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어머니
스님의 어머니
  • 최호승 기자
  • 승인 2015.02.09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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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남짓 때 초파일이었다. 나주 다보사에서 초파일 행사를 돕고 잠시 머물다 길을 나섰다. 사방에 밤이 깔렸고, 발길은 산골마을에 머물러 있었다.

하룻밤 청할 생각에 물어물어 어느 절에 닿았다. 입구였던 2층 누각은 한쪽으로 45도 이상 기울었고, 작은 법당 문을 여니 쥐떼들이 놀라 달아났다. 나한전에는 온전한 나한 하나 없었다. 노스님 한 분 나와 뉘일 곳을 여쭈니 “절인데 스님이 못자?”라고 반문하며 자리를 내줬다. 밤이 깊어지자 노스님은 보리 한 아름 건넸다. 없던 시절, 노스님과 함께 비빈 보리는 아침공양거리였다. 노스님은 심심했던지 보리를 비비며 말 한 마디하고 소탈하게 웃었다. “참 신기해요. 아버지도 나도 스님이고 아들도 출가했고….”

다음날 아침공양 뒤 걸망 메고 나서는 데 보살이 따라왔다. 기다리라며 초가집으로 향하는 모습에 “노잣돈 꾸러 가는 구나” 싶어 빠른 걸음으로 도망쳤다. 그런데 꾸깃꾸깃한 돈 흔들며 끝까지 쫓아와 결국 걸음을 멈췄다.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스님(아들)이 집 나간 지 3년이 넘었다면서 어느 절 모스님 밑에 있으니 말씀 하나 전해달래서 으레 짐작하고 대답했다. 당연히 모친이니 보고 싶어 하는 줄 알았다. 해서 “걱정 말고 기다리시지요. 만나면 꼭 집에 한 번 들르라 전하겠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보살은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게 아니고요, 그게 아니고요….” 울먹거리는 목소리보다 보살이 꺼낸 이야기가 스님의 가슴을 쳤다.

“어미 보고 싶어 하면 안 된다고 일러주세요. 아무리 보고 싶어도 참아 달라고 전해주세요. 절대 집에 오지 말라고 하세요. 부처님 길만 좇아가달라고 전해주세요.”

스님은 수행자의 마음을 되새겼으리라. 그래서일까. 의왕 청계사 향기법문 108선원순례단을 따라 1월28일 조계종립 태고선원 봉암사를 찾을 때 스님이 잊지 않고 꺼낸 일화였다. 그리고 당부했다.

“수행이라는 것은 마음 다스리는 길입니다. 우리 마음 아름답게 가꿔 나가는 길이지요. 어떤 각오가 필요할까요.”

▲ 최호승 기자
순례단 가슴이 뜨거워졌다. 침묵은 진한 울림을 전했고, 합장은 더 절절했다. 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표표히 방을 나갔다. 순례단 발걸음은 한참이나 먹먹했다.

고등학교 졸업 뒤 ‘천진도인’이라 불리던 우화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직후부터 전국 제방선원에서 50여년간 묵묵히 참선수행의 길을 걸어온 스님. 천성산에서 12년 토굴 정진 뒤 은해사 기기암에 주석하다 2009년 봉암사에 발길 닿았던 스님. 1949년 성철, 청담, 향곡, 자운 스님 등 오늘날 수행풍토의 기틀을 잡은 ‘봉암사 결사’의 장이었던 봉암사에서 조실로 추대했지만 수좌를 고집한 스님. 그 스님의 마음에는 아들이었던 스님에게 부처님 길을 재촉한 애끓는 모정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 마음은 그랬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1282호 / 2015년 2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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