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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걸식

기자명 서광 스님

“세존께서 공양하실 시간이 되어서 옷을 입으시고 발우를 드시고 사위성에 들어가셨다. 집집마다 차례로 걸식을 하시고는 처소로 돌아오셔서 공양을 드셨다. 그러고 나서는 발우를 거두시고 옷을 벗으신 후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20년 전에는 부처님 일상 외면
이젠 되새길수록 감동스런 장면
중생 위한 지극한 자비심 발로
‘거룩한 걸식’ ‘치유 걸식’ 작용

20년 전에 우연한 인연으로 미국에 갔다가 절의 주지를 맡은 적이 있었다. 그때 신도들의 요청으로 불교가 뭔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금강경’ 특강을 했었다. 당시에 위의 대목을 접한 나는 ‘아니, 금강경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지혜인데 어째서 이런 잡다한 일상적인 말들을 제일 앞부분에 놓았을까?’라고 속으로 생각했었다. 그리고는 나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뭔가 조금 더 수준 높고 난해한 대목을 찾아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냥 지나쳐버렸던 기억이 아득하게 떠오른다.

그 이후 나는 적지 않은 세월을 뭔가 특별하고 조금 더 어려운 것들, 나름 깊이가 있고 심오하다고 여겨지는 불교교리를 붙잡고 씨름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위의 대목을 다시 만나 이 글을 쓰면서 알 수 없는 감격스러움에 젖어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2500여년 전으로 거슬러 가서 집집마다 돌면서 걸식을 하고 계시는 부처님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제자들도 많은데, 부처님은 왜 직접 걸식을 하셨을까? 육조대사는 모든 중생들에게 마음을 낮추어 겸손을 보이신 것이라고 했다. 과연 그것이 전부였을까? 규봉 종밀선사는 부처님께서 걸식을 통해서 법의 기쁨을 보시하신 것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규봉 선사의 해석이 참으로 공감이 간다. 엄밀하게 말해서 나는 하심(下心)도 일종의 우월콤플렉스, 아만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시대에 부처님처럼 거룩한 분이 살아계신다고 상상해보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뵙기를 원하겠는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온갖 것들을 선물하고 싶겠는가? 부처님은 그런 중생들의 마음을 아시고는 매일같이 공양시간이 되면, 약간 더 편한 차림으로 법문하실 때와는 달리 정식으로 차려입으시고 제자들과 함께 일일이 가정집을 방문하시면서 그들이 제공하는 공양을 받으셨다.

상상이 가지 않는가? 부처님과 그 제자들에게 자신들의 음식을 공양하는 영광의 기회를 얻은 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기뻐하고 감사했을지. 만일 그 일이 지금 우리들에게 일어난다고 상상해보라. 부처님께서 당신의 발우를 들고 친히 우리들의 집에 오셔서 음식을 받으신다면 우리들의 마음은 어떠하겠는가? 그 거룩하고 자비로운 모습에 너무나 감격해서 펑펑 울지 않을까? 가슴이 떨리고 온 몸이 전율하지 않을까? 웬만큼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면 그냥 그 자체로 엄청난 치유가 일어나지 않았을까? 부처님은 어찌 그토록 자비로우실 수가 있었을까!

가끔 외모가 뛰어난 연예인들을 가리켜서 우리는 그들의 일상이 화보와 같다고 말한다. 그야말로 부처님의 일상 그 자체가 지혜를 드러내고 자비를 실현한다. 하나도 특별한 것이 없는데 너무나 특별하다. 왜일까? 특별함을 구하지 않는 자연스러움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너무나 자주 드러나고 싶고, 알려지고 싶고 (더러는 드러나고 싶지 않고, 알려지고 싶지 않아 하지만 동일한 욕구의 뿌리에서 나온 서로 다른 가지일 뿐이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로 인해서 마음은 순식간에 번뇌망상을 키우는 온상으로 변하고 만다.

그런데 부처님의 평범한 일상의 현존은 우리의 마음을 고요, 평화, 감사,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면서 치유의 휴식을 선물한다. 마치 태양이 빛을 비추겠다는 의도도 없이 만물을 비추어 성장하게 하듯이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 또한 그렇게 사람들의 불성을 비추고, 자라나게 하는 것이다. 그렇듯 부처님께서는 그냥 일상의 의식주를 행하실 뿐인 걸식이 거룩한 걸식, 치유의 걸식, 자비의 걸식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서광 스님 한국명상심리상담연구원장 seogwang1@hanmail.net

[1280호 / 2015년 1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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