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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자리서 망념 거둔 ‘참 나’ 봐라!

  • 새해특집
  • 입력 2014.12.30 14:58
  • 수정 2014.12.30 15:04
  • 댓글 4

금정총림 범어사 방장 지유 스님

 
하늘 물고기가 내려와 노니는 샘 금정(金井)을 품은 산. 그 한 자락에 의상 스님은 범어사(梵漁寺)를 창건했고, 원효대사는 원효암과 미륵암을 지었다. 원효암을 정면에서 바라보며 왼쪽엔 원효대, 오른쪽엔 의상대가 있으니 마주보는 모양새다. 암자 하나 사이에 두고 법향 나누며 정진해가는 두 선지식, 상상만 해도 법열이 밀려온다.

도통해 ‘구름타고 세상 구경’
동산스님 은사로 범어사 출가
잠 오면 빗자루 들고 도량청소
원효암 주석 40여년 ‘장좌불와’

칭찬비난에 희비 엇갈리는 건
상대 말에 내 감정 끌려간 것
기왓장 깨지는 소리에 ‘몰록’
오도 일화에 깨달음 실마리

▲ 의상대서 바라본 금정구 일대. 멀리 회동수원지도 보인다.

원효암에는 지유 스님이 주석하고 있다. 출가를 결심하고 처음 찾은 산사가 미륵암이었고, 4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머물고 있는 절이 원효암이다. 2012년 총림으로 지정된 금정총림 범어사 초대 방장에도 올랐으니 지유 스님과 금정산의 인연은 아득한 옛날부터 이어져 왔던 숙연임에 틀림없다.

일제강점기 시절인 1931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소년은 해방과 함께 부모님 따라 부산 땅을 밟았다. 부모님은 사람 많은 마을보다 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지금의 진구 가야에 처소를 정했다. 소년도 한참 후에 안 일이지만 ‘못된 사람들에게 아들이 쉬이 물들지 않도록 하기 위한 나름의 방편’이었다. 한 해, 두 해 가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앞으로 최고로 잘 된다면 대통령 자리에 앉을 것이다. 아주 못 된다면 거지다. 그런데 대통령도 거지도 결국 죽지 않는가?’

그 즈음, 소년은 마을에 내려갔다가 어르신들 대화에 발걸음을 멈췄다. ‘원효, 의상대사는 큰 도인’이라는 대목에서 솔깃했다. “도인이 되면 뭐가 좋은데요?” “축지법을 쓴단다. 저기, 저 산도 단숨에 올라가지!” “또 뭐가 좋은데요?” “저기, 하늘에 떠 있는 구름 보이지? 도인은 구름 타고 세상 어디든 돌아다니며 구경하지!”

갈 길이 정해졌다. ‘구름 타고 세상 구경 마음껏 하다 죽으면 참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 금정산 미륵암으로 들어간다. 그 때 나이 열여덟 살! 지유 스님의 운수행각은 그렇게 시작됐다.

▲ 금정산 원효암 경내. 현재 복원 불사가 한창이다.

주석처에 이르러 예를 올리니 지유 스님은 ‘서울에서 먼 걸음 하셨다!’면서도 잠시 앉아 있으라는 듯 손으로 좌복을 가리킨다. 그리고는 전기인두기와 드라이버를 연신 교체해가며 무엇인가를 고친다. 가만 보니 야간에 쓰는 랜턴. 풍문으로 들었던 ‘전기제품 수리의 달인’이라는 건 사실이다. 10여 분 쯤 됐을까? 랜턴 스위치를 올리니 불이 들어왔다. 그리고는 “커피 한 잔 하자”며 분쇄기에 원두를 넣는다. 지유 스님 수행 당시엔 녹차 구하기가 어려워 커피를 시작했다고 한다.

“커피 농도도 잘 맞춰야 해요. 싱거우면 ‘맛이 없다’할 것이고, 짙으면 ‘쓰다’할 것이니 ‘맛있게’ 잘 뽑아야지! 그렇지요?”

일상에서도 양 극단에 떨어지지 말고 중도를 찾아가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뜻이다.

