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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이준 실상과과학연구원장

“이번 생엔 과학자·불자 반반, 다음 생엔 평생 수행자”

▲ 이준 실상과과학연구원장은 “공부와 수행으로 욕심내고 화내는 마음이 줄어든 자리에는 맑은 행복이 채워진다”며 정진하는 불자가 될 것을 당부했다.

저널리스트 말콤 글래드웰은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1만 시간의 법칙(The 10,000 hour rule)’을 이야기했다. 많은 연구가들이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시간으로 계산했더니 1만 시간이 걸린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글래드웰은 이러한 결론을 ‘1만 시간의 법칙’으로 소개했다. 1만 시간은 대략 하루 3시간, 일주일에 20시간씩 10년이란 세월을 특정 분야에 매달려 연습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한 분야에 매료돼 이만한 노력을 기울였다면 ‘전문가’라 불릴 자격이 충분하다. 그의 몸과 마음에는 결과의 유무를 떠나 노력의 시간 속에 쌓인 지혜와 지식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처음 과학도 자처하며 종교 무시해
생멸근원 답을 찾고자 불교에 관심
수행모임 결성해 나눔과 정진 실천
화두는 “과학과 불교 연관성 규명”

이준(78·진공) 건국대 명예교수는 화학을 전공한 공학도이다. 평생 대학 강단에서 연구에 매진해 왔다. 그러던 중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지천명(知天命)인 50세를 앞두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푹 빠졌다. 불교와의 첫 인연은 비록 늦은 나이였지만 강력했다. 부처님과의 인연에 순응하면서 바라밀을 실천하고 전하는 것은 마음의 흐름처럼 자연스러웠다. 지난 2002년 건국대 공과대학장을 지내다 정년퇴임한 후에는 ‘실상과과학연구원’을 열어 본격적으로 과학과 불교의 연관성을 연구하는데 몰입했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20대 청년과 같은 순수와 열정으로 팔을 걷어 붙였다. 조계종 중앙신도회, 참여불교재가연대, 한국교수불자연합회, 불교아카데미 마이리더스클럽 등에도 동참했다. 말 그대로 그의 황혼기 불심은 청년의 그것처럼 강렬했다.

지인들은 그를 지(知)와 행(行)이 합일된 ‘불교전문가’라 했다. 또 부처님 법대로 살고자 노력하는 공부인(工夫人)이라고 입을 모았다. 학자이자 불자인 이인자 전 불교여성개발원장은 ‘뜨거운 열정’에 공감했다. “불법을 공부하고 수행하면서 낮은 마음으로 실천하는 이준 불자님”, 이 전 원장은 그렇게 불렀다. 한 번 인연을 맺으면 끝까지 함께하려는 원력보살이라고 했다. 그는 또 이준 명예교수가 어려움에 처한 한국교수불자연합회가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사재를 털어 지원했을 땐 감동의 눈물을 흘렸고 강연과 법회, 수련회에 솔선하는 모습에선 열정적인 정진의 마음을 느껴 또 한 번 고마웠다고 했다.

스님들 또한 참다운 불자라고 칭송했다.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은 불교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고 불교발전을 위해서라면 쓴 소리도 마다하지는 않는 죽비같은 존재라 했다. 스님은 “2012~2013년 진행된 성철 큰스님의 수행도량 순례법회에서 직접 집전을 하고 동참자들을 다독이면서 동참자 모두가 원만하게 회향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면서 “무엇보다 한국불교의 안타까운 부분들을 뼈아프게 지적하면서 긍정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동참하는 모습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과 애정, 이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지금 그의 삶을 보노라면 이 원장은 태어날 때부터 불자인 것 같다. 전생에도 전전생에도 불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불교와의 인연은 뒤늦게 찾아왔다. 46세 되던 해인 1982년, 그 전까지 그는 종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종교란 지팡이와 같이 홀로 설 수 없는 마음 가난한 사람들이 짚고 일어서기 위한 도구려니 여겼다. 홀로 설 수 있는 자신 같은 사람에게 종교는 무의미하다고 판단해 오히려 멀리했다. 학문연구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을 터이니 종교에 따로 두남둘 마음도 없었으리라.

“연구와 강의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문득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궁극적인 의문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의 답은 종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해답을 얻고자 이곳저곳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개신교와 가톨릭의 교회를 찾아가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거부감이 앞섰다. 사랑과 평화, 봉사를 말하면서 역설적이면서 공격적이라고 할 만큼 배타적인 기독교인들을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내키지 않았고 자연스럽지 못했다. 여러 곳을 다녀봤지만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불교는 염두에 없었다. 그런 그에게 불교와의 인연은 묘하게 찾아왔다. 구하거나 찾지 않아도 때가 되면 맺어지는 것이 인연이라더니, 불교와의 만남이 꼭 그랬다. 중학교 때부터 절친한 사이였던 한 친구가 원불교 교무가 되어 나타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원불교 교수들을 위한 수련회가 있다며 참여를 제안했다. 수련회에 참석했다. 마침 원불교 교조 소태산 대종사의 언행록인 ‘대종경’을 읽는데 한 구절에 마음이 흔들렸다.

