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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 종단’을 이루려면

흔히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고 한다. 힘 모아 일순에 돌파하는 일 못지않게 문제를 지며리 풀어가기 쉽지 않아서다. 그 과정에서 개혁 주체는 늘 깨어있어야 한다.

새해를 앞두고 세모에 법보신문 벗들과 곡차를 나눴다. 교계 언론이 어디까지 보도해야 옳은지 토론이 오갔다. 예시된 사례가 이른바 ‘음란사진 기사’다. 한 인터넷 신문이 보도한 기사의 들머리는 사뭇 준엄하다. “승려끼리 성행위를 하는 장면이 찍힌 사진이 유포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연이은 승풍 실추 행위에 조계종단이 자정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어떤가.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는 학자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내 판단은 간명하다. 그 ‘기사’는 옳지 않다. 기사에 따르면, 주요 사찰에 발송된 우편물과 문자 메시지에 문제의 사진이 첨부됐다. 발송한 사람은 두 사람의 법명을 적은 뒤 징계를 바란다고 썼다. 기사는 두 스님이 ‘환속’한 사실을 적었다.

만약 두 스님이 종단 권력이나 부, 명예를 지니고 있다면 “연이은 승풍 실추 행위에 조계종단이 자정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문제의 사진을 대량 유포하는 것은 ‘인권 유린’이다.

오해 없기 바란다. 두 스님을 두남둘 뜻은 없다. 비구와 비구니가 계율을 엄히 지키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출가 뒤에 스님들도 얼마든지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순간이 올 수 있다. 다른 이에 직접적 피해가 없는 한, 선택과 책임은 온전히 당사자 몫이다.

가령 남도의 박지섬과 반월섬 사이엔 ‘중 노두 전설’이 있다. 두 섬 사이 갯벌에 놓인 노두 사연은 애틋하다. 박지섬 암자에는 비구가, 반월도 암자에는 비구니가 살고 있었다. 비구는 바다 건너 어른거리는 비구니 자태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밝은 달밤에 들려오는 비구니 목탁 소리로 정은 무장 깊어갔다. 마침내 비구는 망태에 돌을 담아 반월섬 쪽으로 부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해가 흘렀다. 비구니도 광주리에 담은 돌을 머리에 이고 박지섬 쪽으로 부어갔다. 시간이 흘러 두 스님은 중년이 되었고 마침내 돌무더기 길에서 만났다. 손잡은 두 스님은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너무 멀리 온 두 스님은 밀물이 들어오면서 섬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다시 썰물이 되었을 때 갯벌에는 노두 길만  있을 뿐 두 스님은 보이지 않았다.
사족으로 묻는다. 남도의 아름다운 전설에 계율의 칼날을 들이댈 사람 누구인가. 두 섬의 스님들이 승풍을 실추시켰다고 ‘심판’할 사람은 드물 성싶다.

나는 사진 속의 두 스님이 누구인지 모른다. 사진을 찾아볼 생각도 없다. 사진을 보지 못했지만 누군가의 ‘몸짓’을 ‘음란’으로 단정할 ‘용기’는 없다. 다만 묻고 싶다. 제 남편, 제 아내를 가진 저 숱한 기득권층이 지금도 곳곳에서 돈으로 저지르는 일탈이야말로 ‘음란’의 이름에 값하지 않을까. 두 사람이 어떤 사랑을 어떻게 일궈왔는지 누가 감히 예단할 수 있는가.

무엇보다 그 사진으로 말미암아 조계종단이 “자정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가? 그 또한 전혀 다른 문제다. 이참에 나는 총무원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나도는 ‘은처승 논란’도 매듭을 지었으면 한다. 증거를 내놓든가, 아니면 침묵해야 옳다. 근거도 내지 않고 종단을 살천스레 몰아세워 대체 어떤 ‘개혁’을 이룰 깜냥인가.

종단의 노동위나 화쟁위가 나름 활발하게 사회참여를 해온 사실에 대해서도 ‘시늉뿐이며 종단의 문제를 감추려는 것’이라는 비난은 과연 얼마나 설득력을 지닐까. 세월호 유족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통에 동참하는 스님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

명토박아둔다. 청정 종단을 만들자는 사부대중 뜻에 십분 공감한다. 하지만 그것을 이루려면 그 주체들에서 청정의 향기가 물씬 묻어나야 옳다. 뒤죽박죽으로 개혁은 더 어렵다.

손석춘 건국대 교수 2020gil@hanmail.net

[1277호 / 2015년 1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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