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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 편협성 질책하고 인간중심 문화 일깨운 죽비

조계종 교육아사리 정운 스님
‘중화를 찾아서’ / 위치우위 지음 / 심규호․유소영 옮김 / 미래인

▲ 정운 스님은 “중화에 대한 선입견을 잠시 내려놓고 저자의 말을 경청하면 우리 문화를 보는 시각도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화(文化)는 의식주를 비롯해 언어, 풍습, 도덕, 종교, 학문, 예술, 각종 제도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어서 한 시대와 집단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낯선 곳을 찾을 때 그 지역의 문화를 사전 학습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한 나라의 문화를 놓고도 관점에 따라 평가가 엇갈리게 마련이다. 특히 역사가 오래되고 지형이 넓은 곳일수록 바라보고 이해하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중국의 문화가 그렇다. 특히 그들은 스스로를 세계의 중앙에 위치한 가장 문명화 된 나라라고 생각하며 ‘중화(中華)’를 내세운다. 자기네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주변국은 모두 오랑캐이고, 자신들을 위해 존재하는 부산물일 뿐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여기에 중화가 최고라는 생각에 물들어 조선시대 일부 사대부들이 한글 사용을 극구 반대했을 정도로 그들의 사상에 동조한 주변국들까지 있었으니, 그들 나름의 자부심은 충만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중화를 찾아서’ / 위치우위 지음 / 심규호․유소영 옮김 / 미래인
중국의 배타적 중화주의에 대한 반격
오늘날 중화사상의 저변에 깔려 있는 그 생각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 그렇게 믿고 살아온 그들은 지금도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고 그곳에서 피어나고 자란 문화가 최고라 자부하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중국의 예술평론가이자, 문화사학자인 위치우위는 중국의 편협한 중화주의에 준엄한 경고를 날리고 있다.
‘현대의 루쉰’으로 불리는 위치우위는 이 책 ‘중화를 찾아서’에서 특히 당나라를 지배한 한족 위주의 혈통주의에 빠져 오래된 흑백논리로 모든 것을 판단하기 쉬운 대국주의와 대중화주의가 몰고 오는 편견과 오해에서 벗어나야 함을 촉구하고 있다. 중국 전통사회의 병폐를 일깨우는 글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루쉰에 비견되는 이유다.
지난 1988년 루쉰문학상을 수상한 조정래가 “인간다움이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문학이 제몫을 해야 한다는 투철한 사회의식, 지식인으로서 문인이 사회 불의를 헤쳐 나가는데 얼마나 단호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 등 루쉰의 작가 정신이 큰 가르침을 주었다”고 평가했던 그 루쉰과 동일 선상에서 존중받는 인물이 바로 위치우위다.
그는 근본적으로 중화문화에 지극한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음에도, 이 책을 통해 한족 중심 중화주의에 비판적 시각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중국인들을 현혹시키고 있는 배타적 대중화주의에 대한 학문적 반격인 셈이다.

인간중심 역사․문화로 본 중화
오랜 시간 중국에서 공부하고 대륙의 곳곳을 찾아 그들의 문화를 직접 체험해온 조계종 교육아사리 정운 스님은 저자의 인간중심 사고에 주목했다. 평소 “우리의 사고와 삶은 인간을 중심에 놓고 있어야 한다”는 인간중심 사상을 견지하고 있는 스님은 문화를 이야기하면서도 ‘인성’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저자의 논조에 마음이 끌렸다.
중화의 역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과 인물에 대해 유려하면서도 장중하고 힘이 넘치는 서정적 문체로 거침없이 강렬하게 글을 써내려간 저자는 ‘무슨 옛 이야기를 줍거나 유적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기 위함이 아니라 고도로 농축된 후에 비로소 밝게 드러나는 인성(人性)의 오묘한 비밀을 탐구하기 위함이자, 옛 선조들이 함께 힘을 쏟아 부은 후에 매장되고 만 유언을 찾아 물어보기 위함’이라고 중화의 진면목을 들여다보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저자가 중화문화의 미래를 논하는 대목에서 ‘전체 인류를 감동시킬 수 있는 아름다움과 우호’, 그리고 ‘인류의 시정 넘치는 생존, 조화로운 생존’을 위한 적극적인 참여를 제시한 것 역시 인간을 중심에 둔 사상의 표출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스님은 “저자가 중국의 문화 전반을 역사적으로 주목할 만한 사건과 인물을 중심으로 설명하면서도 그 바탕에는 포용정신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며 위치우위의 진정한 대륙기질에 주목하고 있다.

