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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아뇩다라삼먁삼보리-하

기자명 서광 스님

현상에 빠져 본질 망각 않는 중도적 관점

“세존이시여, 본질세계와 현상세계를 동시에 깨닫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유지하고 닦아야 하며, 만약 그 마음이 흔들리고 산란해지면 어떤 방법으로 다시 돌이켜서 전환하고 조절해야 합니까?”

현상과 본질은 동전의 양면
너나 갈등 없는 연기 관계
현대인 본질 아는 지혜 부족
중생 염두에 둔 자비 문답

지난 호에 소개했던 “세존이시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킨 선남자 선여인은 그 마음을 어떻게 머무르며 어떻게 항복받아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위의 문장으로 바꿔보았다. 이 질문을 던진 수보리는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공(空)의 이치를 가장 잘 깨우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니까 이 질문은 수보리 자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일체 현상의 본질적 동질성과 외형적 차별상이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깨우친 경험자의 입장에서, 불법을 공부하고 마음수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수행을 하는 것이 효과적인가를 대신해서 묻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성장과정에서 다양한 개인적 사회적 요인들에 의해서 현실세계를 싫어하고 외면하거나 현실을 떠난 어떤 완전하고 이상적인 정신적 세계를 꿈꾸기도 하고, 또 반대로 현실조건에 탐닉하면서 물질적·외형적, 사회적 가치와 인정을 추구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이 어느 한 극단으로 치우치게 되면, 정신적·본질적 세계와 물질적·현상적 세계간의 갈등과 괴리감을 조장하게 된다.

유식심리학은 그와 같은 괴리감, 갈등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이 둘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라고 주장하면서, 둘 사이의 통합과 조화를 터득하고 깨달아가는 수행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을 견도(見道)에서 성취되는 무분별지(無分別智)라고 하고 화엄에서는 이사무애지(理事無碍智: 현상과 본질 사이에 걸림이 없는 지혜)라고 부른다. 견도 수준의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들은 이상을 추구하느라 현실을 무시하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현상이나 외형에 빠져서 본질을 망각하지도 않는 중도적 관점을 체득하게 된다.

그러한 지혜는 현상을 통해서 본질을 보고, 그 본질이 인연화합을 통해서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현상 즉 사바세계와 본질의 진실 세계가 서로 별개가 아니라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사실을 알아서 뭘 어쩌라는 건가? 한마디로 중생을 통해서 부처를 보고, 번뇌를 통해서 보리를 성취하라는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는가? 그래야만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또 너와 나 사이에 갈등이 없는 조화, 연기적 관계를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서로 상호의존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독립적 인격체로서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고 인정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고 실천하는 지혜를 화엄은 사사무애지(事事無碍智: 현상과 현상사이에 걸림이 없는 지혜), 유식은 분별지(分別智)라고 부른다.

오늘날 이 지구위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요즘처럼 서로 단절되고 거리감을 느꼈던 시대는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현재 우리들이 겪는 가장 큰 심리적인 고통 가운데 하나가 분리에서 오는 소외감, 외로움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소통과 연결을 돕는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어쩐지 우리들 사이에 놓인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다.

왜일까? 금강경이나 유식심리학 등의 가르침들은 그 원인을 우리들의 존재 자체에 대한 본질적 속성·공통점(무분별지)과 우리들 각각이 가지고 있는 개체적 속성·차이점(분별지)을 동시에 아는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 두 가지 지혜를 동시에 성취하는 방법을 수보리 존자와 부처님은 무려 2500여년 전에 지금의 우리들을 염두에 두면서 문답하셨던 자비심은 그 어떤 존경과 감사함으로도 다 표현할 길이 없을 것 같다.

서광 스님 한국명상심리상담연구원장 seogwang1@hanmail.net


[1283호 / 2015년 2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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