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곡도명상수련원 - 중
오곡도명상수련원 - 중
  • 최호승 기자
  • 승인 2015.02.02 17: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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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들었다’ 아닌 ‘깨달았다’는 견처 내보여라

▲ 장군죽비다. ‘무’ 놓치고 온갖 잡념 들끓으면 어느 새 죽비가 경책한다. 죽비는 화두 몰입을 격려하는 자비였다.

반가부좌한 다리만큼 마음이 옥좼다. 답답했고 고통스러웠다. 음식마저 가슴에 걸렸다. 쏟아내고 싶었다. 구토하고 나니 얼굴은 마음처럼 창백하게 질렸다. 화두는 안개처럼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생각만큼 몰입은 어려웠다. 호두마을과 보리수선원에서 위빠사나도 했던 차였다. 2011년 법륜 스님 ‘스님의 주례사’를 읽고 정토회에서 깨달음의 장, 나눔의 장, 100일 출가도 다 해봤다. 목마름은 해소되지 않았고 다시 헤맸다. 우연히 장휘옥 오곡도명상수련원장 기사를 접하고 6박7일 시간 내서 집중수련회에 왔지만 마음만 조급해졌다. 오곡도는 깨장과 다르게 전통방식으로 화두 들며 ‘나’를 깨부수는 수행이었다.

개도 불성 ‘있다’ ‘없다’ 아닌
스스로 ‘무 덩어리’ 되는 참구
기억·지식·경험·고집 벗어나
늘 깨어있으면서 ‘무’에 몰입

망상피우면 곧바로 장군죽비
6박7일간 매일 독참·제창으로
‘나’라는 알 껍질 깨도록 안내

조석예불 관음정근·방선 박수로
이 순간에 마음 존재케 만들어


화두는 조주 스님의 ‘무(無)’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냐는 물음에 대한 조주 스님의 답이 화두였다. 그러나 ‘있다’의 반대개념인 ‘없다’가 아니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무’였다. ‘있다’도 ‘없다’도 발붙일 틈 없는 ‘무’라는 게 김사업 부원장 설명이었다. 어디에도 걸림 없는 ‘절대무’였다. 철저히 참구하랬다. 스스로 ‘무’ 덩어리가 되라고 강조했다. 경험, 고집, 지식 등 ‘나’라는 프리즘을 없애라고 했다. ‘무’의 세계는 좀처럼 느껴지지 않았고 스트레스만 쌓였다.

잠도 오고 망상도 많이 일었다. 조금만 졸면 가차 없이 김사업 부원장의 장군죽비를 맞아야 했다. 3~4일이 지나니 체하기 시작했다. 좌선도 하는 둥 마는 둥 죽을 맛이었다. 독참(獨參). 스승과 일대일로 마주한 순간, 장 원장은 신용원(39)씨에게 일렀다. 오곡도 천지가 흔들리도록 절절히 ‘무’를 외치라고. 그날 밤 그가 토해내는 ‘무’는 오곡도 어둠을 날카롭게 찢었다.

빡빡했다. 집중수련은 공양시간을 제외하곤 오로지 좌선, 소참법문, 제창, 좌선, 독참이 이어졌다. 매일 9시간 화두를 들어야 했고, 독참으로 그날그날 수행을 점검 받아야 하루가 저물었다. 조석예불마다 성성이 화두 들겠노라 발원하고 일념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짖어야 했다. 티끌만한 번뇌하나 들어와도 마음에 관세음보살은 사라지고 없었다. 반가부좌하고 오로지 관세음보살 한 자 한 자에 집중해야 했다. 좌선이 끝나면 다 같이 박수를 쳤다. 매번 숫자를 달리했고 허튼 생각 자리하면 놓치기 일쑤였다. 간신히 박수소리가 맞으면 그제야 법당 한 쪽에 자리한 종이 은은하게 공명했다. 방선(放禪)이다. 45분씩 좌선했고 10분씩 방선했다. 방심은 금물이었다. 소등, 신발 가지런히 놓기, 청소 등 수행자들 소임도 한 순간 놓치면 김사업 부원장 불호령이 떨어졌다. “늘 깨어있으라.” 마음이 이 순간에 머물도록 하는 수행이었다.

모두 절하고 ‘반야심경’을 봉독하니 김준원(23)씨는 무작정 따라 하기 바빴다. 반가부좌도 처음이었다. 명상은 앞에 책상 하나 두고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는 행위로만 알았다. 달랐다. 이상한 자세를 시켰고 ‘무’를 찾으라고 하니 화만 일었다. 다리는 끊어질 듯 아팠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다음날도 여전히 불만이었다. 화두 들고 싶게 만든 부원장의 제창(提唱)이 그를 바꾸고 있었다.

▲ 김사업 부원장의 제창은 수행자들의 고정관념을 여지 없이 깼다.

본래 모습은 연꽃이자 부처님 성품인 불성이라고 표현했다. 화두를 참구하는 좌선은 이를 찾는 방편이라고 했다. 원래 맑았던 거울에 쓸데없이 앉은 먼지(번뇌망상)를 떼는 끝없는 노력이었다. 언어(말)에 사로잡힌 고정관념을 철저히 깨트렸다. 원래 꽃이기 때문에 꽃인 것이 아니라, 꽃이라 불림으로써 비로소 꽃이 된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짙은 빨강과 짙은 파랑, 엷은 빨강과 엷은 파랑 등 4개 카드가 있다. 두 그룹으로 어떻게 나누겠는가. 대개 짙은 쪽과 엷은 쪽으로 나눈다. 그러나 말을 잃은 실어증 환자는 나누지 못한다. 다 다른 데 어떻게 나누냐고 묻는다. ‘짙다, 엷다, 빨강, 파랑’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에게 공통점은 보이지 않는다. 사실 색깔만 보면 카드 4장 모두 다르다. 우리는 언어로 사고하고 대상을 인식하는 기계적인 습관 탓에 나눌 수 있다.”