문화는 운명이 아니라 주체적 선택
저자의 그러한 인간중심적이고 포용적인 역사 및 문화 해석은 책 곳곳에서 드러난다. 특히 그동안 불교 역사에서조차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야율초재의 활약에 주목하면서 문화는 운명으로 제한할 수 없는 선택지라고 강조하는 대목에서 잘 나타난다.
야율초재는 ‘종용록’의 저자 만송행수의 제자로 요나라 사람이다. 칭기즈칸이 문화의 필요성을 인식해 책사로 초빙한 인물로, 이후 전쟁의 잔혹한 현장에서 군사들의 잔인성을 바꿔놓은 주인공이다. 저자는 야율초재를 중국문화에 영향을 미친 두 사람의 이방인 중 한명으로 꼽으며 ‘야율초재가 도가의 종사인 구처기와 함께 하였으니 유․불․도를 모두 갖춘 중국문화의 정수라 할 수 있는 구도가 칭기즈칸과 함께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물들이 매일 전쟁과 살생을 금지하고, 생명을 존중하며, 절제와 경천애민 같은 정보를 계속 흘려보내면서 결국 칭기즈칸에게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여기서 스님은 “저자는 원나라 문화를 이룩하는 데 크게 기여한 야율초재의 존재를 부각하면서, 그를 중국문화에서 하나의 조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문화적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한 저자의 이어지는 말에 공감했다.
‘많은 이들이 문화는 지역과 관련된 운명이며, 당신이 출생하기 전 이미 당신을 에워싸고 있는 것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혈통은 선택할 수 없지만 문화는 마땅히 선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화는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혈통보다 더욱더 생명의 본질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와 달리 만약 문화가 피치 못할 부담이 되어 사람들을 고정시킨다면 이러한 문화와 이러한 무리들은 생명을 창조하지 못하고 경직되어 말라비틀어질 것이다.’
야율초재의 존재를 부각하면서 소수민족 출신인 야율초재가 새로운 문화를 형성한 역사적 사실에 주목, 문화는 운명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선택이 가능한 것임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스님은 여기서도 저자의 인간중심적 사고와 하나의 문화가 형성되기까지 과정을 세세히 들여다보고 진솔하게 평가한 솔직함을 높이 평가했다.

