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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도 ‘사람도서관’을 벤치마킹하자

기자명 조승미
  • 법보시론
  • 입력 2015.02.23 11:39
  • 수정 2015.05.19 10:06
  • 댓글 0

건강정보를 전해주는 프로그램에서 최근 확연히 달라진 점이 있다. 전문가의 의학적인 설명이 중심을 이루었던 것에서 체험자의 사례소개가 주류로 변화한 것이다. ‘어떻게 해서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나’ 하는 생생한 이야기가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일상 속에서 간편하게 실천할 수 있는 각자의 비법들 또한 폭발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가히 정보화시대의 질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할 만 하다. 엘리트층이 정보를 통제할 때는 보편화할 수 없는 개별사례가 꺼려졌던 것에 반해, 수용자 대중들이 직접 연결되는 시스템에서는 다양한 경험과 구체적인 내용이 더 각광을 받는 것이다.

이와 같이 경험을 중시하는 문화적 변화는 도서관에서도 볼 수 있다. ‘사람도서관(Living Library)’이라고 하는 프로그램은 책 대신 사람을 빌려 살아있는 경험을 얻는 것인데, 덴마크 출신 사회운동가 로니 에버겔(Ronni Abergel)이 창안한 이것은 “누군가를 이해하면 폭력이 줄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한다. 주로 장애인, 동성애자, 미혼모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 극복이 목적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대규모 강연보다 소수의 사람들과 대화형식으로 소통하는 것을 중시한다. 현재 국내에서도 몇몇 단체에서 시작되어, 공립도서관과 사회복지기관 등에서 열리고 있다.

책을 통해서는 간접적으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지만, 정보의 홍수와 가상현실이 커지게 된 오늘날, 사람들은 보다 직접적이고 살아있는 경험을 찾으려고 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도란도란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는 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자연스러워야 살아있는 이야기가 오고갈 수 있다. 그리고 살아있는 이야기는 바로 우리를 질적으로 변화시켜준다.

한편, 이 ‘사람책도서관’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경북 칠곡의 인문학마을에서 운영한 주민들의 스토리텔링이다. 유명한 사람들을 모셔놓고 그저 듣고 묻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주인공이 되어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한 것이다. 또한 그들의 갖가지 다양한 경험들은 그 마을의 인문학 교과서로 만들어진다 한다.

자신의 생애를 이야기하는 소위 ‘구술생애사’는 인류학이나 여성학자들에 의해 시행되어 온 연구방법의 하나였다. 대체로 주류 담론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것을 중요시하는데, 때로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가치있게 여기기도 한다.

칠곡 인문마을의 프로그램은 평범한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에서 나아가 서로 연결되게 하고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였다. ‘공정여행’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이 마을을 직접 찾아와 이 집 저 집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느끼는 체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이 같은 새로운 방식이 활기차게 시도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불교에서도 이런 프로그램들을 적용해 보면 어떨까 싶다. 만약 대중 법회에서 저 높은 법좌에 앉아 계시는 스님들이 내려오셔서 몇 명의 사람들과 두런두런 대화를 나눈다면 어떨까. 어려워서 물어보지 못했던 것들을 자연스럽게 묻고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상호 간에 실질적인 소통과 감동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사찰체험 또한 발우공양, 염주 만들기 등 다소 관념화된 ‘불교문화’와의 만남 역시 이 같은 방식을 적용한다면 보다 구체적인 일상을 체험하고 사람과 직접 만나는 장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변화는 평범한 재가신자들의 경험이 소개되는 일일 것이다. 신자들은 가장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불교를 적용해 온 살아있는 지혜를 보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는 바로 재가여성이 있다. 이들의 지혜가 담긴 상자가 열릴 때가 되지 않았을까.

조승미 서울불교대학원대 연구교수 namutara@gmail.com


[1283호 / 2015년 2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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