부원장은 물었다. “과연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보고 있는가?”

연기(緣起)를 설명한 제창은 마음의 눈을 뜨게 만들었다. 여러 조건에 의해 발생하고 조건이 사라지면 현상도 사라지고 소멸하기 마련. 부원장은 연기에서 ‘지금 여기’에 깨어있는 법을 물을 예로 들며 일깨웠다. 물은 컵에 들어가면 컵 모양(현상)으로 변한다. 바가지에 들어가면 바가지 모양이다. 전에 있던 컵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100% 바가지 모양이 될 수 있었다. 과거에 대한 미련이나 후회 없이 버리고 내려놨기 때문이었다. 물처럼 살아가는 게 선이라고 했다. 도서관 가서 놀 생각하고 놀러가서 공부 걱정하는 마음에 죽비를 쳤다.

“선사들은 생활 속에서 진리를 드러냈다. 눈짓 하나 툭 던지는 말 한 마디가 그대로 진리이자 설법이다. 일거수일투족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경전은 보통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고 시작한다. ‘이와 같이 들었다’는 뜻이다. 선은 여시아문이 아니다. 여시아문은 울림이 없다. 입으로만 외워 말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선에서는 여시아문은 빵점이다. 선은 ‘여시아오(如是我悟)’다. ‘이와 같이 깨달았다’는 견처를 밝혀야 한다. 스승과 독참에서 견처(見處) 꺼내놓고 묻고 답해야 한다. 과학이나 실험은 수학이론으로 객관적 증명이 가능하나 우리는 견처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 사람마다 나타나는 견처 다 다르고 매뉴얼도 없다 그래서 점검하는 스승이 필요하다.”

▲ 제창을 열심히 메모하며 듣는 수행자들.

독참과 제창은 줄탁동시(啐啄同時)였다. ‘나’라는 껍질 안에서 수행자들은 ‘무’자 화두 날카롭게 갈고 갈아 껍질을 두드렸다. 밖에선 원장과 부원장이 껍질을 두드렸다. 독참은 법당과 연결된 연구실을 거쳐 좁은 통로를 바라보고 왼쪽에서 이뤄졌다. 그동안 수행자들은 화두를 참구했다. 요령 소리 들리면 차수하고 한 명씩 입실(入室)해 원장에게 견처를 보여야 했다. 입실 전 문턱 앞에서 합장 반배한 뒤 문턱 넘어 방석 위에 서서 반배, 큰절 올리고 무릎 꿇고 나면 독참이 시작됐다. 초심자들 독참은 길었고, 구참자들 요령 소리 간격은 짧았다.

조주 스님이 오곡도 마당을 쓸었다. 한 수행자가 물었다. “스님에게도 아직 티끌이 남아 있는지요.” 조주 스님이 답했다. “바깥에서 날아 들어왔다.” 수행자는 물러서지 않았다. 다음날 다시 물었다. “이와 같이 청정한 가람에도 아직 티끌이 있는지요.” 대수롭지 않게 조주 스님이 답했다. “티끌 하나 또 날아 들어왔구나.”

오곡도 밖을 자유롭게 날고자 했던 수행자들 마음에 번뇌 날아든다. 마음도 오곡도에 발이 묶인다. 파도만이 새처럼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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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란 매 순간 100% 몰입하는 삶”

장휘옥 오곡도명상수련원장

 
“1주일 만에 깨쳐보려고 오는 분들도 많습니다. 선(禪)은 삶을 통째로 바꾸는 일입니다. 1주일 수행한다고 인생은 바뀌지 않습니다.”

부드러웠지만 단호했다. 1주일 집중수련에서 큰 변화를 기대했다면 착각이었다. 장휘옥 오곡도명상수련원장은 매일 소참법문과 독참하며 냉철함과 자애로움을 자유자재로 드러냈다.

“오곡도에서는 선적으로 생활해나가는 작은 깨달음을 일깨웁니다. 물론 화두 참구를 꾸준히 이어간다면 더할 나위 없지요. 그러나 짧은 기간에 선적으로 살라며 생활 전체를 바꿀 수 없습니다. 단지 아차하고 놓쳤거나 알고 있었지만 잊었거나 몰랐던 부분에서 깨달음을 줄 수 있을 뿐입니다. 1주일 만이라도 화두 참구하며 맛본 선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에게 선이란 매 순간 100% 깨어있는 삶이다. 직장이든 가정이든 봉사현장이나 인연들과 관계에서나 늘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몸과 마음을 온전히 몰입하라는 말씀이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은 울림을 줬다. 그 역시 정신적으로 끊임없이 자유롭고 싶었다. 자살까지 시도했고 살아남기 위해 살았다. 학계에 이름도 알리고 돈도 부족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형체 없는 구속에 묶여 있었다. 화두를 들었다. 좌선할 때 떠오르는 비 맞는 작은 승냥이가 자기 같았다.

10년 넘게 일본 임제종 대본산 향악사 방장 미야모토 다이호오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수행하며 독참 지도를 받았다. 900여 차례 독참을 할 즈음 단단한 ‘교리 갑옷’이 벗겨나가고 비로소 스승은 그를 인정했다. 그런 그는 선방에 오래 앉았다고 선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깨달았으니 수행 끝난다는 말도 산산이 부서졌다.

“인가는 수행을 지도할만하다는 말씀일 뿐입니다. 달마대사도 부처님도 수행 중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수행을 세세생생 하고 싶어요.”

[1281호 / 2015년 2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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