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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대산 상원사-사자암-보궁

폭설에 뒤덮인 하얀 침묵서 적멸의 찬탄을 듣다

▲ 상원사 문수전 5층 석탑 앞에 펼쳐진 오대산 설경.

하룻밤 사이에 20㎝의 소나기눈이 강원도 일대에 내렸다는 소식에 오대산으로 걸음 했는데 헛되지 않았다. 상원사 영산전 석탑 앞으로 펼쳐진 오대설산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날 새고 눈 그쳐 있다
뒤에 두고 온 세상,
온갖 괴로움 마치고
한 장의 수의에 덮여 있다"

폭설(暴雪)은 세상의 소리를 단박에 덮어버리고 ‘침묵’을 그려낸다. 그 침묵의 끝자락서 전해오는 팽팽한 긴장감! 평온과 적막이 빚어낸 이 긴장감은 불현듯 마주한 죽음에서 시작됐는지 모른다. 살짝 밀려온 공포감을 떨쳐내기보다, 죽음의 가온으로 한 발 더 들어가 직면하는 게 낫겠다싶어 사자암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 (왼쪽)바람살에 눈가루 흩날리니 상원사 오르는 길이 신비롭게 다가온다. (오른쪽)'초겨울 갓밝이 속에 나툰 사자암이 시린 듯 따듯하다.

상원사서 사자암으로 가는 길가의 나무들은 참회기도라도 올리는 듯 앙상한 가지로 하늘을 받치고 있다. 품었던 열매를 떨어뜨리고, 치장했던 잎도 바람에 맡겨 땅으로 내려앉게 했던 그 나무들이다. 숲은 그렇게 제 스스로 비워갔다. 그러고는 세밑 밤 내내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을 한 점도 마다않고 온 몸으로 품고는 이내 설산으로 변해갔을 터다.

신라의 보천(寶川)과 효명(孝明) 형제도 이 곳 어디선가 푸른 연꽃을 보았을 것이다. 두 형제는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멋진 사내들이다. ‘신라 신문왕의 아들 보천태자는 아우 효명과 더불어 저마다 일천명을 거느리고 성오평(省烏坪)에 이르러 여러 날 놀다가 태화(太和) 원년(元年)에 형제가 함께 오대산으로 들어갔다.’ 출가의지를 오래 전부터 다졌을 법도 한데, 그런 이야기는 없고 저마다 1000명과 놀다가 아무도 모르게 오대산으로 입산출가 했단다! 유쾌한 반전이다.

보천은 오대산 중대 남쪽 밑 진여원터 아래 푸른 연꽃이 핀 것을 보고 그 곳에 암자를 지었고, 아우 효명은 북대 남쪽 산 끝에 푸른 연꽃이 핀 것을 보고 그 곳에 암자를 지었다. 형제는 함께 염불하며 정진했고, 오대에 나아가 예배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느 날, 장군 네 명이 찾아와 형제에게 왕위계승을 청했다. 보천은 울면서 사양했고, 아우 효명은 수락해 왕위에 올랐다. 그가 바로 성덕왕이다.

보천을 보라. 왕의 자리조차 울면서 사양하지 않는가? 구도를 향한 절실함이 묻어나 있는  범상치 않은 반전이다. 자장으로 태동한 문수성지 오대산은 보천으로 인해 동서남북, 그리고 중대에 각각 1만 보살이 머무는 ‘5만 보살 상주 성지’로 확대됐다. 연꽃처럼 펼쳐진 다섯 개의 봉우리 안에 석가모니를 비롯한 5백 아라한과 문수, 관음, 지장, 대세지 등의 5류 성중 5만 진신이 법을 펴고 있는 셈이다.

성덕왕 즉 효명이 창건한 진여원(眞如院)이 지금의 상원사다. 6·25 한국전쟁 중 월정사는 불탔어도 상원사만은 건재했다. ‘한암’이라는 고매한 학(鶴)이 큰 둥지를 틀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서울 봉은사에서 법을 폈던 한암 스님은 일제의 감시로 포교와 수행이 어렵게 되자 1927년 오대산으로 들어온다. 그 때 세상에 남긴 한 마디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추는 학이 될지언정 삼춘(三春)에 말 잘하는 앵무새가 되지 않겠다!’ 일제의 압제 속에서 허수아비 노릇하며 살지 않겠다는 수좌의 천명이다. 이후 1951년 입적 전까지 27년 동안 산문을 나서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 일본 이께다 경무국장이 오대산 한암 스님을 찾아와 물었다.

“이번 전쟁, 어느 나라가 이길까요?”

연합군의 승리를 장담하면 당장 목이 떨어질 수 있고, 일본군의 승리를 장담하면 ‘앵무새’가 되고 만다. 원 안에 있어도 죽고, 원 밖에 나와도 죽는 상황에서 어찌할 것인가? 목을 내놓을 것인가, 앵무새가 될 것인가?

“이번 전쟁은 덕 있는 나라가 이긴다!”

일본은 패망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상원사가 인민군 은신처로 쓰일 수 있다는 우려감에 국군은 상원사 소각 명령을 내렸다. 국군장교가 절에 남아 있던 한암 스님에게 이 사실을 알리니 스님은 “잠시 기다리라” 하고는 가사장삼을 수한 후 법당에 앉았다. 그리고는 한마디 이른다.

