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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평화를 향한 인류의 지혜(상)

“인간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지구상에선 매우 희귀한 일”

▲ 달라이라마가 세계 각국에서 법문을 듣기위해 북인도 다람살라를 방문한 불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라디오를 듣거나 신문을 읽으면 우리는 폭력, 범죄, 전쟁, 재난 등 예전과 똑같은 슬픈 뉴스들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선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이러한 보도가 없는 날은 단 하루도 없습니다. 현대에 우리의 소중한 삶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은 명확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부딪히는 수많은 나쁜 뉴스들은 앞선 세대들은 경험하지 못 했을 것입니다. 공포와 긴장 상황에 관한 소식을 지속적으로 접하다 보면 세심하고 배려심 많은 사람들은 현대 세계의 진보에 대해 심각하게 회의를 품게 됩니다. 부정적인 문제가 심각할수록 더욱 산업화된 사회라는 점은 매우 아이러니한 대목입니다. 과학과 기술은 다양한 분야에서 비약적인 진보를 이루어 냈습니다. 하지만 인간에 관한 기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인류는 현재 그 어느 때보다도 문맹률이 낮지만 이러한 보편적인 교육이 선량함과 미덕을 길러내기 보다는 오히려 정신적인 불안정과 불만족을 조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질적인 풍요와 기술의 진보에 대해선 이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고통을 극복하거나 평화와 행복을 완성하는데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진보와 개발에 있어서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인류는 물질적 풍요로움과
기술의 진보에도 불구하고
고통과 갈등을 극복하거나
행복한 삶 완성하는데 실패

이젠 인류의 진보와 개발에
무언가 심각한 오류 있다는

결론 내릴 수밖에 없는 시점

살아있는 모든 동물과 식물
고통을 싫어하고 행복 원해
보편적 인도주의 실천할 때

제 때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인류는 머지않은 미래에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저는 결코 과학과 기술에 대해서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늘날 우리 인류가 경험하고 있는 물질적인 편리와 풍요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해 더 풍요로운 이해를 하는데 있어서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과학과 기술이 지나치게 강조된다면 인류는 경험과 지혜를 잃어버릴 위험이 큽니다.

과학과 기술은 물질적으로 엄청난 편리함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오늘날 주지하다시피 모든 국가에서 발견되고 있는 인류문명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중심 역할을 해 온 정신적인, 인도주의적인 전통가치를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과학과 기술이 가져온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물질적 혜택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인류의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더 많이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똑같은 고통, 두려움 그리고, 긴장의 문제들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물질적인 발전과 정신적인, 인간적인 가치의 발전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이와 같이 획기적인 방향 전환을 위해서는 인도주의적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 절실합니다.

저는 지금의 세계적인 도덕적 위기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함께 염려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위 문제점들에 대해 공감하고 우리 사회를 좀 더 자비롭고, 정의롭고, 공평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도주의자와 종교 수행자들을 향한 저의 호소에 많은 사람들이 동참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불자라고 해서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더군다나 티베트인으로서 말하고 있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국제정치에 대한 전문가로서 말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비록 어쩔 수 없이 국제정치에 대해 언급하게 되겠지만 오히려 저는 단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말하고 있습니다. 대승불교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위대한 종교들의 기반이 되고 있는 인도주의적 가치에 대한 지지자로서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저는 다음과 같은 관점을 여러분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첫째, 보편적 인도주의는 지구촌 문제해결에 필수적입니다.

둘째, 자비심은 세계평화를 위한 축입니다.

셋째, 세계의 모든 종교 역시 이미 이와 같이 세계평화를 위해 존재합니다. 특정 이데올로기의 구분 없이 모든 인도주의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넷째, 개인은 인류에 봉사하는 기구를 만들 보편적인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 중 일부는 자연재해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수용해야 하며 침착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하지만 다른 문제들은 인간의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되었고 우리 스스로 만든 것들입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문제들은 바로 잡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중 한 가지는 정치적 또는 종교적인 이념 갈등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를 단일한 인류가족으로 묶어주는 기본적인 인성(人性)을 망각한 채 사소한 목적을 위해 서로 싸우는 경우가 이에 해당됩니다. 세상의 서로 다른 종교, 이데올로기, 정치체계는 인간의 행복을 성취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점을 되새겨야 합니다. 이런 궁극적인 목표를 결코 잃지 말아야 하며 절대로 수단을 목적 위에 올려놓아서는 안 됩니다. 물질이나 이념을 넘어서는 인간성의 우월은 항상 지켜져야 합니다.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크고, 다른 것에 비해 훨씬 더 심각한 독보적인 위험,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직면하고 있는 위험은 핵무기의 파괴 위협입니다. 이 위험에 대해 상술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말 그대로 세계의 미래를 손 안에 쥐고 있는 핵 강국의 지도자들에게 호소하고자 합니다. 이 가공할만한 파괴적인 무기를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에게 호소합니다. 그리고 지도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일반 대중들에게 호소합니다. 저는 우리 모두에게 분별력을 갖고 모든 핵무기를 해체해서 파괴하라고 호소합니다. 핵전쟁이 일어나면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그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비인간적이고 비정한 파괴를 깊이 숙고한다면 어떻게 경악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인류를 파괴하는 원인을 알고 이를 제거할 시간과 수단을 가지고 있는 한 이를 제거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문제의 원인을 몰라서, 또는 원인이 파악되어도 이를 제거할 수단이 없어서 그러한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핵무기 위협은 이러한 경우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인간처럼 좀 더 진화한 종(種)에 속하는 생명체이든, 아니면 동물처럼 좀 더 단순한 형태에 속하든 모든 생명체는 기본적으로 평화와 안락, 생명의 안전을 추구합니다. 생명은 인간 누구에게나 소중하듯이 마찬가지로 말 못하는 짐승들에게도 소중합니다.

