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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스승과 제자, 함께 길을 걷는 사람들 [끝]

기자명 성재헌

부처님은 어둔 밤 등불처럼 이끈 최고 스승

▲ 일러스트=이승윤

어느 날 문득 장명 스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재헌씨, 인도 갑시다.”

선뜻 대답이 나오질 않았다. 넉넉지 못한 주머니 사정을 눈치 채셨는지 선수를 쳤다.

“옛날에 노트 사다주었던 일 기억나?”

벌써 30년 전 일이 되었다. 직지사 불교학생회에 다니던 어느 날,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안경을 쓴 행자님 한 분이 몰래 손짓으로 불렀다. 행자님은 동전 한 움큼을 손에 쥐어주며 노트를 한 권 사다달라고 부탁했다. 모든 게 부족하던 시절, ‘초발심자경문’을 쓰고 외울 노트 한 권이 없었던 것이다. 다음 주 약속대로 노트를 사다 드렸다. 아마 까만색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 그 돈이 종각 청소하면서 모아두었던 동전이야. 그 일로 상판 행자님들에게 얼마나 곤욕을 치렀는지 몰라. 자기들 것은 사지 않고, 내 것만 샀다고.”

웃음으로 옛이야기를 마무리하며 한마디 보탰다. “빚 갚는 거야.”

부처님 나라에 꼭 가보고 싶었다. 해서 염치불구하고 노트 심부름 값을 인도 여행경비로 돌려받기로 했다. 연화사 불자님들과 함께 델리와 아그라를 거쳐 상카시아에 참배하고 드디어 기원정사에 도착했다. 존경하는 부처님께서 이 길을 따라 탁발을 나서고, 이곳에서 발을 씻고, 이 자리에 앉아 법을 설하셨다는 생각이 들자 벽돌 한 장 한 장이 허투루 보이지 않았다. 간다꾸띠에서 ‘금강경’을 독송하고 호텔로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동행한 이들과 로비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로 여행의 재미를 더하다가 문득 바깥을 내다보았다. 일찍 내려앉은 어둠에 안개가 자욱했다.

기원정사에 다시 가고 싶었다. 그곳에 가면 고요히 선정에 들어 계신 부처님과 조용히 곁을 지키는 아난다, 등불을 밝히고 비구들을 교육하는 사리뿟따와 홀로 경행하는 목갈라나의 모습이 안개의 장막너머로 환영처럼 펼쳐질 것만 같았다.

“인도는 겨울이면 안개가 짙습니다.”

가이드는 외부출입을 삼가도록 당부하였다. 룸메이트인 자성 스님께 몰래 여쭈었다.

“스님, 기원정사로 산책 가실 생각 없습니까?”

“갑시다.”

경상도 사나이 특유의 호쾌함이 빛을 발했다. 살금살금 호텔을 빠져나와 둘이서 기원정사로 향했다. 버스로 5분 정도 이동한 거리이니, 코앞일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안개는 짙었다. 음력 13일, 달이 떴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가시거리는 겨우 5m 정도였다. 게다가 고놈의 호기심이 발동해 발길이 기원정사를 넘어버렸다.

“길이란 게 이어지기 마련 아닙니까? 가다보면 큰 길이 나오겠지요.”

호기를 부리다 결국 길을 잃었다. 두런두런 주고받던 대화도 끊기고 내딛는 한걸음에 온 신경을 쏟아야만 했다. 그렇게 불빛 한 점 없는 어둠 속을 헤매면서 참 많은 생각들을 했다.

돌아보니, 내가 걸어온 길도 이랬다. 모든 것이 낯설고, 그래서 두렵고, 그래서 망설이고, 그래서 고단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길목에서 덥석덥석 들이닥친 갈림길, 그 수많은 갈래에서 준비도 없이 선택을 강요당해야 했다.

‘나는 왜 지금 이 길을 걷고 있을까?’

돌아보니, 그 수많은 선택의 길목에서 나를 이끄셨던 것은 부처님이었다. 때로는 돌아가고, 때로는 둘러갔지만, 끝내 마음속에서 놓치지는 않았다. 그분처럼 살고 싶었다. 욕심 없이, 평온하게 살고 싶었다. 그리고 그분처럼 편안한 미소로 삶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어쩌면 그 소박한 바람 하나가 지금 이 자리에 나를 서있게 했는지도 모른다.

생각이 거기쯤 미치자 울컥 눈물이 솟았다. 나도 몰랐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나는 부처님을 많이 존경하고 있었다. 어둔 밤의 등불처럼 지금 이 자리로 그분이 나를 이끄셨던 것이다. 그분은 실로 내 인생 최고의 스승이었다.

지난 일 년 간 ‘스승과 제자’를 주제로 이야기를 엮어보았다. 과연 어떤 사람이 위대한 스승일까? 남들은 갖지 못한 특별한 힘을 가진 자가 스승일까? 그래서 존경의 대상이 되는 걸까?

부처님께서 반열반을 앞두고 꾸시나라의 두 그루 살라 나무 아래에 누우셨을 때 일이다. 늙은 바라문 수밧다가 찾아와 이렇게 물었다.

“세상에는 스승을 자처하는 많은 사상가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뿌라나깟사빠·막칼리고살라·아지따께사깜발라·빠꾸다깟짜나·산자야벨랏티뿟따·니간타나따뿟따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다고들 말합니다. 그들은 정말로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입니까,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그들 가운데 깨달음을 얻은 사람도 있고 얻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까?”

그때 부처님께서 수밧다에게 말씀하셨다. “그런 의심은 그만두는 게 좋습니다. 그런 의심은 당신에게 유익함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당신에게 나의 가르침을 말해주겠습니다. 수밧다, 여덟 가지 올바른 길이 있습니다. 여덟 가지란 바르게 보고, 바르게 사유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동하고, 바른 직업을 가지고, 바른 생각에 집중하고, 바른 선정을 닦는 것입니다. 이 여덟 가지 올바른 길을 걷는 사람을 사문이라 합니다. 이 길을 걸으면 당신에게 유익함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그리고 게송을 읊으셨다.

내 나이 스물아홉에 집을 떠나/ 유익함을 찾기 어언 51년/ 계율과 선정과 지혜를 닦고/ 조용히 사색하며 살아왔네/ 이제 가르침의 요점을 말하나니/ 이 길을 떠나 사문의 삶이란 없네/ 길은 팔정도가 최고/ 진리는 사성제가 최고/ 욕망을 다스림에는 법이 최고/ 두 발 가진 생명체 중에는/ 눈을 뜬 부처가 최고/ 수밧다여, 이 길뿐 다른 길은 없다네.

스승, 그들이 존경받는 까닭은 특별한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무엇이 모두에게 유익한 길인지를 깨닫고, 몸소 그 길을 걷고, 모두에게 그 길을 걷도록 권하고, 끝없는 인내로 한걸음 앞에서 길을 안내한 분들이었다. 중요한 것은 길이다. 그들이 위대한 까닭은 그들이 이끈 길이 위대하기 때문이다.
대낮엔 20분이면 충분했을 거리를 2시간이나 헤매다 무사히 호텔로 돌아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스님과 함께하지 않았다면 이 길을 나서지 못했을 겁니다.”

자성 스님이 사람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저도 마찬가집니다. 재헌씨 아니었다면 이렇게 멋진 산책을 못했을 겁니다.”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1275호 / 2014년 12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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