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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태백산 당골광장-망경대-천제단-유일사

서글퍼 움츠린 가슴 태백서 쫙 펴라

▲ 설산이어도 푸근한 너른 가슴 내보이는 태백산이다. 맘껏 웃고, 한껏 울고 싶은 사람 다 오라는 태백산이다.

신석정 시인은 ‘지구엔 돋아난 산’이 아름답다 했다. ‘한사코 높아서’, ‘아무 죄없는 짐승과 에레나보다 어여뿐 꽃들이 모여서 살기에’ 아름답다고 한다. 참 예뻤던 꽃들 잠시 뫼땅 속에 숨겨 놓고, 하늘 이고 우뚝 서 있는 태백산은 아름다움을 넘어 신령스럽게 다가온다. 배달겨레를 상징해 온 산 아닌가.

"눈보라 헤쳐 온 주목이 묻는다
‘난, 이리 산다. 넌, 어찌 사느냐!’
서글퍼도 허리 곧추 세워
숨 한 번 고르는 거다"

옛 사람들은 태백산(太白山)을 ‘한밝뫼’라 했다. ‘한’은 ‘크다’, ‘밝’은 ‘밝다’, 뫼는 산이니 그대로 풀면 ‘크고 밝은 산’이다. ‘배달(倍達) 겨레’와 연관 있다. 언어학자들 견해에 따르면 태백산에서 백(白, 밝음)은 ‘기역(ㄱ) 탈락’ 등의 변형 과정(음운, 모음)을 거쳐 ‘배’가 되었다고 한다. 한문 배(倍)는 차용한 것이다.

달(達)에 대한 주장은 크게 둘로 나뉜다. 그 하나는 응달, 양달에서 보이듯 ‘달은 땅(地)’이라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삼국유사 등의 고서에서 보이듯 ‘달은 산(山)’이라는 주장이다.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이기문 교수의 학설을 참고해 ‘산’을 꼽겠다. 정리하면 한자의 음을 빌려 ‘배달(倍達)’이고, 훈을 빌려 ‘백산(白山)’이다. 그러기에 ‘배달’과 ‘백산’, ‘밝은 산’은 일맥상통 한다.

크게 보면 한반도 땅에 솟은 산은 모두 백산이라 할 수 있겠다. 가장 큰 산이 ‘태백산(太白山)’이고, 가장 위대(우두머리)한 산이 ‘백두산(白頭山)’일 게다. 산 오르는 길 초입에 단군성전이, 태백산 정상에 천제단이 자리한 연유가 여기에 있을 터다.

태백산을 오르면서도 숨이 벅차지 않는 게 완만한 길 덕만은 아니다. 기암괴석 사이에 생명의 뿌리를 꾹 박아 놓은 소나무 보는 재미 솔솔하고, 자작나무가 물들인 은빛 숲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서 있으면 금방이라도 수피아가 나와 손목을 잡아줄 듯하다. 그 뿐이랴. 쭉쭉 뻗은 잣나무들이 제 그림자 눈밭에 가지런히 뉘어놓았는데, 그 그림자들 사이로 힐조 햇살 한 줌 ‘촤악∼’ 뿌려져 보라지! 그 햇살 어디 한 자리서 가만있나. 슬쩍, 그 옆 그림자 속으로 비껴가지. 흑백과 어우러진 빛의 향연에 감탄하지 않을 사람 없다.

서둘러 올라야할 일만은 아니니 반재 그루터기에 앉아 한 숨 돌린다. 태백, 태백, 태백! 크고 밝은 ‘한밝’이라고 아무리 되뇌어도 엷은 슬픔이 인다.

토벌대와 게릴라의 좇고 쫓기는 달음박질, 한 발의 총성. 누군가의 선혈이 산자락 타고 저 지리산까지 이어졌지. 그 핏자국 지금은 다 지워진 것인가? 혹, 들리지 않는 총성에 보이지 않는 핏자국이 여기 어디선가 또 시작하고 있는 건 아닌가? 허나, 엷은 슬픔은 아니다. 비통함에 가깝다.

태백 간다고 서점서 애써 사 본 시집 속 시 한 수 때문인지 모른다. 태백서 유년을 보낸 안현미 시인의 시를 통해 태백을 느껴보고 싶었다.

‘쓸쓸하고 퇴락한 나라/ 서럽고 황폐한 나라/  진폐증을 앓는 검은 뼈들이/ 화광(火光)아파트 베란다에서/ 검은 해바라기 꽃으로 피는 나라/ 유령의 나라/ 아버지의 청춘이 묻힌 나라/ 어머니가 늙어가는 나라 /방문을 향해 놓인/ 주인 없는 신발들만 사는 나라 /주인 없는 신발들만 우는 나라/…/ 천제단도 있고/ 발원수도 샘솟지만/ 무저갱의 검은 피만 쏟아지는 나라/ 서럽고 황폐한 나라/ 태백이 아니라/ 흑백인 나라’ (‘흑국 보고기’ 일부)

1980년대 후반까지도 태백은 탄광산업으로 ‘호황’을 누렸다. 그렇다고 광부가 많은 돈을 벌었겠나. ‘검은 진주’ 캐고 받는 품삯 얼마나 된다고. 얻은 게 있다면 서글픈 듯 ‘컥컥’거리는 ‘진폐증’뿐이었겠지. 안전대책 뒷전이었으니 사상자 또한 얼마나 많았겠나. 최근 5년 동안 발생한 광산사고 사상자만도 237명이다. 30여년 전이야 말해 무엇할까. 허나, 이 역시 엷은 슬픔은 아니다. 처연함에 가깝다.

