇이다. 부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존재이고 완벽한 존재이다. 부처님에게 악마가 범접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부처님은 악마로도 드러낼 수 있는 자재한 존재이다. 초기불교는 부처님의 완벽성에서부터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제열 법림법회 법사  yoomalee@hanmail.net

[1273호 / 2014년 12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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