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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곡도명상수련원 - 하

국화 한 송이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운다

▲ 스승과 일대일로 마주하고 앉아 견처를 내보이고 점검 받는 독참(獨參). 초심자에게 대기시간은 두려움 반 기대 반이었다. 그러나 독참 횟수가 늘어갈수록 환희에 젖어갔다.

‘괴로운 마음’ 내놓으면 편안할까. 고충 털어 내봤자 헛수고였다. 혜가 스님은 ‘괴로운 마음’을 찾을 수 없었다. 달마대사는 딱 한 마디 더했다. “벌써 네 마음을 편안케 했다.”

몸이 아파도 마음은 평안
화두에 몰입 깊어지면서
마음 깊은 곳 ‘나’ 드러나

스승과 일대일 수행 점검
떠올랐던 견처 내보이면
경계 벗어나는 길 가르쳐
독참 횟수 늘수록 환희심

“참선, 깨어있는 삶의 배터리
본래 불성 회복하는 게 수행”

김준원(23)씨가 화두 드는 순간은 적어도 그랬다. 아프지만 괴롭지 않았다. 통증은 무릎에 있었고, 마음엔 없었다. 끊어질 듯한 고통에 이는 짜증도 ‘다리 풀고 싶다’는 ‘의도’에서 생긴 집착이었다. ‘왜 이렇게 나만 괴롭냐’는 생각이 날아들지 않았다. 마음에 티끌만한 번뇌를 쓸어낸 공간이 생겼다. 불성이 빼꼼히 얼굴 내밀자 ‘무’자 화두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오곡도 새소리가 마음에 들어와 앉았다. ‘좋다’라는 생각을 했다.

장휘옥 오곡도명상수련원장에게 견처를 보였다. “어떤 게 떠올랐느냐”는 물음에 새소리를 꺼냈다. 의구심이 들었다. ‘이렇게 막 얘기해도 되나.’ 그는 질책보다 격려를 받았다. “멀리 있는 새소리가 들렸다면 잡념 없고 마음이 고요한 상태다.” 칭찬이었다. 잘 해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다음 날 좌선은 다른 변화가 생겼다. 열려있던 법당 어간문으로 햇볕이 비췄다. 눈앞이 환하게 일렁였다. 문득, 법당 천장에 매달린 연꽃 등이 활짝 피어나는 듯 했다. ‘뭘까. 이게 화두가 잡힌 건가?’ 갑자기 통증이 밀려왔다. 스승은 유혹이랬다. “떨쳐내라.” 놓쳤던 ‘무’를 다잡으라고 일렀다.

재미가 생겼다. 좌선하고 나면 마음이 달라졌다. 웃으면서 시작했고 끝나면 실실 웃음이 나왔다. 모든 게 즐거워졌다. ‘무’에 전념하자고 발심했다. 참구에 몰입했다. 3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아제 아제 바라아제’ 소리가 들렸다. 리듬감마저 있었다. ‘무~ 해야 하는데, 무~ 해야 하는데….’ 신경 쓰였다.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번엔 “뿌리치고 더 전념하라”는 죽비를 맞았다. 마음 하나 통제하는 일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계가 왔다고 느끼니 마음은 급해졌다. 내일이면 오곡도를 떠나야 했다. 이 순간도 지나면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었다. 생에 마지막 좌선이라는 생각까지 들자 무섭게 몰두했다. 처음으로 자연현상이 없었다. 모든 게 환하게 있었다. 그냥 혼자 ‘무~’하는 자체가 편안했다. 생각 자체가 끊긴 느낌이 들었다.

그는 놀라웠다. 1주일 경험들이 큰 의미였다. 하나하나에 감사한 마음이 생겼다. 자신 안에 무언가 내재된 힘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이 힘을 나중에 발산한다면 삶이 어떻게 변할 지 궁금해졌고 기대가 커졌다.

스승과 일대일로 마주하고 앉아 견처를 내보이고 점검 받는 독참(獨參). 초심자에겐 낯설었다.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할지 몰라 약간의 두려움도 생겼다. 화두 몰입이 깊어지면서 마음속 ‘나’는 모습을 드러냈고, 스승은 온화한 미소로 경계를 벗어나는 길을 안내했다. 때론 경책도 때론 격려도 하며 수행자들이 화두에 집중하도록 이끌었다. 오곡도에 들어온 첫날을 빼곤 총 5번의 독참. 횟수가 늘어갈수록 수행자들은 환희에 젖어갔다.

