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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숨결 어린 고찰 그대로가 무설법문이더라

미국 MIT 재학생들 경주 순례기

▲ 한국의 불교문화는 MIT공학도들에게도 색다른 선물이었다. 이들은 불국사·석굴암 등 불교건축의 아름다움에 탄성을 자아냈다. 또 “훗날 바쁜 시간 속에서 지칠 때마다 이곳 경주에서 본 풍경들을 떠올리고 싶다”고도 말했다.

글로벌 시대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떠나 외국으로 향한다. 떠나는 이들도 많지만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도 많다. IT강국으로 도약하면서 관련 분야 전문가나 예비 전문가들은 더욱 한국을 궁금해 한다. 단순히 한국만 궁금한 것이 아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한국의 종교까지도 그들에게는 종종 호기심과 배움의 대상이 된다. 그렇다면 한국을 궁금해 하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역사, 문화 그리고 전통종교까지 아울러 한꺼번에 보여줄 장소는 어디일까.

한국서 수학 등 지도봉사하다
2박3일간 경주불교문화 체험
불국사·석굴암·기림사 탐방

석굴암 건축 기술 보고 탄성
탄성 스님의 설명도 인상적

이국 젊은 수재들 한 목소리
“한국 젊은이들 경주로 가라”

‘MIT-Korea Program’, 즉 겨울방학 기간 동안 한국에서 수학·과학 교육 자원봉사를 펼치고 있는 미국 MIT공과대 재학생 10명이 1월9일부터 11일까지 2박3일간 천년고도 경주를 순례했다. 이들은 1월 한 달의 일정으로 서울, 경기 등에 있는 국제학교와 탈북자학교, 일반학교의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수학·과학을 지도하는 자원봉사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 기간 중 한국문화 체험의 일환으로 왕립아세아학회 한국지부의 도움으로 경주를 방문한 것이다.

주로 서울과 경기권에서 머무는 이들에게 이번 순례는 한국의 역사와 전통은 물론 불교의 정신문화를 함께 체험하는 소중한 기회가 됐다는 평가다. 봉사기간 중 단 2차례의 문화체험 활동이 있다는 이들을 위해 선택된 장소가 ‘경주’라는 사실부터 “천년의 고도에서 한국의 역사와 불교문화를 직접 만나고 싶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 학생들은 천왕문을 들어설 때 합장 반배의 예를 갖췄고 바가지로 떠서 마시는 감로수 한 잔에도 감사한 마음을 실었다.

9일 밤 경주에 도착한 이들은 10일 이른 아침부터 여정에 올랐다. 가장 먼저 불국사, 석굴암을 참배했다. 또 기림사, 분황사, 골굴사, 황룡사지 등 경주의 대표적인 사찰과 문무대왕릉, 안압지, 반월성, 옥산서원과 양동마을까지 경주 전반을 일일이 돌아보며 한국의 전통문화를 보고 느꼈다. 일정은 빡빡했지만 지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가는 곳마다 호기심 가득한 질문이 쏟아졌다. 체험의 현장에서는 망설임이 없었다. 천왕문을 들어설 때는 합장 반배의 예를 갖췄고 바가지로 떠서 마시는 감로수 한 잔에도 감사한 마음을 실었다. 석굴암과 기림사에서는 예불 시간에 맞춰 밖으로 전해지는 예경 소리에 한참을 밖에 서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운판, 목어, 법고, 범종 등 불국사에서 한 번 본 사물이 다른 절에서 보이자 반가운 듯 뛰어가 재차 이름을 확인했다.

특히 불국사와 석굴암에서 불국사 포교국장 탄경 스님이 함께한 일정은 어느 순간보다 소중했다. 탄경 스님이 직접 불국사와 석굴암을 세밀하게 소개하고 차담 시간도 마련해 한국불교의 아름다움과 산사의 온정을 전한 덕분이었다. 스님 역시 주말의 바쁜 일정을 쪼개었지만 헤어짐이 아쉬운 듯 이국의 젊은 학생들을 다음 순례지인 분황사까지 직접 안내하며 배웅했다. 스님과의 대화에서 이들은 불국사와 석굴암의 건축미에 탄성을 자아낸 것은 물론 지금도 스님과 불자들에 의해 종교문화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종교 갈등과 화합 등 진지한 주제의 이야기도 깊이 있게 오고갔다.

