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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이나 되는 나이 차에도[br]따뜻한 우정을 나눈 퇴계와 고봉

기자명 이병두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 이황·기대승 지음 / 김영두 옮김 / 소나무

▲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세대 차이 때문에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평균 수명이 50세 정도에 불과한 조선 중기에 스물여섯 살 차이가 나는 퇴계(退溪)와 고봉(高峯), 이 두 인물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 격려하고, 때로는 논쟁도 하며 따뜻한 마음을 나누었다.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을 연구하고 싶다’는 고봉의 편지를 받은 퇴계가 어른답게, 한편으론 대견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어 말한다. “이것이 제가 그대 앞에서 깊이 옷깃을 여미는 까닭이며, 한편으로 그대 때문에 근심하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왜?

“벼슬을 버리고 물러나 숨고자 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선뜻 놓아주지 않을 것”이며, “세상 사람이 자기를 버리지 않는데 자기가 세상을 버리려고 한다면, 버리려고 할수록 더욱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그래서 세상 사람들의 책망을 심하게 받으리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고봉이 살 길은 처음부터 “벼슬길에 나오기 전에 일찍 학문에 뜻을 세우고,” 그래서 “학문에 전념”하여 “도(道)를 얻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면 안 된다’고 야단만 쳤다면 퇴계가 아니다. “선비가 세상을 살면서 나아가기도 하고 물러나기도 하며, 때를 만나기도 하고 만나지 못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몸을 깨끗이 하고 의를 행할 뿐이요 화복(禍福)은 논할 바가 아니다”며 고봉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척 한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너무 높이거나 세상을 일구는 데에 너무 용감하지 않는 것이며, 모든 일에 자신의 주장을 너무 지나치게 내세우지 말라”고, 젊은 고봉의 지나친 자신감과 경솔함을 에둘러 짚어준다.

둘 사이에 오고 간 편지를 읽다보면 퇴계가 고봉에게 쓴 편지 곳곳에서 “이 편지를 널리 퍼뜨리지 말기 바란다”고 신신당부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왜 이렇게 같은 말을 거듭해야 했을까. “혹 별일도 아닌 것으로 일을 만들까 두렵다”고 했던 퇴계의 우려처럼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이 위험했던 당시 정치 상황에 맞추어 몸조심을 하느라 그랬을까, 퇴계가 소심하고 겁이 많아서 그랬던가, 아니면 아직 젊은 고봉에게 ‘미덥지 못한 구석’이 있었던 것일까.

퇴계의 격려와 충고를 받은 고봉은 “제가 세상을 업신여기고 다른 사람을 낮추어 본다고 하는 말을 들으셨다는데, 저는 그런 마음이 없다고 스스로 믿는다”며 슬쩍 반발한다. 그리고 “화복이 오는 것은 하늘에 달린 것이니, 미리 그 후환을 걱정해서 지나치게 나약하게 행동해서는 안 될 것”인데, “요즈음의 사대부들은 화란을 너무 두려워하여 그 마음가짐이나 행동이 자못 한쪽으로 쏠려 있으니, 장차 이러한 풍조가 남긴 폐단을 구제할 수 없을까 두렵다”며 겁 많은 기성세대, 나아가 자신을 염려해주는 퇴계에 대해서까지 한 방 날린다. 고봉은 역시 자신만만한 젊은이였다.

이런 답을 받았다고 고개를 돌릴 퇴계가 아니다. “진정한 강직함과 진정한 용기는 기세 높여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고치는 데 인색하지 않고 의(義)를 들으면 바로 따르는 데 있다”며 젊은 선비가 취할 기본자세에 대해 자상한 당부를 아끼지 않는다.

고봉도, 자신을 걱정하는 어른의 마음을 모를 리 없다. “내가 뛰어나다고 남의 말을 소홀히 하지도 않으며 내가 넉넉하다고 남의 단점을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고서, 겸허한 마음으로 남의 말을 받아들이는 데 인색하거나 싫어하지 않으십니다.…선생님께서는 당신의 지식도 높이시고 다른 사람도 깨우쳐 주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찬사가 어디 있겠는가. 퇴계와 고봉, 둘의 우정 그리고 당시 이 땅 지식사회의 분위기가 정말 부럽다.

이병두 문화체육관광부 종무관


[1281호 / 2015년 2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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