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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림과 방장 모시기

조계종 종정을 역임했던 해인사 방장 도림당 법전 스님이 지난 해 말 입적했다. 40여일 전이다. 법전 스님은 불퇴전의 수행력으로 세간의 존경을 받았다. 성철 스님의 제자답게 선방에 앉으면 움직이지 않고 며칠이고 수행에만 전념해 ‘절구통 수좌’라는 찬사를 받았다.

해인총림 방장 스님 추대 놓고
불필요한 힘겨루기 양상 우려
방장 ‘주지추천권’ 개정 필요
권위는 권력 아닌 수행서 생겨

그런 스님이기에 조계종도 법전 스님을 종정으로 모셔 오랫동안 깨달음의 길을 물었다. 절집에 큰 스님들의 빈자리가 갈수록 늘고 있어 법전 스님의 부재가 그 어느 때보다 휑해 보인다.

그러나 법전 스님이 입적한지 49일이 되기도 전에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법전 스님의 빈자리, 즉 총림의 방장 자리를 놓고 해인사에서 경합이 치열하다는 소식이다. 방장 물망에 자천타천 오르내리는 문중 스님들이 직접 움직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방장으로 모시려 해도 수행력이 부족하다며 손사래를 치던 과거 절집의 전통을 생각하면 믿기지는 않는다.

한국불교에서 방장의 의미는 남다르다. 선불교의 정점에 있는 수행의 사표이며 성불로 가는 이정표였다. 우리에게는 맑은 지혜와 청빈한 삶으로 국민들로부터 추앙을 받았던 방장 스님들이 적지 않았다. 성철 스님과 서옹 스님이 대표적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방장 스님의 인플레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2013년 조계종 총림법이 바뀌면서 생긴 우려다. 법 개정을 통해 총림의 요건을 완화하면서 과거 5대 총림이 8대 총림으로 바뀌었다. 불과 2년 만에 총림이 3곳이나 늘었다. 총림을 준비하고 있는 본사들이 적지 않으니 총림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사찰이 방장 스님을 많이 모시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갈수록 방장 스님의 권위가 떨어지고 있다는 여론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조계종이 총림법을 개정한 이유는 명확하다. 주지 선거로 인한 문중 구성원 간의 싸움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총림을 늘리고 총림의 방장 스님에게 주지 추천권을 주면 선거로 인한 문중 내 불협화음이 확연히 줄어들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방장 스님에게 주지 추천권을 주다보니 주지선거의 혼탁이 방장추대 싸움으로 옮겨가 버린 모양새다. 종헌종법에 따르면 총림의 방장은 총림 재적 스님들이 모인 산중총회에서 산중의 총의를 모을 수 있는 산중 고유의 방식으로 후보자를 선출하면, 중앙종회에서 의결하는 구조다. 문제는 만약 방장 후보가 난립을 하게 되면 임회와 산중총회가 싸움판이 될 개연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특히 지금의 해인사처럼 서로 방장을 하겠다고 나서는 형국이면 주지선거 못지않은 불협화음은 불가피해 보인다.

지금의 총림법은 필연적으로 분쟁의 불씨를 안고 있는 제도적 결함이다. 이판의 정점인 방장 스님에게 사판인 주지 추천권을 부여함으로써 분란의 불씨를 만든 조계종 중앙종회의 잘못이 크다. 방장 스님을 분란의 중심에 세움으로써 벌어지는 불협화음은 주지선거의 폐해와는 결이 다르다. 과거에는 문중에 싸움이 일어도 조실이나 방장 스님 같은 어른 스님들이 덕화로서 화해를 시켰다. 그러나 방장 스님 추천 과정에서 이견이 생기면 이를 화해시키고 조율할 곳이 없다.

▲ 김형규 부장
방장 스님의 권위는 주지추천권이 아닌 수행력에서 나온다. 방장 스님에게서 법을 구해야지 권력을 구해서는 안 된다. 과거 해인사가 총림이 되자 송광사 조실이었던 효봉 스님을 방장으로 모셔간 아름다운 일화가 있다. 그러나 이제는 문중 안에서 서로 방장이 되겠다고 다투는 상황이니, 외부에서 눈 밝은 스승을 찾는 절집의 미덕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해인사 방장 추대에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는 이유다. 더 이상 수행의 사표가 돼야할 방장 스님을 분쟁에 소용돌이로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 방장 스님 손에 들려 준 하찮은 권력은 오히려 권위의 훼손이다. 총림법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조계종이 새겨들었으면 한다.

김형규 kimh@beopbo.com

[1280호 / 2015년 1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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