‘석가모니불은 진실로 성인 중의 성인이다. 내가 깨친 것은 석가모니부처님의 소분지 일이다.’

부처님은 어떤 성인인지, 그 분의 깨달음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러자 몸이 움직이고 마음이 움직였다.

“봉선사 통신강원 교양반에 입학해 불교공부를 시작했어요. 교양반을 졸업하고 사교과까지 마쳤습니다. 이후 삼일선원에서 각성 스님을 모시고 ‘능엄경’을 공부하고, 1987년 불자교수들의 공부모임인 불교교수협회를 결성해 운제 스님에게서 원효사상을, 원의범 선생에게서 인도철학을 배웠지요. 이 공부모임은 운제 스님이 입적하고, 2011년 원의범 선생이 병환으로 강의를 할 수 없을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공부할 수 있는 것이 꿈만 같았습니다. 어린 아이처럼 좋아했던 시간이었지요. 그러고 보니 저를 부처님께 인도해주신 분은 원불교 소태산 대종사인 셈입니다.”

이 원장은 1988년부터 퇴임할 때까지 건국대 불교학생회를 맡아 학생들을 지도했다. 또 한국교수불자연합회 창립 당시부터 참여해 교화부장, 부회장 등을 역임하고, 1999~2000년 제8대 회장으로 일했으니 ‘불자’로서의 길은 항상 분주했다. 참여불교재가연대, 조계종 중앙신도회 등서도 소임을 맡았다. 한 번 맺은 인연은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지인들의 말처럼 이 인연들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의 화두는 ‘과학과 불교의 연관성에 대한 규명’, 그것이다. 2002년 9월1일 정년퇴임 다음 날 ‘실상과과학연구원’을 개원한 이유이다. 그리고 이 연구원이 개원하는 데에는 티베트불교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라마의 가르침이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서구의 석학들은 1987년부터 2년마다 달라이라마를 모시고 일주일 동안 불교와 과학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마음과 생명(mind and life)’이라는 이 모임은 2000년부터는 매년 개최되고 있습니다. 서구의 석학들이 무슨 이유로 동양의 종교 중 하나인 불교, 그 가운데서도 티베트불교 수행자인 달라이라마를 모시고 과학을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학자인 그는 항상 의문을 갖고 사유한다. 습관처럼 굳어져 이젠 물 흐르듯 몸과 마음이 작용한다. 인류가 우주를 관측하는 최대 장비는 허블망원경이다. 허블망원경을 통해 은하계 내에 태양계와 같은 세계가 10억개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 우리 은하계 너머 안드로메다은하가 있고 그 너머에 대마젤란은하가 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안드로메다은하 내에도 태양계와 같은 세계가 10억개가 있고, 대마젤란은하 내에는 20억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게 됐다. 그러나 허블망원경으로 관찰할 수 있는 영역은 여기까지다. 그 너머는 여전히 미지의 세계다. 노 교수는 과학의 한계, 불교에 그 답이 있을 것이리라는 믿음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삼천대천세계를 이야기합니다. 삼천대천세계는 수학적으로 10억개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사는 우주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삼천대천세계가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현대과학이 이제야 알게 된 우주의 실상을 부처님께서는 이미 2600년 전에 명철하게 보고 계셨던 겁니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부처님의 가르침은 더욱 명료해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달라이라마는 불교적 입장에서 보면 현대과학은 실상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또 이러한 실상은 깊은 선정 속에서 볼 수 있다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서구의 석학들은 달라이라마와의 대화를 통해 불교의 가르침 속에서 과학의 근본원리를 찾아내고 현대과학의 나아갈 방향을 구합니다. 서구의 석학들이 달라이라마를 찾는 이유이자 실상과과학연구원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그는 달라이라마에게서 직접 가르침을 받고자 티베트불교 대법회인 칼라차크라에도 수차례 다녀왔다. 과학도인 그가 불법의 세계에 빠져든 것은 과연 불교의 과학성이 전부일까. 이 원장은 불법을 만난 후 삶의 변화를 체험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부처님 법을 공부하면서 많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공부하고 수행하는 것은 탐·진·치 삼독(三毒)을 멸하고 깨달음으로 나아가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부족한 중생이기에 그 경지가 어떠한 것인지 아직 짐작조차하지 못합니다. 어리석음은 어쩔 수 없지만 다만 수행을 통해 욕심내고 화내는 마음을 줄여갑니다. 탐심과 진심이 줄어든 자리에는 맑은 행복이 채워집니다. 불교를 만난 이후의 변화입니다. 탐하고 화내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비우고자 공부하고 수행하고 정진합니다.”

이 원장은 다음 생 부처님 법대로 사는 출가수행자를 발원한다.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 진정한 행복의 길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무소유 법정 스님은 “항상 현재일 뿐이다. 저마다 서 있는 자리에서 자신답게 살라”고 당부했다. 자신의 자리에서 부처님이 걸었던 그 길로 향해 가기에 그의 지금은 항상 그러[如如]하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1278호 / 2015년 1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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