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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과 올해의 ‘사자성어’

또 한 해가 간다. 이맘때쯤이면 으레 ‘올해의 4자성어’나 ‘내년의 4자성어’가 선정되곤 한다. 고작 네 글자지만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정리하고 희망과 기대를 담아내니 4자성어가 품은 의미는 매우 넓고 깊다 하겠다. 4자성어를 꼭 한문고전에서 찾아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2014년의 4자성어는 ‘아, 세월호’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사고였다. 476명을 태우고 인천을 떠나 제주로 가던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스스로 세월호 밖으로 탈출한 생존자들 말고는 단 한 사람의 목숨도 구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모두 구조될 것이라고 믿고 텔레비전을 지켜보던 국민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더욱 충격이 컸다. 295명의 소중한 목숨이 스러졌다. 11월11일 수색이 종료될 때까지 끝내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한 사람도 9명이나 되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가슴에서 노란 리본을 떼어내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가 왜 가라앉았는지, 빤히 지켜보면서도 어째서 단 한 명도 구해내지 못했는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논란과 첨예한 갈등 속에 세월호 3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지만 진상규명 작업은 아직 손도 못 대고 있다. 대한민국은 4월 16일 그날로부터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를 되풀이하지 말자며 너도나도 안전을 외쳤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위기사회 위험사회로 남아있다.

온 나라가 세월호 참사로 아파할 때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나라를 찾았다. 즉위 후 세 번째이자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한 것이다. 순교자 124위를 천주교 복자로 선포하는 시복미사 집전과 아시아청년대회 참석이 공식일정이었다. 교황은 100시간 정도 우리나라에 머물면서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사회의 그늘진 곳, 어두운 곳을 낮은 자세로 찾았다. 교황은 방한 첫날부터 세월호 참사 유족과 장애인, 새터민, 이주 노동자 등을 만나 그들의 아픔을 달래고 보듬어주었다. 세월호 유족은 네 차례나 만났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계 유일의 분단지역인 한반도의 평화에도 관심을 보여주었다. 명동성당에서 집전한 미사에서 남북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메시지를 던졌다. 남북한이 서로 진심 어린 대화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노력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교황의 모습은 종파를 떠나 많은 이들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었다. 많은 불자들도 다른 종교의 지도자지만 교황의 행보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존경의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에 따른 국민적 슬픔과 아픔을 불교계도 함께 했다. 불교 최대행사인 부처님 오신 날 행사의 올해 주제는 세월호였다. 점등식부터 시작해서 연등회, 법요식, 제등행렬 등이 세월호 희생자 추모와 실종자 무사귀환을 발원하는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세월호 희생자의 극락왕생과 유가족의 고통을 함께 나누기 위해 추모재도 봉행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신드롬까지 불러온 것은 아니지만 참 잘한 일이다.
그러나 올 한 해 불교계가 불자들에게 어떻게 비쳐졌을까 생각하면 아쉬운 맘이 드는 게 사실이다. 올해 불교계, 특히 개혁불사 20년을 맞는 조계종이 다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종단과의 갈등 끝에 조계종의 뿌리이기도 한 선학원이 분종했다. 선 수행의 상징적 존재였던 인천 용화선원장 송담 스님이 탈종했다. 주지 선거와 종회 의원 선거의 후유증도 적지 않았다. 개혁불사 때 약속했던 ‘4부대중이 참여하는 민주적 종단운영’도 아직 갈 길이 멀다. 여러 차례 지적된 종단정치의 폐해와 종단 행정의 경직성도 여전했다.

종단의 위상 추락과 불신을 가져올 수 있는 이런 문제들이 얼마 남지 않은 올해에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다가오는 2015년에는 제발 해결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종단행정을 돌아보는 거대한 성찰과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내년 이맘때쯤 불교계 4자성어가 ‘아, 조계종’이 되지 않고 ‘오, 조계종’ 아니면 ‘역시 불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많은 불자들의 희망일 것이다.

손혁재 nurisonh@gmail.com

[1275호 / 2014년 12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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