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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와 같은 악인이 나타났을 때[br]평범한 사람들이 저항할 수 있을까

기자명 이병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 정화열 해제 / 한길사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독일 패전 뒤 아르헨티나로 숨어 ‘아주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던 나치스의 제1급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은 1960년 5월11일 저녁,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이스라엘 정보 요원들에게 체포되어 예루살렘으로 압송되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약물이나 밧줄, 수갑 등도 사용하지 않았고, 어떠한 불필요한 폭력도 사용되지 않았다. 자기가 누구인지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즉각 독일어로 ‘나는 아돌프 아이히만이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놀랍게도 ‘나는 이스라엘 사람들 손에 잡혔다는 것을 안다’고 덧붙였다.” 자신에게 언젠가 닥쳐올 일이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처형당하는 순간에도 그는 이처럼 냉정하고 차분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아주 근엄한 태도로 교수대로 걸어가서 붉은 포도주 한 병을 요구했고, 그 절반을 마셨다. 성서를 읽어주겠다고 제안한 윌리엄 헐 목사의 도움을 거절했다. ‘두 시간밖에 더 살 수 없기 때문에 낭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감방에서 형장에 이르는 50야드를 조용히 그리고 꼿꼿이 걸어갔고, 그의 발목과 무릎을 묶는 간수들에게 ‘헐렁하게 묶어서’ 자신이 ‘똑바로 설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했으며, ‘검은색 두건을 머리에 쓰겠냐?’고 물었을 때 ‘나는 그것이 필요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자신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치스는 유대인 학살과 관련해서 “학살이나 유대인의 이송과 같은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우회적 표현법”을 쓰는 언어규칙을 만들었다. 이 규칙에서는 “학살은 최종 해결책·완전 소개·특별취급으로 불렀다.” 그렇다고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지만, 나치스가 굳이 이렇게 한 이유는 “암호화된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사람들의 현실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나치스가 아니라도 권력을 가진 이들이 숱하게 써온 수법이기도 하다.

영화 ‘히틀러- 악의 탄생’에서도 잘 묘사하고 있듯이,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에 저항은 별로 없었다. 탁월한 철학가와 문호를 숱하게 배출한 독일 국민들이 어찌 이리 쉽게 넘어 갔을까? “재무장을 통해 이루어진 전 국민 고용”, 이게 마약이었던 것이다. 이 마약 때문에 “나치 정권이 국내외에서 일반적으로 진정한 인정을 받았고, 히틀러가 모든 곳에서 위대한 정치가로서 존경”받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히틀러 집권 후에도 “수많은 독일인들과 나치스, 아마도 엄청난 수의 그들은 살인을 하지 않으려는, 도둑질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이웃이 죽음의 길로 가지 않도록 하려는, 그리고 그들로부터 이익을 취함으로써 이 모든 범죄의 공범자가 되지 않으려는 유혹을 분명히 받았을 것”이지만, “그들은 유혹에 어떻게 저항하는지를 배워”버렸고 결국 엄청난 범죄의 공범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아이히만의 가장 큰 범죄 행위였던 유대인 학살, 여기에 유대인들은 아무 책임이 없었을까? 아니다. 각 지역의 유대인 장로회는 수송될 유대인의 명단을 만들어 넘겨주었고, 이송과정에서 “숨거나 탈출하려는 사람들은 유대인 특별 경찰에 의해 검거되었다. 아이히만이 아는 한에서는 아무도 저항하지 않았고 아무도 협력을 거절하지 않았다.” 잘 알듯이 “어디에서 살든지 간에 유대인에게는 인정받는 지도자들이 있었고, 이들은 이러저러한 이유에서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나치스와 협력했다.” 그래서 아렌트는 “유대인이 정말로 조직되어 있지 않았고 또 지도자가 없었더라면 혼란과 수많은 불행들이 있었겠지만 희생자들 전체가 400만, 500만, 600만에 달할 리가 거의 없었을 것”이라면서 유대인의 책임도 묻는다.

‘나, 우리, 이처럼 아주 평범해 보이는 보통사람들 앞에 히틀러와 같은 악인이 나타날 때 쉽게 저항하고 벗어날 수 있을까?’ 이것이 이 책이 주는 화두이다. 

이병두 문화체육관광부 종무관


[1283호 / 2015년 2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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