원효암에 주석하면서부터 오후불식과 함께 장좌불와를 해 왔으니 벌써 40년이 넘었다. 천성적으로 잠이 없으셨던 건 아닐까? 지유 스님은 ‘그렇지 않다’며 손사래 친다. “출가 초기 가장 힘들었던 게 잠이었어요. 어찌나 자고 싶었던지 한 번은 해제 하자마자 그 길로 도반 한 명하고 ‘실컷 자 보자’며 토굴로 들어갔어요. 저녁 예불 보고 자고, 새벽 예불 올리고 또 자요. 며칠 동안 그렇게 잠만 잤어요. 허허허! 잠 다 자면, 잠 안 오는 줄 알았는데 더 오더군요!”

20대 초반 만공 스님의 수법제자 금봉 스님을 찾아가 여쭈었단다. ‘큰 스님은 하루에 몇 시간이나 주무십니까?’

“첫 일성이 ‘난 잠이 안 온다’였습니다. 하루에 많이 자 봐야 한 세 시간 정도일 것이라 하시더군요. 그래 저도 여쭈어보았지요. ‘큰 스님은 원래 잠이 없으셨습니까?’ 아니라는 겁니다. 수마도 정진의 힘으로 물리쳐야 한다는 걸 그 때 알았지요.”

이후 스님은 졸음이 온다 싶으면 포행을 했고 그래도 잠이 달아나지 않으면 빗자루라도 들고 도량 곳곳을 쓸었다. 늦은 저녁에는 뭐라도 만져야 해서 라디오, 밥솥, 다리미 등의 전기제품을 보면 완전 분해한 후 다시 조립했다. ‘전기제품 수리의 달인’ 소문은 그래서 퍼진 것이다. 실제로 원효암에서 고장 난 전기제품은 대부분 지유 스님의 손을 거친다.

한 가지 궁금했다. 그렇게 자고 싶었다면 며칠 동안 새벽예불을 생략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에 지유 스님은 ‘동산 스님을 딱 한 철 모셨다’며 범어사서 채공 소임 볼 때의 일화 한 토막을 전했다.

“씻고 다듬어야 할 채소가 산더미처럼 남았는데 예불시간이 다가왔어요. 그래, 몇몇은 법당에 가 예불 보고, 몇몇은 공양간에 남아 하던 일 하자 했어요.”

예불 직전 동산 스님이 공양간을 찾았다. ‘너희 이놈들! 법당에 있어야 할 시간에 여기 왜 있나!’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이미 주걱과 쇠그릇이 날아왔고, 동산 스님의 손엔 벌써 나무토막이 쥐어져 있었다.

“큰 스님이 이르셨습니다. ‘공양간 일은 세간 일이고, 예불은 출세간 일이다!’ 공양간 일이 중하다 해도 예불보다 더 중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또한 ‘세간 일에 신경 쓰다 보면 다시 산문을 나간다!’ 하셨습니다. 그땐 속으로 ‘예불 한 번 안 올리고 상추 씻는다 해서 속퇴 하겠나?’했지요. 허나, 큰 스님 말씀이 딱 맞습니다.”

산문에 갓 들어 온 행자의 속퇴를 걱정하는 일면도 있지만 실은 더 중요한 의미가 함축돼 있다. 채소 씻고 밥 짓는 일은 세간에서도 똑같이 하는 일이고, 산사 예불은 법이 흐르는 도량에서 하는 일이다. ‘공양’에 신경 쓰면 산문 안에 있어도 세간 일에 떨어진 것이고, ‘예불’에 신경 쓰면 산문 밖에 있어도 출세간 일을 보는 일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결국 마음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 ‘마음’이란 게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선문촬요’에 밝은 지유 스님이라는 전언을 들었기에 달마의 혈맥론 한 대목을 여쭈어 보았다. ‘마음, 마음, 한 마음 찾기 어렵다. 너그럽게 보면 온 법계에 충만하고, 좁게 보면 바늘도 용납하지 않는다.(심심심난가심 관시변법계 착야불용침. 心心心難可尋 寬時偏法界 窄也不用鍼)’

“여기 놓인 쟁반보다 지구가 더 크고, 지구보다 태양이 더 크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허나, 허공보다 크지는 않습니다. 쟁반, 지구, 태양은 모양이 있고 경계가 있으니 대소 구분이 됩니다. 그러나 허공은 모양도 없고 경계도 없으니 그 크기를 가늠조차 할 수 없지요. 마음 또한 그러합니다. 마음은 안과 밖이 없으니 한계가 없습니다. 클 때는 한 없이 크지만 작을 때는 원자보다 더 작습니다.”

