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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종교 향한 편애는 이웃종교 업신여기는 씨앗이 된다”

법보신문은 2015년 을미년 한 해 동안 격주마다 세계 최고의 현자로 추앙받는 달라이라마의 법문을 게재합니다. 티베트망명정부의 한국지부인 ‘티베트하우스코리아’ 원장이자 동국대 경주캠퍼스 티벳대장경역경원 초빙교수로 활동 중인 남카 스님의 안내를 받아 달라이라마 오피스에 법문 연재를 공식 요청해 연재를 진행하게 됐습니다. 달라이라마가 세계 각국에서 설한 법문을 번역해 싣습니다. 편집자

▲ 사진제공=달라이라마 공식 홈페이지

‘종교간의 조화, 공존 그리고 세계평화의 유지’를 주제로 한 종교간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먼저 ‘종교자유를 위한 국제협회의 역사와 활동, 목적 그리고 이에 대한 현대의 시대적 요청에 대한 상세한 설명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세미나에 참가한 분들이 이미 언급한 내용에 대해 특별히 덧붙일 사항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는 다른 관점에서 종교간 조화와 공존에 대해 몇 가지 언급하고자 합니다.

라다크 지역은 수세기 동안
명백한 불교와 불자의 지역
지금은 이슬람교와 기독교
힌두, 시크교 같은 종교들도
함께 번창하며 공존하고 상생

라다크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무슬림 어르신들 말 할 때마다
‘승단’이란 말 자연스럽게 사용
‘승단’은 이슬람선 사용치 않아
그런 표현으로 불교도들로부터
무슬림에 대한 큰 신뢰 이끌어

우리는 지금 21세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술의 진보와 발달 그리고, 인지(人智) 측면에서 이룬 엄청난 성과로 인류의 정신적, 물질적 탐구는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세계는 수없이 많은 새로운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중요하게 직관해야 하는 대목은 문제의 대부분이 인류 스스로가 자초했다는 사실입니다. 불안한 마음을 통제하지 못하는 인류의 무능력에 이 문제들의 근본 원인이 있습니다.

저는 불교 수행자입니다. 불교를 포함한 세계의 위대한 종교들이 꽃을 피운 지도 1000년이 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세계 그리고 인류는 수많은 갈등과 그로 인한 극한의 대립과 전쟁을 경험했습니다. 그러한 대립과 갈등에는 서로 다른 종교적 신념에 따른 믿음을 추종하는 사람들과 종교인들이 일정 부분 강하게 기여한 것이 역사적 사실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세계의 여러 종교가 인간의 불안정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해 왔다는 점입니다. 불교 수행자로서 그러한 점을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럼에도 종교는 여전히 그 잠재적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대목은 매우 아쉬운 부분입니다.

저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은 종교적 수행에 대한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고 항상 말해 왔습니다. 종교적 수행을 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그 어느 쪽이던 결코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어떤 종교든 일단 받아들였다면 자신의 종교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종교적 가르침을 받들어 일상생활에서 진실하게 실현하고 실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불안정한 마음을 정화하고 다스리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내가 믿는 종교는 이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쉽게 종교적 편애에 빠져드는 사람들을 우리는 쉽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혼란한 마음으로 이렇게 종교를 오용함으로써 때론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저는 “과학에 대한 애착과 열정 때문에 과학자가 과학에 대한 편견을 갖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라고 말하는 칠레 출신의 물리학자를 알고 있습니다.

저는 불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존중합니다. 하지만 불교에 대한 나의 사랑이 불교에 대한 지지와 뒤섞인다면 저는 불교에 대해 편향된 태도를 갖게 될 것입니다. 편향된 마음으로는 결코 전체를 볼 수 없습니다. 실체를 꿰뚫어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 상태에서 나온 어떠한 행위도 결코 실상에 부합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한 까닭은 편향된 마음 상태에서는 많은 문제를 야기하게 됩니다. 불교 철학은 “행복은 깨달은 마음의 결과이며 고통은 왜곡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강설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강설은 매우 중요합니다. 깨달은 마음에 대비되는 왜곡된 견해는 실상과 어긋나기 마련입니다.

인간이 세상에서 추구하는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종교적 활동을 포함하는 어떤 ‘이슈’든지 그에 대한 어떤 판단을 내리기 전에 충분한 이해가 선행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원인을 밝히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 어떠한 이슈든 전체적인 모습과 상황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합리성에 근거를 두고 있기에 매우 유익하다고 봅니다.

