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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인 대중공사와 바티칸 공의회

“부처님의 법은 법당에 박제되었고, 수행은 좌복에 갇혔으며, 실천은 삼촌지설이 되었다. 수행과 생활의 공간인 사찰을 우리 스스로 관람의 대상으로 전락시켰고, 깨달음을 향해 쉼 없는 구도의 길을 걷는 수행자를 번뇌에 얽매여 생사를 초월하지 못하는 범부로 만들었다.”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현재 한국불교의 모습’으로 규정한 말이다. ‘종단 혁신과 백년대계를 위한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를 시작하는 자리였다. 이어 공동추진위원장 지홍 스님은 “조계종단의 과거와 오늘을 진단하고 미래를 하나씩 설계해 나가야한다”면서 대중공사가 “1994년 체제를 벗어나 새로운 종단의 백년이 시작되는 첫 걸음”이라고 밝혔다. 첫 대중공사를 마치는 자리에서 중앙종회의장 성문 스님은 100인 대중공사마저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조계종은 앞으로 설 땅이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랬다. 100인 대중공사는 조계종단의 지도부가 모두 들어와 사뭇 결기를 보인 자리였다. 대중공사를 마무리할 연말에 짜장 어떤 성과를 거둘지 예단은 섣부르다. 일각의 우려를 몰라서 하는 말도, 그 우려가 전혀 기우라고 생각해서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종단 지도부가 한 목소리로 불교의 오늘을 비판하고 내일을 설계하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데 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대중공사에 참여한 사부대중의 지혜와 자비에 달려 있다. 굳이 그것을 ‘실천’이 아니라 ‘지혜와 자비’로 표현한 이유는 사부대중의 언행에도 붓다의 가르침이 오롯이 담겨야 옳기 때문이다.

다만 대중공사가 뜻을 이루려면 목표가 좀 더 명확해야 한다. 가톨릭의 제2차 바티칸공의회(이하 공의회)를 소개하는 이유다. 만일 종단 집행부가 100인 대중공사의 모델로 공의회를 언급하지 않았다면, 굳이 이 작은 지면에서 논의할 필요는 없을 터다. 하지만 그것을 모델로 삼았다면, 온전히 짚을 필요가 있다. 공의회의 역사적 의미는 가톨릭의 테두리에 머물지 않는다. 공의회 자체가 100년 만에 열렸고 한 해에 그친 것도 아니다. 4년에 걸쳐 긴 회의를 열었다. 21세기인 오늘날에 회의 기간이 길어야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톨릭 전반이 당시 공의회에 보인 정성과 열정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당시 교황 요한 23세는 공의회를 소집하면서 “교회 생활의 모든 분야가 현대 세계에 ‘적응’하는 차원을 넘어 현대 사회 속에서 완전히 의식 변화를 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가톨릭을 넘어 다른 종교, 더 나아가 현대 문명 전반에 넓고 깊은 영향을 끼친 이유다. 조지 부시 따위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에게 흔히 나타나지만, 자기 아집에 매몰된 사람들은 다른 종교와의 대화나 사회적 참여에 거부 반응을 보이기 일쑤다. 불교는 역사적으로 근본주의 경향이 극심하지 않았지만, 가끔 종단 안팎에서 근본주의 경향이 감지되곤 한다.

가톨릭은 오랜 세월에 걸쳐 개신교나 정교회와 선을 긋고 이단시했다. 하지만 공의회는 당시 가톨릭의 ‘우물’을 벗어났다. 무엇보다 가톨릭 신자든 아니든 그것을 넘어서서 모든 인간 개개인의 존엄성을 강조했고, 종교에 관계없이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핍박받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적극 제기해갔다. 공의회 이후 가톨릭은 인간을 추상적으로 사고하지 않는다. 사회 속의 인간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단순한 사회 비판이나 자선은 해결책일 수 없다고 강조한다. 예수 가르침에 근거한 새로운 사회질서를 확립해 가야 옳다고 주장한다.

‘현대 세계’와의 소통을 강조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종교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는 학자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의미가 깊다. 기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공의회의 배경이 있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100인 대중공사가 지금보다 더 큰 비전을 가지길 소망하는 까닭은 간명하다. 21세기 현대 사회에서 불교의 문화적 힘을 벅벅이 믿어서다.

손석춘 건국대 교수 2020gil@hanmail.net
 

[1282호 / 2015년 2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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