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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와 개인-상

“사랑과 자비는 도덕적 의무 아닌 생존위한 원초적 본능”

▲ 달라이라마의 법문은 쉽고 명쾌하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기에 종교와 국적에 관계없이 누구나 그의 법문을 경청한다.

의도적으로 생각을 하던, 그렇지 않던 우리 경험의 기저(基底)에는 중대한 질문이 하나 놓여 있습니다.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그 누구도 사랑의 필요성에서
자유롭게 태어난 사람은 없어

일부 학파가 시도하고 있지만
인간은 전적으로 물질적이라고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해

값어치 있는 물질이라도 해도
사랑을 느끼게 할 수는 없어

우울증 등 부정적 감정원인은
타인에 대한 애정결핍서 비롯

저는 이 질문에 대해 깊이 통찰해 보았고 그 생각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것을 접하고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인생의 목적은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모든 인간은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 어떠한 사회적 관습이나 교육, 이념도 이러한 사실을 뒤집을 수는 없습니다. 존재의 근원에서 우리는 단지 ‘만족’을 갈망합니다. 무수히 많은 은하계, 별, 행성으로 이루어진 우주가 더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우리 스스로를 위해 행복한 삶을 만들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은 명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 최상의 행복을 가져다주는가를 찾아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복을 성취할 수 있을까요?

먼저 모든 종류의 행복과 고통은 정신과 물질적인 두 가지의 큰 범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중에서 우리에게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마음’입니다. 중대한 병에 걸렸거나 생필품이 심각하게 결핍되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물질적인 조건은 우리의 삶에서 부차적인 역할을 할 뿐입니다. 육체적으로 만족한다면 우리는 사실상 이를 무시하게 됩니다. 하지만 마음은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모든 일을 각인해 둡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신적인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진지하게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비록 ‘나’ 자신의 한정된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는 하지만 최상의 내적 평온은 사랑과 자비의 개발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타인의 행복에 마음을 쓸수록 스스로의 행복감은 더욱 확대됩니다. 타인에 대해 친밀하고 따뜻한 마음을 낼수록 우리는 자연스럽게 편안해지게 됩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느끼는 불안이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고 마주치게 되는 그 어떠한 장애도 능히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됩니다. 그것은 인생의 성공을 가져다주는 궁극적인 원천이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한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때에 희망을 잃고 의기소침해진다면 어려움에 대처할 능력이 약화될 것입니다. 반대로 그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라는 사실을 되새긴다면 좀 더 현실적인 인식으로 인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우리의 결의와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이러한 태도를 견지한다면 모든 새로운 장애 하나하나는 우리의 마음을 향상시킬 수 있는 또 다른 소중한 기회로 삼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점차로, 좀 더 자비롭게 될 수 있도록 진지하게 노력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타인의 고통에 대해 진실로 공감하고 그 고통을 제거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의지를 개발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 자신의 내적 평정과 정신력이 강화될 것입니다.

사랑과 자비가 최상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이유는 단순히 우리의 본성이 다른 그 무엇보다도 사랑과 자비를 더 소중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필요성은 인간 존재의 근본 바탕에 놓여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서로 간에 공유하고 있는 깊은 상호의존성에서 비롯됩니다. 개인이 아무리 유능하고 기술이 좋다고 하더라도 혼자 남겨진다면 생존하지 못할 것입니다. 한 개인이 인생의 가장 번창하는 시기에 아무리 활기차고 독립적이라고 느낄지라도 아프거나, 너무 어리거나, 너무 늙게 되면 타인의 도움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호의존성은 물론 자연의 근본 법칙입니다. 고등 생물뿐만 아니라 다수의 미미한 곤충도 비록 종교도, 법도, 교육도 없지만 상호연관성에 대한 선천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상호협력을 통해 생존하는 사회적 존재입니다. 가장 미묘하고 감지하기 어려운 수준의 물질현상도 상호의존성에 의해 지배 받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부터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 구름, 숲, 꽃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현상은 미묘한 에너지 유형에 의존해서 발생합니다. 서로 간에 적당한 상호작용이 없다면 그들은 붕괴되고 부패합니다. 

우리 인간의 존재는 타인의 도움에 깊이 의존하고 있고 그래서 사랑의 필요성은 우리의 존재 바로 그 근본 바탕에 놓여있게 됩니다. 이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책임의식과 타인의 행복에 대한 진심어린 관심이 필요합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지극히 숙고해야 합니다. 인간은 기계가 만든 대상물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단순한 기계장치라면 기계 스스로 우리의 모든 고통을 완화하고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단순히 물질적인 생명체만은 아니기 때문에 행복에 대한 우리의 희망을 외면적인 발전에만 의존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내기 위해, 우리의 근원과 본성에 대해 숙고해 보아야 합니다.