이 자리에는 서로 다른 종교적 신념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모든 종교는 마음과 언어로 파악할 수 없는 초월적인 요소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와 이슬람에서의 신의 개념, 불교에서의 법신 개념은 형이상학적이어서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이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것은 모든 종교가 부딪치는 공통된 어려움입니다. 기독교와 힌두교, 이슬람교 그리고 불교를 포함하는 모든 종교는 “궁극적인 진리는 믿음을 통해서 추구할 수 있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수행자라고 한다면 각자의 종교에 대한 지극한 신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단일 특정종교에 대한 신앙’과 ‘다종교적인 신앙’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해 왔습니다. 전자는 후자와 직접적으로 상호 배치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호히 이러한 모순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것은 맥락적인 측면을 고려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의 모순이 다른 조건에서도 반드시 모순인 것은 아닙니다. 특정 개인에게 특정 진리는 본인의 개인적, 신앙적 선택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습니다. 이 점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하지만 사회적 측면 또는 다수의 개인들에게는 다양한 종류의 신앙적 귀의처와 종교, 진리가 필요합니다.

과거에는 이것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각 국가들은 다른 국가들로부터 분리되어 자신만의 특정 종교와 함께 초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밀접하게 상호 연결돼 있는 오늘날 세계에서는 다양한 종교들 간에 너무도 많은 차이점이 상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이런 문제점을 극복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인도에서는 과거 수천년 동안 매우 많은 종교가 있었습니다. 일부 종교는 외부에서 유입되었고 일부는 인도 내에서 자생됐습니다. 그럼에도 다양한 종교는 서로 공존했으며 비폭력 불살생의 원칙은 이 땅에서 정말로 존중돼 왔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원칙은 모든 종교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원칙은 정말로 소중한 것이며 인도는 이 점에 대해서 진실로 자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라다크는 수세기 동안 명백한 불교도들의 지역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슬람교와 기독교, 힌두교, 시크교 같은 다른 종교들도 또한 이 지방에서 번창해 왔습니다. 라다크 주민들이 자신의 종교를 지지하고 사랑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종교적 편협성과 관련된 큰 문제를 야기하지 않고 매우 평화로운 분위기를 유지해 왔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라다크를 방문했을 때 무슬림의 어르신들이 그들의 표현에서 ‘승단’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비록 그것은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문구이지만 그런 표현 자체로 인해 불교도들로부터 큰 신뢰를 끌어내고 있습니다. 라다크 주민들은 비록 서로 다른 신앙적 배경을 갖고 있지만 서로 매우 가깝게 지내고 있으며 화합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슬림이라면 회교 사원에서 기도하면서 ‘알라 신’에게 온전히 헌신하는 것은 매우 적절한 행위입니다. 불자에게도 마찬가지로 불교 사원에서 기도하면서 부처님께 지극히 헌신하는 것은 온당한 신앙입니다. 다종교 사회에서는 여러 명의 선지자와 다양한 의지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회에서는 다양한 종교와 수행자들 사이에 화합과 상호 존중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믿음과 존중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믿음은 자신의 종교에 대해 마땅히 가져야 할 전적인 신앙을 말합니다. 동시에 모든 타 종교에 대해서는 존중하는 마음을 간직해야 합니다. 자신의 종교에 대한 믿음과 타 종교에 대한 존중의 전통은 라다크 지방에서 선조 때부터 이어져왔습니다. 그러하기에 그런 전통을 굳이 새로 만들어 낼 필요는 없습니다.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전통을 보존하고 강화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을 열심히 하고 있는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요청합니다.

오늘날의 다민족, 다종교, 다문화의 환경 속에서 어느 특정 지역에서 다양한 사회와 종교 신앙 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형성한다면 그것은 분명 다른 지역에 매우 훌륭한 모범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관련된 당사자 누구라도 방심한다면 그 즉시 절박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다민족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는 다수집단과 소수민족 사이의 갈등입니다. 예를 들면 라다크 왕국의 레(Leh) 지방에서는 불교도들이 다수 집단이 되고 무슬림들은 소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다수집단은 소수집단을 초청된 손님으로 대해야 합니다. 반면 소수는 다수집단에 대해 민감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양쪽은 화합해 살아야 합니다. 이런 화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양측 모두 그들 사이의 민감한 이슈를 가볍게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다수는 소수의 견해와 의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양측은 서로 토론하고 상대의 견해와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반면 소수는 다수집단의 민감한 이슈가 무엇인지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마음에 품고 있는 의심스러운 부분은 무엇이든 표현해야 합니다. 그런 우호적인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되면 양측 모두에게 득이 됩니다. 서로에 대한 의심은 양쪽 집단 모두를 해칠 뿐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화합해 살면서 상대의 의견에 대해 충분히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또 대화하고 대화하는 것입니다.

번역=백영일 번역전문위원 yipaik@wooriba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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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법문은 2011년 8월25일 북인도 라다크 ‘레’에서 ‘종교자유를 위한 국제협회(International Associa tion for Religious Freedom, IARF) 라다크그룹(Ladakh Group)’의 주관으로 열린 종교간 조화를 위한 세미나에서 달라이라마가 강연한 법문 중 발췌했습니다.

[1276호 / 2015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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