이슬람교 신자인 세미 알식(20, 컴퓨터공학 전공)씨는 “스님과의 만남이 인상적이었다. 종교간 다양성을 이해하는 기회가 됐다”며 “경주 자체에 흐르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항상 접하고 있을 스님이 부럽다. 경주는 처음 방문한 외국인도 편안하게 해주는 매력 있는 도시”라고 미소 지었다. 또 그는 “탈북자학교에서 만난 학생들의 밝고 적극적인 모습이 좋았다. 그 친구들에게도 경주의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싶다”며 “한국의 아름다움을 학생들과 공유할 것”이라고 전했다.

▲ 사찰전각을 유심히 바라보는 여학생.

지난해 삼성전자 인턴십 프로그램 참가에 이어 이번 방학기간을 이용해 두 번째로 한국을 찾은 니키 카자레즈(21, 기계공학 전공)씨는 “1000년 전 조성된 석굴암이 동해안 일출과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사실이 독특했다. 아름다움과 과학적인 요소가 조화를 이룬 성스러운 공간”이라고 극찬했다. 또 그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사찰의 분위기 덕분에 머무는 시간 자체가 휴식이 된다”고도 말했다. 니키 카자레즈씨는 한국에서 봉사 일정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미국의 유명 기업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사실상 쉴 틈이 없단다. “바쁜 시간 속에서 지칠 때마다 이곳 경주에서 본 풍경들을 떠올리고 싶다”는 그는 “한국의 학생들도 자주 경주를 찾아와서 한국 문화와 역사를 직접 느끼고 감동받길 바란다. 경주는 그것이 충분히 가능한 공간이다”고 덧붙였다.

학생들을 인솔한 매튜 버트 ‘MIT-Korea Program’ 매니저는 “매년 여름과 겨울방학 때마다 MIT재학생들이 자원봉사를 위해 한국을 찾는다. 실제 MIT에서는 이 자원봉사 신청자가 상당할 정도로 인기 있는 과정”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더 새로우면서도 한국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곳을 모색하다가 경주를 선택했다. 학생들이 봉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한국의 전통과 역사, 불교문화를 배우고 갈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매니저 자신도 지난해 경주 골굴사에서 선무도 템플스테이에 동참했던 경험이 있었다. MIT 일행들을 위한 경주 순례도 그가 있었기에 더욱 풍성해 질 수 있었다.

통역과 문화유산해설을 담당한 왕립아세아학회 소속 제니퍼 플린 마리씨도 “경주 곳곳을 소개하면서 한국 불교문화가 지닌 아름다움과 가치를 다시금 확인한 시간이었다”고 기쁨을 표했다. 특히 “스님의 자세한 설명과 안내 덕분에 이번 순례가 더욱 빛났다. 경주를 많이 오고갔지만 이번만큼 즐겁게 경주에 머물고 간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라고 감동을 전했다. 제니퍼씨는 한국 문화인류학을 연구하기 위해 한국에 머물고 있으며 현재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그 역시 한국의 불교와 불교문화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경주에서 하나라도 더 알려주기 위한 그의 열정으로 찾아가는 장소마다 떠나는 발걸음이 아쉬울 정도였다.

불국사 포교국장 탄경 스님 역시 뜻 깊기는 마찬가지였다. 스님은 “세계를 대표하는 젊은 영재들이 한국의 사찰과 그 문화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스님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글로벌 시대에 종교의 전통성과 다양성이 공존해야 서로 화합할 수 있다는 공감대도 가졌다고 본다.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강조했다.

2박3일의 짧은 경주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은 MIT의 청춘들. 멀지 않은 날 어떤 한 분야의 세계 최고를 좌지우지할 이들에게 한국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기림사 절 마당에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전각을 바라보던 이들 풋풋한 선남선녀의 귓가에는 경주를 떠나더라도 전각 지붕 끝 풍경의 말 없는 무설법문이 잔잔하게 뒤따르고 있으리라.

경주=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1279호 / 2015년 1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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