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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시아문

기자명 서광 스님

종교적 절대성 대신 ‘나’의 입장 존중

불교 경전들은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로 시작된다. 이에 대한 유래는 부처님의 사촌동생으로서 10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아난이 부처님의 사후 일에 대해서 질문했을 때, 다음 4가지로 답했던 것이다. 첫째, 사념처에 의지해서 머무를 것. 둘째, 계로써 스승을 삼을 것. 셋째, 나쁜 비구는 침묵으로 물리칠 것. 넷째, 일체 경의 첫머리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한때 부처님이 모처에 계실 때…”로 시작하라고.

여시아문 처음 접했을 때 감동
전달자 주관적 이해 인정 의미
획일화는 보살의 삶과 역행

불자가 아니었던 내가 처음 경전을 접했을 때, 경전 내용이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는 단어로 시작된 것을 보고 엄청나게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일반적으로 종교가 가지고 있는 절대성, 교조주의와는 거리가 먼 너무나 솔직하고, 객관적이고 신뢰 있는 표현에 감명을 받았다. 왜냐하면 종교적 권위에 무조건 복종하고 따르는 대신 뭔가 지금 여기서 경전을 읽고 있는 나의 입장과 상황, 경험을 존중한다는 뜻으로 이해됐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이 왜 현대과학에 상응하는 종교로 불교를 꼽았는지, 이 ‘여시아문’의 한 단어만으로도 공감하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전달하는 자의 주관적 이해, 상대적 관점을 인정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당신의 깨달음을 배우는 사람들의 수준과 조건에 따라서 다양한 말과 예들을 통해서 수많은 방식으로 설명하셨다. 그런데 부처님 이후에는 배우는 자만이 아니라 가르치는 자도 불법을 이해하는 깊이가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불교를 가르치고 배우는 우리들은 불교에 대해서 듣거나 읽고 배우게 되면, 반드시 그것을 우리들의 실제 삶과 생활 속에서 확인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사유를 거치지 않고 무조건 듣거나 읽고 그대로 행동하는 문수(聞修)의 2단계 과정으로 수행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경우는 왜 깨달음을 구해야 하고,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유과정이 생략되었기 때문에 마치 장님이 장님에게 길을 가르쳐주는 것과 같고, 나침반 없이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것과도 같다. 사유의 과정은 우리들로 하여금 시간과 공간의 한계, 즉 경전이 성립된 당시의 문화와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도록 돕는 과정이다. 그때 그 사람들이 이해하고 깨달았던, 그야말로 경전이라는 박물관에 보관된 지혜들을 보물처럼 보관하고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들이 감당하고 있는 삶의 문제들을 풀어가는 열쇠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영어에 ‘Read between the lines.’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행간을 읽다. 글속의 숨은 뜻을 알아내다’라는 의미다. 여시아문은 우리들이 언어적 표현에 갇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지금 우리들이 처한 조건과 상황에 맞게 재해석하고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금강경이 주인공이 아니라 읽고 배우는 우리들이 주인공이 되어서 말이다. 내가 미국에 있을 때 처음 불교를 접하는 서양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가운데 하나가 티베트불교, 한국불교, 중국불교 등 이들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나는 ‘한국불교=불교 x 한국문화’, ‘티베트불교=불교 x 티베트문화’라고 답했다. 왜냐하면 불교를 배우고 실천하는 주인공이 다르기 때문에 불교를 드러내고 표현하는 방식 또한 그들의 언어와 문화에 따라서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시아문의 치유적 메시지는 우리가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다양한 수행방법들을 적용하는 것에 대해서 서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체계가 없고, 산만할 수 있다고?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이미 자신과 타자의 이익과 깨달음을 동시에 추구하고, 요익중생이라는 궁극의 목적을 향해서 함께 나아가는 하나의 거대한 보살승의 일원이다. 마음공부, 수행의 획일화는 진실한 보살의 양성, 보살로서 거듭나는 일에 역행할 뿐이다.

서광 스님 한국명상심리상담연구원장 seogwang1@hanmail.net

[1279호 / 2015년 1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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