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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그 친구들

기자명 원빈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5.01.12 11:36
  • 수정 2015.10.20 18:09
  • 댓글 0

절에서 생활하면 청소를 참 많이도 합니다. 생활장소를 청정히 하는 것이 마음의 번뇌를 닦는 것과 연관이 있어서겠지요.

부정적 감정 수명 오직 90초
이는 그저 연약한 존재일 뿐
가만히 바라보고 대발원하면
수행의 꽃 피우는 원동력 돼

어느 날 대중들이 운력을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띵가띵가 놀고 있는 사미를 발견한 비구가 걸레를 빨아오라는 미션을 줍니다. 사미는 속으로 ‘이 비구가 나를 너무 괴롭힌다’라고 생각했지만 티를 내면 ‘참회’가 예상되기에 억지로 그 순간을 모면했습니다. 걸레를 빨기 위해 강가로 간 사미는 여전히 마음이 불편합니다. 불만의 눈으로 힘차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이렇게 발원합니다. “내가 지혜와 언변이 부족하여 저 비구에게 무시를 당하는구나! 지금 도량을 청소한 이 공덕으로 세세생생 나는 곳마다 이 강물과 같이 막힘없는 지혜와 언변을 갖추어 누구도 나를 무시하지 못하도록 하겠다!” 한편 일을 시킨 비구도 마침 강가를 지나다 사미의 발원을 듣게 됩니다. ‘갓 출가한 사미조차 분심(憤心)을 일으켜 저렇게 큰 발원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발원하길 “세세생생 나는 곳마다 모든 난문(難文)에 현답(賢答)할 수 있는 지혜와 변재를 갖추고 싶습니다. 또한 저 사미의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밀린다왕문경’의 두 주인공인 밀린다왕과 나가세나 존자의 전생담입니다. 밀린다왕이 된 사미는 그리스인으로 태어나 발원대로 수승한 지혜와 변재를 가진 인도의 왕이자 뛰어난 논쟁가가 되었고, 나가세나 존자가 된 비구는 인도인으로 태어나 젊은 나이에 아라한과를 얻어 밀린다왕의 모든 난문에 막힘없는 현답을 하게 됩니다.

전생의 분심이 남아 있었던 걸까요? 밀린다왕의 태도는 매너를 갖추고 있었지만 그 말속에는 가시가 돋혀 있습니다. 밀린다왕의 존재의 이름에 관한 첫 번째 질문에 나가세나 존자는 ‘이름은 다만 약속일뿐이고, 그 속에 실체는 없다’라고 답합니다. 필자와 더불어 불교의 무아론에 익숙한 불자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현답이지만 자아의 실체를 믿고 있는 밀린다왕에게 이 대답은 받아들일 수 없을뿐더러 논쟁의 주도권을 잡을 기회였습니다. 얼씨구나하고 밀린다왕은 가시 돋힌 말로써 공격하지만 나가세나 존자의 현명한 비유에  그날 밀린다왕이 완전히 밀립니다. 결국 두 번째 문답의 날부터는 밀린다왕의 태도가 극도로 공손해지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기준에 어긋나는 일을 타인이 행하면 반감을 일으킵니다. 심해지면 짜증과 분노가 치솟아 오릅니다. 이것이 자신에게 향하면 한이 쌓이고, 타인에게 향하게 하면 해악을 끼치게 되는데요. 반감, 짜증, 분노, 한, 해악을 싸잡아 ‘분노와 친구들’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 ‘분노와 친구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반응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테일러(Jill Taylor)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부정적 감정의 자연적 수명은 90초이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는 그 순간, 90초만 나무토막처럼 다른 2차적 행위를 멈춘 채 그 마음을 관찰 할 수 있다면 우리는 고통을 면할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희망적인 말입니까! 모든 부정적 감정이 알고 보면 이렇게 연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우리가 그를 적극적으로 도와줘서 헐크로 만들어버리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분노와 친구들’이 찾아오면 그냥 가만히 마음을 살피시면 됩니다. 필요한 시간은 오직 90초일뿐입니다.

▲ 원빈 스님
행복명상 지도법사
우리의 사미는 참 훌륭합니다. 비록 분노를 온전히 제어하지는 못했지만 분심을 전환해 대발원의 힘으로 돌렸죠. 그리고 그 발원력으로 세세생생 큰 위세를 가진 존재로 태어나 지혜와 변재를 늘려갔고, 나가세나 존자를 만나 수행의 꽃을 피우게 되는 원동력으로 삼았습니다.

하루에 수십 번 만나는 ‘분노와 친구들’에 대해 우리 두 가지 전략으로 대해보면 어떨까요? 90초만 가만히 바라보거나, 대발원으로 전환하거나. 너무나도 흔하게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는 부정적 감정들에 휘둘려 지옥을 전전하기보다는 현명하게 활용하여 행복의 근원으로 삼는 불자님들이 되시기를 발원하며 첫 번째 연재는 붓다의 금구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


[1278호 / 2015년 1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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