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타종식의 의미
새해 타종식의 의미
  • 김형규 기자
  • 승인 2015.01.05 1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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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乙未)년 새해가 밝았다. 올 새해도 범종(梵鐘) 소리와 함께 시작됐다. 서울 보신각의 타종식을 시작으로 나라 곳곳에서 범종 소리가 축복처럼 울려 퍼졌다. 범종은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版)과 더불어 불교의 사물(四物)이다. 깊은 산 속 사찰에서만 듣던 범종의 소리를 도심 한복판에서 들을 수 있으니 새해를 맞이하는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지구촌 곳곳에서도 신년 축하행사가 열렸다. 거대한 전광판의 시계를 바라보며 숨을 죽이고, 1월1일 0시를 기해 화려한 크리스털 공이 내려오며 새해의 시작을 알리기도 했다.

1월1일 울리는 범종의 울림은
도리천 같은 천상의 행복 의미

불교에선 지옥 중생 구제 성물
우리가 현실지옥 타파 범종돼야


그러나 우리처럼 타종으로 새해의 서막을 알리는 나라는 드물다. 범종의 장중하고 묵직한 울림은 환호나 기쁨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가슴 깊숙한 곳에서 경건함이 밀려온다. 선물 받은 비싼 옷에서 느끼는 기쁨이라기보다 한 땀 한 땀 바느질해 완성한 새 옷을 앞에 둔 경이로움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그러고 보면 새해는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새날이 아니라 365일의 지난날들이 쌓이고 쌓여 만든 결과물이다.
새해에는 33번의 종을 친다. 33번의 타종에는 불교적 의미가 담겨있다. 33천은 우주의 중심인 수미산 정상의 도리천을 상징한다. 그곳에는 제석천(帝釋天)을 비롯한 33천이 주석하고 있다. 이들은 수명이 무한하고 병이 없으며 항상 행복하다. 그래서 새해에 울리는 33번의 타종은 33천에 살고 있는 그들처럼 모두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여망이 담겨있다.

그러나 사찰에서는 새해뿐만 아니라 아침저녁으로 범종을 친다. 범종을 치는 것은 같지만 의미는 다르다. 더 깊고 심원하다. 축복이 아니라 그 자체로 수행이다. 불교에서 범종은 지옥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자비의 성물이다. 스님들은 범종을 아침 28번, 저녁 33번을 친다. 28번은 욕계, 색계, 무색계 등 3계를, 그리고 33번은 우주의 꼭대기인 도리천을 상징한다. 범종의 울림은 곧 부처님의 법음이다. 그 소리가 삼계와 33천까지 두루 퍼져 모두가 성불하기를 기원한다. 스님들은 범종을 칠 때 게송을 읊는다. 지옥중생을 위한 축원이 담겨있다. “원컨대 이 종소리 법계에 두루 퍼져서 철위산 아래 어두운 지옥 다 밝게 하고, 지옥·아귀·축생 삼도의 고통을 벗어나며 칼산의 지옥고통 없애주어 모든 중생이 깨달음을 이루게 하소서.”

범종은 불교의 사물 중에 소리가 가장 멀고 길다. 깊은 울림이 지옥 끝까지 닿아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지옥 중생의 고통을 해소하고 깨달음에 이르기를 간곡히 기원한다. 따라서 범종은 나의 행복과 안녕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옥중생의 고통을 생각하며 반드시 구원하겠다는 서원을 벼리는 도구이다.

▲ 김형규 부장
그러나 돌이켜보면 지옥은 다른 곳에 있지 않았다. 지금 숨 쉬며 살고 있는 삶의 한 복판에 지옥은 머물러 있다. 지난 한 해 우리 국민들은 모두 지옥을 경험했다. 이제 갓 피어난 아이들을 하릴없이 바다에 묻어버리고 그 비통함에 잠 못 이룬 날이 많았다. “살려달라”는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도 남 탓을 했다. 진상조사를 요구하며 단식을 벌이는 희생자 가족들 앞에서 폭식투쟁을 벌이는 무도한 일도 벌어졌다.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인물들이 고위공직자가 되는 역사퇴행도 끊이지 않았다. ‘땅콩회향’으로 알려진 대기업 총수 자녀의 ‘갑질’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그 분노 사이로 ‘을’인 수많은 노동자와 가난한 이웃들이 하나둘 해고가 되거나 목숨을 끊었다. 그 지옥을 불러들인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었다. 지혜가 없어 거짓말과 진실을 구분 못했고, 알아도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새해를 축복하는 범종이 울렸지만 우리의 앞날은 온통 잿빛이다. 이제 우리 스스로가 범종이 돼야 한다. 지옥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울림이 우리의 몫이 돼야 한다. 자신의 몸을 때려 소리를 내는 범종처럼 새해에는 우리 자신을 채찍질해야 한다. 우리의 무지와 나태함과 나약함을 참회해야 한다. 세상을 울리는 범종이 많아질수록 울림은 더욱 웅장해지고 그만큼 세상은 훨씬 맑아질 것이다.

김형규 kimh@beopbo.com

[1277호 / 2015년 1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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