중국불교문화의 진면목을 보다
스님은 또 저자의 문화읽기를 통해 중국불교문화의 진면목을 새롭게 보기도 했다. 특히 위치우위의 불교관을 통해 중국불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기도 했다. “중국에서 도교는 그들 문화의 밑바탕이라 할 만큼 널리 분포돼 있고 종교적으로 가장 먼저 탄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자생종교인 도교 이전에 불교를 가장 뛰어난 종교로 꼽고 있다”며 그의 불교문화 성찰에 주목할 것을 당부했다.
특히 “‘서양의 기독교와 천주교의 성직자 집단 역시 대단히 막강하다. 그러나 불교의 승려는 성직자가 아니다. 그들은 일반 대중을 위해 복락을 기원하거나 재앙을 없애주며 신을 대신하여 축복하고 죄를 사해주는 사명을 가지고 있지 않다. 불교의 승려는 단지 출가수행자로서 고상한 품격과 정결한 생활로 수많은 불교 신도들의 모범이 될 뿐이다’라고 한 대목은 스님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자는 또 어릴 적 고향 풍경을 그리며 마을에서 서로를 미워하거나 욕망에 사로잡혀 으르렁거리는 일이 없었던 이유를 ‘일자무식 여인네들의 염불소리와 직접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한 그것이 본인의 경험에 그치지 않고 훗날 동년배들을 통해서도 그같은 이야기를 확인하면서 ‘그렇다면 이는 중화문화의 핵심을 이루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마치 모세혈관이 피부 끝까지 뻗어 있는 것처럼 불교의 자취가 곳곳에 자리하여, 그 어떤 문화보다 훨씬 더 크게 활약하고 훨씬 더 유효했음을 설명하는 것일 터’라고 확신하고 있다.
스님은 또한 “저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수많은 전쟁의 북소리와 말발굽 소리, 인의도덕을 외치며 자만하던 중국은 결국 서역에서 전해진 부드럽고 신비한 목소리에 공간을 내어주고 말았다. 처음 황량한 사막에서 백골을 따라 힘겹게 이어온 발걸음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고 불교가 도교의 자리를 밀어내고 중국문화에 뿌리 내릴 수 있었던 이유를 밝혔다”면서 “옛 스님들이 험난한 역경을 딛고 인도에서 불교의 가르침을 들여온 과정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찬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자의 이러한 불교문화 평가는 중국 북방에서 불교가 중심이 될 수 있었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패권주의 중화사상에 가한 일침
정운 스님은 저자가 이처럼 불교적 시각을 통해 중국불교문화를 설명하는 것은 물론, 다른 민족의 문화를 존중하고 한족 중심의 패권주의적 중화사상을 비판한 대목에서도 감명을 받았다. 특히 스님은 저자가 중국 문화와 관련해 ‘실증에 관한 의식이 결여됐다, 법제 의식 역시 부족한 편이다, 공공 공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분석한 대목을 보면서 “우리 문화와 불교문화를 보는 시각을 변화해 더 발전시켜 갈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자기가 속한 집단의 문화에 대한 무조건적 찬사가 아니라 애정을 바탕으로 비판하고 개선점을 제시하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 ‘북위 효문제 탁발굉의 개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내가 심히 우려하는 것은 현재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 불고 있는 맹렬한 대한족주의, 대중원주의에 그릇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점이다. 효문제 탁발굉의 행동이 그들에게 또 한 번 한족의 문화가 모든 문화에 우선한다는 것처럼 간주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패권주의적 중화사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스님은 “저자는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중국의 나아갈 바를 찾고 있으며, 그 시각은 세계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그것이 바로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중화’라고 설명했다. 패권의식이 가득하고 편협한 기존의 중화사상을 질책하면서 인간중심의 미래 문화를 제시하는 저자의 가르침이 죽비소리처럼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묵가의 평등사상 ‘겸애’ 새롭게 주목
책 곳곳에서 불교 친화적 사고를 드러낸 위치우이는 또 유교문화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묵자를 비롯한 묵가의 ‘겸애(兼愛)’에 주목했다. ‘묵자는 누구보다 유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유가를 부정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차별이 없는 겸애(兼愛)로, 등급을 중시하는 유가의 인애(仁愛)를 부정한 것’이라고 진단한 저자는 ‘유가가 볼 때 사회에 등급이 없어 세계가 모두 평등하다면 존엄이나 경외는 존재할 수 없고 질서 또한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묵가의 입장은 다르다. 세상은 본래부터 평등한 것이다. 따라서 공평해야만 비로소 모든 이들의 존엄이 가능해진다. 세상은 평등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질서를 만들어 어떤 상부 계층을 존경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굳이 경외하자면 귀신을 경외하면 된다’고 묵가의 평등사상을 칭송했다.
여기서 저자는 그동안 긴 세월 덮여 있었던 묵가의 사상을 새롭게 끄집어내면서 평등을 강조한 겸애사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번역자에게 그동안 묵가와 관련해서 써온 글을 자랑스럽게 보여줬다는 후문이 그 관심 정도가 어떠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하기도 한다.
‘중화’로 각인된 중국 문화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스님은 “알면 사랑한다는 말이 있는데, 중국도 그렇다”며 그동안의 선입견을 잠시 접어두고 이 책을 통해 중국문화의 면면을 객관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우리 스스로도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발전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정운 스님은 동국대, 중앙승가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때문에 출가수행자임에도 많은 외전을 접하고 있다. 이미 책이 삶의 일부가 된 것이다. 스님에게 외전은 불교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기회를 주기도 하고, 그 시간이 곧 수행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그 책들을 마주하는 서재는 곧 쉼터이자 안식처가 된다. 또한 부처님 가르침을 일반인들에게 어떻게 표현해서 전해줄 것인가를 연구하면서, 불교 밖 세상과 소통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그리고 부처님이 6년 고행 끝에 목욕하고 성도지인 부다가야로 건너갔던 강 ‘니련선하’에 그동안의 공부 결과를 흘려보내는 것도 역시 스님에게 있어서 수행과 포교의 한 방편이다.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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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 스님이 추천하는 책