젊은 시절 화두 좀 들어봤다는 김기문(69·해인)씨에게도 독참은 신선했다. 그냥 앉았다 일어서는 게 참선인 줄 알았다. 화두를 챙기는 방법은 몰라도 ‘시간 지나면 되겠지’ 여기고 앉았다. 그동안 누구도 말해 준 사람이 없었다. 오로지 하라고만 했다. 그때마다 그는 ‘누가 안하나. 다 오로지 하고 있다’며 반발심이 생겼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답답했다. 오곡도에서는 독참으로 그의 경계나 견처, 번뇌들이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알게됐다. 10분 하더라도 어떻게 집중해서 화두를 드는지 배웠다. 내일 모레면 일흔, 간화선은 그에게 인생 마지막 수행이었다. 죽을 각오하지 않으면 시간낭비라는 말에 이끌려 오곡도에 들었던 차였다. 하루에 기껏 1시간 정도 참구하겠지만 이제 시간낭비할 일은 없었다. 송경환(70·적멸)씨도 마찬가지였다. 견처를 꺼내니 스승은 “마음속에 깊이 감춰진 불 같은 성질이 나왔다”고 했다. 그는 깜짝 놀랐다.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낸 적 없었고 스스로만 알았던 부분이었다. 독참을 믿기 시작했다. 좌선 내내 입이 좌우 그리고 위 아래로 떨렸지만 스승은 걱정을 덜어냈다. 마장이니 밀고 나가랬다. 나이도 적지 않은 터라 가르침 없었다면 좋은 수행 못할 뻔 했다고 기뻐했다. 그는 원력을 세웠다. 죽을 때까지 참선하고 주말수련회로 독참 받으며 화두를 들겠노라고.

구참자들 생활은 이미 변하고 있었다. 남편과의 사별로 힘들어하던 박상미(56)씨는 1년 동안 4번 집중수련에 참가했다. 우울했던 얼굴은 밝게 변했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던 성격도 스스럼없이 말을 건넬 수 있게 됐다. 스승을 통해 상기병 경계를 안 뒤엔 작은 깨달음도 왔다.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는 데 통증과 쓸데없는 잡념에 끄달려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어떤 환경에 부딪히더라도 마음만 바로 두고 있으면 흔들리지 않겠다는 심지도 생겼다. 쑤시는 머리는 여전했지만 더 이상 신경 쓰이진 않았다.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김애란(49)씨도 제자들과 갈등이 줄었다. 좌선하면서부터 그 순간 자신이 불구덩이에 있다는 점을 알아챈 뒤 흥분 가라앉히고 대화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오곡도 집중수련 11년차 구참자 배정옥(54)씨도 ‘머저리 같은 아이들 왜 가르쳐야하나’는 생각이 달라졌다. ‘애는 먹이지만 예쁜 아이들이 있으니 선생님 역할이 중요하고 내 삶은 여기 있다’고.

▲ 환한 미소로 작별 인사하는 수행자들.

번뇌 일렁이는 뭍으로 향했다. 척포항에 발 디디자 가벼운 멀미가 인다. 장휘옥 원장과 김사업 부원장 당부가 귓가에 파도처럼 밀려든다. “허공은 벼락에도 멍들지 않는다. 아무리 세파 벼락이 쳐도 본래모습인 불성은 멍들지 않는다. 수행은 해탈과 열반이라는 인격 완성(불성)을 위한 과정이다. 본래 불성을 회복하고 ‘발견’하도록 틈틈이 시간 내 참구해야 한다. 참선은 깨어있는 삶의 배터리다. 서정주 시인의 시처럼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운다.”

수행자들, 잠시 내려놓았던 빗자루를 들었다. 마음속 번뇌를 쓴다.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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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에 감춰진 ‘나’ 발견해 삶 전환하는 계기 줘”

직접 체험해보니

망상 사라지는 순간 고요
생활 속 ‘무’자 참구 발원

▲ 간화선의 매력은 충분했다.

동사섭이 현대의 집단상담기법을 접목한 반면 오곡도명상수련원은 전통적인 간화선 수행으로 ‘나’를 제거했다. 대신 오곡도는 동사섭에서 볼 수 없었던 제창과 독참이 인상적이었다. 김사업 부원장 제창은 화두 드는 방법과 선 수행자들 마음가짐, 연기 등을 초심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했다. 선사들의 구도열정과 일거수일투족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곁들여 수행자들의 참구심을 북돋았다.

장휘옥 원장 독참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목숨 건 전쟁터’라는 편견이 부서졌다. 일단 마주하고 앉으면 마음이 편안했다. 그것보다 좌선할 때 생겼던 경계를 깨뜨리는 방법을 쉽게 제시했다. 뿐만 아니다. 저 깊은 의식 속 아뢰야식에 감춰진 ‘나’를 정확히 짚어내 생활에서 매번 걸리는 문제들의 원인을 찾게 했다. 사람마다 경계는 다 달랐지만 누구도 원장의 독참에 이견을 달지 못했다.

기자가 날카로운 연필 앞부분이 눈앞에 놓였고, 작은 원을 만들며 정수리에서 일직선으로 하강하면서 찌릿한 느낌을 받았다고 견처를 꺼냈다. 울컥하는 ‘화’라고 했다. 마음으로 삭이든지 해서 스스로 풀려는 노력이 보여 다행이라고 했다. ‘무’에 들어가려는 순간 호흡이 멈추는 듯 했고, 참구에 방해된다며 호흡하기 싫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일렀더니 ‘목숨에 대한 애착’이자 강박관념에 걸렸다고 했다.

참구를 분발하기도 했다. ‘무’와 빛이 겹쳐진 듯 했다.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두려웠고 숨이 가빠지면서도 살짝 전율이 일었던 경험을 전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아주 잠시 삼매에 들었으나 ‘무’는 놓쳤다. 삼매를 바라면 화두는 잡히지 않는다. 분발하라.”

고루하게 여겼던 간화선은‘무’를 드는 시간이 소중할 정도로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1282호 / 2015년 2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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