우주의 창조와 진화에 대한 복잡한 질문은 제쳐 두더라도, 최소한 우리들 각자는 우리 부모의 산물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임신은 성적 욕망이라는 맥락에서만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자녀를 갖겠다”는 부모의 결정에서 비롯됩니다. 그런 결정은 책임감과 이타주의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들이 자립할 때까지 그들을 돌보겠다는 부모의 자애로운 헌신입니다. 그래서 임신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부모의 사랑은 곧바로 우리의 탄생과 함께 합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성장 시초부터 어머니의 돌봄에 전적으로 의존합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임산부의 심리상태는 평온하건 동요된 상태이건 태아에게 직접적으로 육체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사랑의 표현은 또한 출산 때에 매우 중요합니다. 아기가 첫 번째로 하는 것은 엄마의 가슴에서 젖을 빠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아기는 엄마를 친근하게 느끼게 되고 아기에게 제대로 젖을 먹이기 위해 엄마는 아기에 대한 사랑을 느껴야 합니다. 만약 엄마가 화를 내거나 원망하고 있으면 엄마의 젖은 잘 흐르지 않을 것입니다.

출생부터 최소 서너 살까지는 두뇌 발달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이루어지는 애정어린 육체적 접촉은 아기의 정상적인 성장에 가장 중요하고도 유일한 요소입니다. 들어주고, 끌어안고, 포옹하고, 사랑해주지 않으면 아이의 성장은 훼손되고 두뇌는 제대로 발달하지 않게 됩니다.

아이는 타인이 돌봐주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성장과 생존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자양분이 됩니다. 어린 시절의 행복, 아이의 많은 두려움을 가라앉히는 것, 자신감의 정상적인 발달 등 그 모든 것은 곧바로 사랑에 의존합니다.

요즈음 많은 수의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은 가정에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적절한 애정을 받지 못하면 훗날 그들이 자신의 부모를 사랑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을 것이고 타인을 사랑하기가 힘든 경우 또한 드물지 않게 됩니다. 매우 슬픈 일입니다.

아이들이 더 성장해서 학교에 들어가면 선생님들이 그들을 돌보게 됩니다. 선생님은 학과 공부를 가르칠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해 준비하게 하는 책임까지 떠맡게 된다면 학생들은 선생님에 대해 신뢰와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러한 상호작용을 거쳐 배운 것은 학생들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기게 됩니다. 반면에 학생들의 전반적인 행복에 대해 진실한 관심을 갖지 않는 선생님이 가르친 주제들은 임시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오랫동안 남아 있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아파서 병원에서 따뜻한 인간적 감정을 나타내는 의사에 의해 치료를 받는다면 환자는 안심하게 되고 의술의 수준에 관계없이 가능한 최상의 치료를 해주고자 하는 의사의 열망 그 자체가 치료 효과를 갖게 됩니다. 반대로 의사가 인간적 감정이 부족하고, 비우호적인 표현을 하고, 성급하고 또한 무심코 무시할 때, 비록 그 의사가 최상의 의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병을 정확히 진단하고 적절한 처방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환자는 불안해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가피하게 환자의 감정은 치료의 질과 완전성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일상생활에서의 통상적인 대화에 있어서 조차도 누군가가 인간적인 감정을 담아서 말을 한다면 우리는 듣는 것을 즐기게 되고 또 상황에 따라서 호응을 하게 됩니다. 주제가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대화 전체가 흥미로워집니다. 반대로 차갑고 날카롭게 말을 한다면 우리는 불안해지고 그런 상호관계를 빨리 끝내고 싶어 하게 됩니다. 가장 하찮은 일에서부터 가장 중요한 일에 이르기까지 타인에 대한 애정과 존경은 우리의 행복에 필수적입니다.

저는 최근 미국에서 과학자들을 만났습니다. 과학자들은 “미국의 정신질환 비율이 매우 높아 인구의 약 12%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울증의 주된 원인은 물질적인 필수품의 부족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애정의 결핍이라는 것이 그들과의 대화중에 확인됐습니다.

그 동안 제가 쓴 모든 책들을 통해 여러분이 볼 수 있었겠지만 저에게 이 한 가지는 명확합니다. 우리가 의식을 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우리가 태어나는 그 날부터 인간적인 애정의 필요성은 바로 우리의 피 속에서부터 내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애정이 동물로부터 또는 누군가로부터 올지라도 아이들과 어른 모두 그곳으로 자연스럽게 마음이 끌려갈 것입니다. 저는 그 누구도 사랑의 필요성에서 자유롭게 태어난 사람은 없다고 믿습니다. 비록 현대의 일부 학파가 시도하고 있지만 인간은 전적으로 물질적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름답고 값어치 있는 물질적 대상물이라도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도록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더 심원한 정체성과 진정한 특질은 마음의 주관적 본성에 높여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친구는 “사랑과 자비는 경이롭고 훌륭하지만 그것들이 실제로 광범위한 유효성을 갖지는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런 믿음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힘을 발휘하는 곳이 아니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분노와 증오는 인간 본성의 상당한 부분이기에 인류는 항상 그것에 의해 지배 받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인류는 현재와 같은 형태로 수십만년 동안 존재해 왔습니다. 이 기간 동안 인간의 마음이 주로 분노와 증오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면 전체적인 인구는 감소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수많은 전쟁에도 인구는 그 어느 때 보다 많습니다. 이것은 사랑과 자비가 세상을 지배해왔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출처=달라이라마오피스 홈페이지>

 번역=백영일 번역전문위원


[1284호 / 2015년 3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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