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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의 결혼식

기자명 하림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5.02.09 12:15
  • 수정 2015.10.22 12:10
  • 댓글 0

오랜만에 강원도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냥 여행이 아니라 꽃다운 20대를 우리 절에서 보내고 서른 살을 넘겨 강원도 남자와 인연을 맺은 조카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평소에 한 번씩 가던 강원도 길이지만 왠지 그 날은 기분이 다릅니다. 조카는 어려서부터 유독 저와 인연이 깊었습니다. 많이 놀아주지도 못했는데, 대학을 들어간 조카는 어느 날 저를 찾아 남원 실상사까지 내려왔습니다. 그리곤 이런 저런 인연으로 대학을 졸업한 조카는 재단에 소속된 절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든 딸자식 결혼을 앞두고
혼수를 챙기는 어머니 보며
비록 자신의 삶 어려웠어도
대물림 않으려는 모정 느껴

스물다섯 살, 꽃다운 나이로 절에 처음 왔을 때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짧은 치마를 입고 예쁘게 단장을 하고 첫 출근을 했는데, 제가 그만 혼을 내었나 봅니다. 옷이 문제가 아니라 저의 노파심 때문이었습니다. 혹여 어른들과 신도들에게 버릇없게 굴거나 실수를 할까봐 걱정이 앞서 지나치게 혼을 냈나봅니다. 그 때부터 이 아이는 울보가 됐습니다. 툭하면 아이는 화장실로 뛰어가게 되었고, 그럴 때면 저는 더욱 씩씩거렸습니다. 보다 못한 신도들과 종무원들이 오히려 저를 나무랐습니다. 제발 조카를 좀 힘들게 하지 말라고요. 요즘 저렇게 속 깊은 아이가 없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그래도 제 눈에는 부족해 보이고 어른들에게 예의바르게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따라 붙어 잔소리가 줄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우리의 관계는 더욱 불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저도 40대 초반이었으니 20대를 원숙하게 상대하기에는 미숙했던 것입니다. 갈등은 줄지 않았고, 결국 조카는 6개월 만에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다시는 서로 안 보기로 약속까지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별일 아니었지만 조카는 제가 자기 일에 너무 간섭한다고 보았고, 저는 그것이 간섭이 아니라 조카를 위한 조언으로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의 차이가 서로를 고통스럽게 했고 헤어지도록 했습니다.

몇 개월이 흘러 사찰에 있던 신도들과 종무원들이 저와 조카가 서로 화해하기를 원했습니다. 저 자신도 어린 조카와 이러는 모습이 부끄럽기도 해서 찾아가서 화해를 하고 다시 재단 일을 맡기기로 했습니다. 과거와 달리 저는 덜 간섭했고, 조카는 저의 말을 귀담아 들었습니다. 그렇게 5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싸우면서 든 정이 더 깊다고 조카의 결혼 소식에 서운함이 밀려옵니다. 조카는 저에게 주례까지 부탁을 했습니다. 그냥 참석만 하는 것도 섭섭한데 주례까지 맡아달라고 했습니다. 가는 길에 기왕 인연이 있을 때에 좀 맘 편하게라도 해줄 걸 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결혼식을 가고 오는 길이 내겐 아쉬움과 미련을 달래는 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은 어머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요. 결혼을 준비하는 것을 보고 엄마와 자식의 사랑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뭘 그리 사서 가는 것이 많은지 놀랐습니다. 제가 간섭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좀 따졌습니다.

‘당신들 결혼할 때는 겨우 밥그릇 두 개와 숟가락 두 개만 있어도 잘 살았지 않았냐. 부엌 딸린 방 하나에 살면서도 이렇게 훌륭하게 아이 둘을 잘 키웠지 않았냐. 지금 아이들은 많이 배웠고 똑똑한데 뭐가 그리 걱정되나. 둘이 결혼해서 서로 노력해 살림을 장만하면 되지 않나.’ 제가 이렇게 나무랐지만 돌아오는 말은 “스님은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것이었습니다.

▲ 하림 스님
미타선원 주지
비록 자신들이 어렵게 살았지만 자식에게만큼은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는 게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 부모의 마음이 우리의 생명을 이어주고 있습니다. 어릴 땐 살과 피를 다주고 결혼할 때에는 또 한 번 당신의 삶을 바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언제까지 어머님은 주시기만 할런지요. 물이 위로 흐르기 어려운 것처럼 윗분의 은혜를 갚기는 어렵기만 합니다.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받은 사랑을 오래도록 기억이라도 하면 좋겠습니다. 자식이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을 조금이라도 알고 늘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면 부모님은 하나도 섭섭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주고자 하는 부모의 따뜻한 마음을 깊이 이해한 하루인 것 같습니다.

[1282호 / 2015년 2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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