▲ 저 망경대서 보아야할 게 장군봉 앞에 펼쳐진 태백, 함백의 산줄기만은 아닐 것이다.

망경대 용정 물맛은 소문대로 일품이다. 산사다 보니 사람들이 ‘망경사’로 부르지만 ‘망경대(望鏡臺)’가 맞다. 함백산 석남원(정암사)에 머물던 자장율사는 어느 날 문수보살이 태백산 봉우리(지금의 문수봉)에 석상으로 화현한 것을 보고 천제단이 있는 지금의 영봉(靈峰) 아래 망경대를 지었다. 한국전쟁 때 모두 불탔고 1956년께 묵암 스님이 중창했다. 전각이며 요사가 길 따라 쭈욱 늘어서 있다. 산줄기를 헤치고 싶지 않았던 게다.

▲ 저 주목은 구름에게 뭘 전하고 있을까? 혹, 천년동안 품어온 비밀 하나 풀고 있는가.

천제단을 지나 장군봉을 넘어서면 ‘살아 천년, 죽어 천년 간다’는 주목들이 산자락에 펼쳐져 있다. 평균 나이 200년(30~920년)의 살아있는 주목만도 3900여그루. 그 오랜 세월 동안 휘몰아쳐 온 비바람·눈보라 어찌 견뎌왔을까! 나수자 시인이 전했듯 ‘칼바람이 겅둥겅둥/ 온 산을 뛰어다니면/ 나무들은 제 몸이 서러워/ 온종일 피리를’ 불었을 터인데 말이다.

죽어도 죽은 게 아니라는 듯, 껍질만 남아 다 헤져 보이는  나무임에도 새 생명 잉태라도 하려는 듯, 줄기엔 붉은 빛이 확연하게 감돌고, 어느 가지엔 싱싱한 잎이 무성히 달려 있다. 저 주목들이 우리에게 묻고 있다. ‘나는 이렇게 산다. 너는 어찌 사느냐?’

바라던 회사에 입사했으니 이 산 찾았을 터. 해외서 큰 거래 성사시켰으니 다시 이 산 찾고, 고속 승진의 기쁨 버거워 또 이 산을 찾았겠지. 여기서라도 맘껏 웃어봐야 않겠나! 산이 안아주니 말이다.

어느 날, 세월호 사건 지켜보다 깊은 아픔 견디다 못해 이 산을 올랐을 게다. 세 모녀 자살 소식에 매인 가슴 풀어 헤쳐 보려 또 걸음했을 게다. 여기서라도 한껏 울어봐야 않겠나! 산이 안아주니 말이다.

그렇다. 가슴 펴자! 비통하고 처연해, 서글프고 고단해 움츠렸던 가슴, 허리 곧추 세우고 주목 앞에 서 당당히 펴는 거다. 나도 이렇게 살고 있다고, 나도 웅대한 태산 기백 품은 ‘배달겨레’라고 말하자. 그러니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 쫙 펴고, 태백산의 너른 가슴에 기대 숨 한 번 고르는 거다.

▲ 유일사의 무이선원이다. 산사 들렀던 나그네들은 나름 답 하나씩 얻어갔겠지. 세상서 유일무이한 게 진정 무엇인지.

그리해야 하는 이유 유일사(唯一寺)가 답해주지 않는가. 비구니 도량 유일사의 선원 이름은 무이(無二)선원. ‘유일무이’하단다.

그러고 보니 저 망경대서 보아야 할 건 ‘유일무이’였다. ‘푸른 별’에서, 아니 이 우주에서 유일무이한 건 무엇일까? 이 산사에 잠깐이라도 안겼던 숱한 나그네들이 그 뜻 헤아려 나름의 답을 얻어갔을 터다. 저 주목은 벌써 그 답 알아챘나? 흐르는 구름 손짓해 불러놓고 뭔가 소곤거리고 있다.

채문기 본지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도·움·말]

 


길라잡이
들머리는 태백 당골 광장. 당골 매표소에서 산행을 시작해 100여m 걷다 보면 두 갈래 길이 나타난다. 한 길은 문수봉으로 향하고 또 다른 길은 망경대, 천제단 가는 길이다. 단군 성전을 거쳐 반재(천제단까지 절반 남았다는 의미)에 오르면 다시 두 갈래 길. 한 길은 백단사로 향하고 또 다른 길은 망경대 가는 길이다. 망경대에서 단종비각을 거쳐 약 400m 오르막 길을 지나면 천제단. 장군봉을 넘어서면 바로 주목 군락지. 하산길 따라 약 1km 내려오면 유일사다. 종착지 유일사 매표소까지는 약 2.3km. 유일사 매표소와 당골 광장을 오가는 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 길은 넉넉히 넓고 완만하다. 산행 시간은 5시간이면 충분. 허나, 가능하면 7시간 잡고 풍광을 음미하며 천천히 걷는 게 좋다. 망경대 일출 명성은 자자하다. 사전에 연락하면 망경대서 묵을 수 있다. 망경대 033)553-1567

이것만은 꼭!
용정(龍井) : 당골 광장서 단군성전을 지나 천제단을 오르는 동안 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은 망경대 용정뿐이다. 우리나라 샘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해발 1470m)하고 있다. 동해에 떠오르는 햇살을 맨 처음 받는 샘이어서 ‘하늘 아래 첫 샘’이라 불린다. 예나 지금이나 천제(天祭) 때 쓰는 정화수는 이곳 용정에서 길어 올린다.
원래 용정은 ‘용정각’에 있는 우물인데 물길을 좀 더 길가로 내어 지금처럼 꾸몄다.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쉽게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한 망경대 측의 배려다.

 

[1281호 / 2015년 2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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