누구든 우주를 안을 수 있는 대자비심을 낼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우리는 작은 일 하나에도 마음 상하면 ‘바늘조차 세울 수 없게’ 한다.

“누군가 당신에게 욕을 했습니다. 화가 나겠지요? 그런데, 그 욕이 당신의 코를 삐딱하게 만들기라도 했나요? 누군가 당신에게 칭찬했습니다. 기쁘겠지요? 그런데, 그 칭찬이 얼굴을 더 예쁘게 만들어 줬나요? 욕에 의한 손해도 없고, 칭찬에 따른 별다른 이익도 없습니다.”

상대가 한 말, 상대의 감정에 내 감정이 끌려간 것이다. 지유 스님은 그 ‘감정’이 ‘나’가 아닌데 사람들은 그 감정을 ‘나’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작은 싸움도 더 키운다고 한다. ‘평온’, ‘안심’, ‘해탈’, ‘열반’은 멀어져 간다.

“나를 둘러싼 온갖 감정과 망념들을 거두면 진정한 ‘나’가 보입니다. 일례로, 바람에 나부끼는 댓잎 소리 참 듣기 좋지요? 허나, 댓잎도 나부끼는 소리도 내가 아닙니다. 그 소리를 듣는 내 귀도 내가 아니고, 듣기 좋다는 그 감정 또한 내가 아닙니다. 듣고 있는 나, 좋다고 느끼는 나를 바로 보아야 합니다. 기왓장 깨지는 소리에, 새벽 닭 우는 소리에 몰록 깨쳤다는 선사들의 일화에 깨달음의 실마리가 담겨 있습니다.”

지유 스님은 자신 안에 내재된 청정심(불성)을 보라고 강조한다. 일상에서도 그 마음,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 첫 걸음이 ‘마음을 산란치 않게 하는 것이고, 생각을 쉬는 것’이라 누누이 강조했다.

“선지식들이 말씀 하셨지요? 밥 먹을 때 밥 먹고, 잘 때 자라! 그런데 안 되지요? 일반인들은 밥 먹으면서도 별의 별 생각 다 합니다. 10분 전에 상사에게 꾸지람 들은 일, 어제 아내와 싸운 일, 내일 친척집 가는데 어떤 선물 사야 하는지 등 찰나지간에 수많은 생각을 합니다. 그 한 생각, 한 생각 할 때마다 걱정, 분노, 기쁨의 감정을 다 일으킵니다. 그 감정에 따라 번뇌도 수 없이 일어나고, 그 번뇌에 괴로워하지요.”

지유 스님은 ‘이런 이야기가 이해는 되지만 실천이 안 되는 건 체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 수련, 즉 수행이 따라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정진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새해를 맞는 사부대중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하나를 부탁드렸다.

“제자들이 한 선사를 찾아 ‘정녕 깨달아 알게 된 바를 설해 주십사’했습니다. 선사는 ‘없다’ 했지만 제자들은 계속 간청했습니다. 선사가 한 마디 합니다. ‘지금, 이 자리서, 내가, 너희와 대화 나누고 있다는 사실 만은 분명히 안다! 너희가 가고 나면 나는 너희가 떠났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안다!’ 지금, 이 자리서, 자신을 바로 보셔야 합니다. 양 극단에 떨어지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세요.”

▲ 범어사서 원효암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일품이다.

가슴에 담고 있는 선구를 청하자 지유 스님은 ‘팔만대장경 속 일언이 다 좋지만 특별하게 새겨 놓은 건 없다’며 혹, 범어사 갈 일 있으면 동산 스님이 쓴 대웅전 주련을 새겨 보라 했다. 야부 스님이 ‘금강경’ 제목의 뜻을 설하며 서문에 쓴 게송이다.

거룩하고 위대하신 법왕
(마하대법왕 摩訶大法王)
짧지도 또한 길지도 않다
(무단역무장 無短亦無長)
본래 검지도 희지도 않지만
(본래비조백 本來非白) 
인연 따라 황청으로 나타난다.
(수처현천황 隨處現靑黃)

금정총림 방장 지유 스님은 소탈하다. 법문 또한 담백하다. 허나 깊다! 바다 속을 묵묵히 흐르는 강을 보고 싶다면 지유 스님을 찾아 보라. 청량한 선미(禪味)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채문기 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1276호 / 2015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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