“불을 질러라! 나는 불법을 위해 죽을 것이다. 중이 죽으면 어차피 화장해야 하는 법. 절을 지키는 것은 중의 본분이다. 나는 마지막까지 중의 위치를 지키다 죽을 것이다.”

장교는 법당 문 한쪽 태우고 물러갔다.

▲ 한 낮의 사자암 겨울.

오대산 중대(中臺) 사자암은 샘터다. 한여름, 적멸보궁을 향해 땀 뻘뻘 흘리며 오르는 사람들에게 시원한 물 한 모금 전하는 샘터다. 또한 사랑채다. 한 겨울, 산을 오르는 나그네들의 언 발을 잠시라도 녹여주는 그런 사랑채다. 그리고 사자암은 ‘문 없는 문’을 열고 닫는 현묘(玄妙)한 암자다. 사자암 아랫길은 상원사로 향하고, 윗길은 자장율사가 부처님 사리를 안치한 보궁으로 이어진다. 삶과 죽음의 경계, 세간과 출세간의 길목에 사자암은 자리하고 있다. 사자암을 지나 윗길에 접어든 순간, 적멸의 세계로 한 발 내딛은 것이다.

▲ 사자암서 20분 걷다보면 적멸보궁에 다다른다.

비로봉 가는 산길에서 갈라진 에움길 끝에 보궁이 있다. 108배라도 올린 후 마음 가다듬고 합장한 채 전각 뒤로 돌아가 하얀 눈밭에 홀로 서 있는 사리탑비를 보라! 한 티끌의 번뇌마저도 완벽하게 털어버린 자리다. 생멸이 사라진 무위적정의 세계, 적멸(寂滅)이다.

▲ 적멸보궁 뒤 사리탑비를 보라! 생멸이 사라진 자리다.

마지막 호흡 거두기 직전 세간에 남긴 선사들의 시 한 수는 적멸의 찬탄이다.

중국의 천동정각은 ‘꿈 같고 환영 같은/ 아, 육십칠 년이여/ 흰 새 날아가고 물안개 걷히니/ 가을 물이 하늘에 닿았네’ 했고, 한국의 사명유정은 ‘이제 진여의 세계로 돌아가리/ 어찌 수고롭게 오가며/ 허깨비 몸을 괴롭히리요/ 나 이제 열반의 세계로 돌아가/ 대화(大化)에 순응하리라’ 했다.

갓밝이 속 사자암이 신비롭게 다가오는 새벽녘, 누군가 영하 24도의 새벽 공기를 가르며 사자암을 지나 보궁으로 향한다. 앵글에 담고 싶었지만 셔터에서 손을 뗐다. 적멸을 담으려는 그의 마음, 함부로 어지럽히면 안 될 것 같아서다. 오대산에 아침 햇살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사리탑비 서 있는 눈밭이 다시 한 번 하얗게 드러났다. 바람 지나간 흔적만 남아 있는 저 위에, 황지우의 ‘설경(雪景)’을 써 본다.

날 새고 눈 그쳐 있다
뒤에 두고 온 세상,
온갖 괴로움 마치고
한 장의 수의에 덮여 있다
때로 죽음이 정화라는 걸
늙음도 하나의 가치라는 걸
일러주는 눈밭
살아서 나는 긴 그림자를
그 우에 짐 부린다

천고의 학 한암 스님은 이 한 마디를 남기고 좌탈입망했다.

“오늘이 음력으로 2월14일이지.” 

채문기 본지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도·움·말]

 

길라잡이
들머리는 월정사. 월정사에서 약 9Km 지점에 상원사 주차장이 있다. 상원사서 보궁까지는 약 1.5Km. 상원사에서 중대로 이어지는 길은 두 갈래. 한 갈래는 옛 스님들이 걸었던 오솔길이고, 또 한 길은 차 두 대가 오갈 수 있는 큰 길이다. 오솔길이 운치 있지만 겨울엔 다소 위험하니 큰 길을 권한다. 상원사서 사자암까지는 대략 30분, 사자암서 보궁까지는 20분이면 족하다. (상원사. 033-332-6060, 사자암. 033-333-4729)

이것만은 꼭!

 
◀ 상원사동종=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종이다. 안동루문에 있던 것을 조선 예종이 상원사로 옮겨 놓은 것이다. 동종이 처음 자리했던 사찰은 지금도 알 수 없다. 성덕왕 재위시절 조성됐다.

 
▶ 영산전 석탑=석탑의 부재를 쌓아올린 이 석탑이 언제 조성됐는지는 알 수 없다. 부재에 새겨진 삼존불은 투박하지만 정감 있다.  
 

 
◀ 상원사 문수전 벽화=
세조와 문수동자의 전설을 형상화한 그림이다. 세조가 등을 밀어 준  동자에게 ‘너는 어디가서 옥체를 씻었다고 말하지 말라’ 하자, 동자는 ‘대왕도 어디가서 문수보살을 친견했다고 말하지 마시오’라 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 상원사 문수동자상=
높이 98㎝. 1446년 조선 초기 조성된 문수동자상(국보)은 오대산 문수신앙의 상징이다.

암살 위험에서 세조를 구해준 고양이를 기리는 상원사 고양이상과 한암 스님이 사자암에 꽂아둔 지팡이가 큰 단풍나무로 자랐다는 ‘한암스님 단풍나무’를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1277호 / 2015년 1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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