 
‘천국의 열쇠’
A. J. 크로닌 지음/ 김성운 옮김/ 홍신문화사

신과 인간, 구원과 삶에 대해 인도하는 A. J. 크로닌의 소설입니다. 예수가 그의 제자 베드로에게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고 한 말에서 작품의 제목을 차용한 것으로, 그리스도교 전도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감수성이 강하고 정직한 성격의 주인공이 인내와 청빈과 용기로 일관하여 지고한 사랑을 펼쳐내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는데요. 고등학교 때 이 책을 처음 보면서 주인공의 삶에 크게 감동을 받았었습니다. 특히 ‘하늘에 있는 하느님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가슴에 있는 하느님이 중요하다’는 구절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고, 출가자로 살아가면서 저 역시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례프 니꼴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 윤새라 옮김/ 열린책들

톨스토이의 사상은 휴머니즘입니다. 많은 단편집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이 책은 스님들이 한번쯤 읽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책 속에 ‘인류가 중심이다. 사람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데요. 역경계에 부딪혀 힘들어 하는 주인공에게 하느님이 청소부, 사과를 훔치는 꼬마, 굶주린 아기엄마 등으로 나타나는 상황이 그려집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느님을 찾을 것이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들이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 주는 내용이지요. 불교에서도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부처님 대하듯 하라고 하는데요. 인간과 휴머니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합니다. 또 사람이란 무엇이고,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도 함께 고민하게 하는 책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에크하르트 톨레 지음/ 노혜숙 옮김/ 양문

에크하르트 톨레는 서양에서 달라이라마와 틱낫한 다음으로 인지도가 높은 명상지도자입니다. 언뜻 보기에 어느 순간 돈오의 경지를 맞은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책은 불교철학과 명상법을 바탕으로 유럽과 북미에서 상담가이자 영적지도자로 활동 중인 에크하르트 톨레의 영적 지침서라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충만한 삶으로 들어가는 좁은 문은 바로 ‘지금’이라는 깨달음을 통해 길과 진리, 그리고 빛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간명한 언어로 설파하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풍요를 비롯해 모든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음에도, 늘 마음 한 구석 허전하고 공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책입니다.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헬렌 니어링 지음/ 이석태 옮김/ 보리

저자 헬렌이 세계적 지성 스코트 니어링과의 만남을 그린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26세에 스코트 니어링을 만난 저자가 미국의 산업주의 체제와 그 문화의 야만성에 도전했던 스코트 니어링과 함께한 53년 동안의 삶을 진솔하게 회고하고 있습니다. 헬렌은 87세에 이 책을 쓰면서 자신보다 스코트의 삶과 반세기에 걸친 두 사람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요. 탁월한 경제학자이자 사회주의자이며, 교육자이자 생태주의자인 스코트는 스스로 말한 것을 자신의 삶에서 그대로 실천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평화롭게 생을 마친 스코트의 죽음을 통해 사랑과 삶, 죽음이 하나임을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둘의 삶을 통해 이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삶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1284호 / 2015년 3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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