인간에게는 정신적인 또는 육체적인 행복과 고통이 있습니다. 그 둘 중 정신적인 행복과 고통이 더욱 강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통을 견디고 보다 지속적인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마음수련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더불어 보다 더 보편적이고 확고한 ‘행복관’을 가져야 합니다. 내면의 평정(平靜)과 경제적 발달 그 보다 더 중요한 세계평화, 이 세 가지 요소의 조합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인류에 대한 ‘보편적 책임감’을 계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신조, 인종, 성(性), 국적에 의한 차별 없이 모든 인류에 대한 깊은 관심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보편적 책임감에 관한 개념은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고 일반화시킬 수 있는 단순한 진리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는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성적인 우리 인간이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지구상에는 점점 더 많은 고통이 뒤따르게 됩니다. 생명에 대해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타인을 이용하려고 한다면 일시적인 이득을 획득할 수는 있겠지만 길게 보면 자기 자신의 행복마저도 확보할 수 없게 됩니다. 세계평화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행복을 추구함에 있어서 인류는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는데 그것은 종종 잔인하고 혐오감을 주는 것들이었습니다. 인간이란 위치에 극히 어울리지 않는 방법들을 사용해 인간은 다른 사람이나 다른 생명체에게 고통을 가하면서 자신의 이기적인 이득을 추구했습니다. 결국 이런 행동은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고통을 주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매우 희귀한 일입니다. 이 기회를 되도록이면 효율적이고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입니다. 보편적인 생명현상에 대해 바른 관점을 가져야 하고 그러한 경우 한 개인이나 단체의 행복과 영예가 타인의 희생을 바탕으로 추구되는 일이 없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지구촌 문제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요구합니다. 급격한 기술진보, 국제거래 그리고 범국가적인 관계 증가 등의 결과로 세계는 점점 더 좁아지고 상호 의존하는 강도가 더욱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서로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대체로 가족 단위에서 문제들이 발생했고 자연적으로 그런 수준에서 해결되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더욱 깊이 상호의존하게 되었고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보편적인 책임의식이 없다면 ‘사해형제(四海兄弟), 사해자매(四海姉妹)’ 인식이 없다면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인류 대가족의 한 부분이라는 이해와 믿음이 없다면 생존 그 자체에 대한 위험을 우리 스스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한 국가의 문제는 내부적으로, 그 자체만으로 만족스럽게 해결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많은 문제점들의 해결은 이웃 국가의 이해와 태도 그리고, 협력에 너무나도 많이 의존하고 있습니다. 보편적인 인도주의를 바탕으로 세계의 많은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세계평화를 향한 확고한 기반으로서 유일해 보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미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모든 존재는 행복을 소중히 여기고 고통을 원하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인류공동체를 구성하는 멤버로서,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이웃의 감정과 염원을 무시하고 우리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잘못입니다. 실용적인 측면에서도 현명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때 타인을 고려하는 것이 좀 더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제가 명명한 이른바 ‘현명한 이기심(wise self-interest)’에 이르게 됩니다. 이는 좀 더 나아가 ‘절충된 이기심(compromised self-interest)’ 또는 ‘상호이익’으로 전환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비록 점차 증가하는 국가 간의 상호 의존성으로 인해 공감하는 협력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예상할 수도 있지만 타인의 감정과 행복에 무관심한 상태에서는 진정한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없습니다. 탐욕과 질시가 주요한 동기유발의 요인이 될 경우 인간이 조화롭게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접근으로 인해 발생한 정치적인 문제는 정신적인 접근으로는 모두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길게 보면 그런 정신적인 접근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마주치게 되는 그 문제들의 근본원인을 극복해 낼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인류가 임시적인 방편으로만 이러한 문제들을 접근하게 된다면 미래 세대들은 엄청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지구상의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고 자원은 급격히 고갈되고 있습니다. 

<출처=달라이라마오피스 홈페이지>

번역=백영일 번역전문위원 yipaik@wooribank.com


[1278호 / 2015년 1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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