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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겪을 세월호 증후군

기자명 강용주
  • 법보시론
  • 입력 2015.03.09 15:43
  • 수정 2015.06.11 10:45
  • 댓글 1

“스스로 악을 행하면 스스로 더러워지고, 스스로 선을 행하면 스스로 깨끗해진다“ ‘법구경’

“잊지 않겠습니다.” 햇빛 찬란한 4월이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된다. 많은 시민들이 세월호 희생자들을 가슴에 담고 고통과 아픔을 함께 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일베 회원들이 세월호 희생자들을 ‘오뎅’으로 비하, 유족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진상 규명을 위해 만든 세월호 특위는 ‘세금도둑’이라는 억지에 발목 잡혀 한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트라우마의 ‘기념일 반응(Anniversary reaction)’이란 게 있다. 미국의 9·11이나 제주의 4·3처럼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사람들은 그 일이 일어난 시기가 되면 심리적으로 힘들어한다. 고(故) 김근태 선생 같은 고문 피해자는 자신이 고문당한 시기가 다가오면 몸이 아프고 화가 나고 불안해진다. 이 것이 심해지면 광주 시민과 5· 18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이 겪는 ‘5월 증후군(May Syndrome)이 된다. 5월만 되면 5·18 피해자와 가족, 광주시민, 그리고 이에 공감하는 타 지역 사람들도 초조감과 무력감에 시달리고 우울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5월이 가까워지면 광주트라우마센터에 오시는 분들은 벌써부터 왠지 모르게 불안하며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하신다. 예민해져서 잠을 못 주무시는 분, 전신 통증이 심해지고 거동이 불편해져서 센터에 오지 못하는 분도 생긴다. 30여년이 지났는데도 평소보다 80년 5월의 경험이 자주 떠올라 힘들어 하시는 것이다. 4월 16일이 다가올수록 세월호 유족과 생존자, 그리고 그 참사를 지켜본 국민들도 80년 5·18을 겪은 광주 시민들처럼 세월호 ‘기념일 반응’을 겪을 것이다.

희망이 없으면 트라우마는 치유할 수 없다. 이치에 맞지 않는 세상을 거부하고 더 좋은 미래에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곧 희망이다. 심리적인 우울증은 이 희망의 발목을 잡는다. 희망을 가로막는 더 근원적인 장벽은 ‘실존적 악’이다. ‘오뎅’이나 ‘세금도둑’처럼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말에서 쾌감과 권력을 느끼는 사람이 출몰하는 것도 ‘실존적 악’이다. 피해자들에 대한 정서적인 지지와 공감이 부족해서 나타나는 사회적 무관심은 더욱 심각한 ‘실존적 악’이다.

사회와 공동체가 큰 참사에 반응하는 태도는 개인이 트라우마를 극복할 것인가 아니면 거기서 헤어나지 못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여기서 공감과 연대가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은 참사를 고통스레 기억할 뿐 아니라 그 가운데서 ‘외상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을 하기도 한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트라우마를 겪으면 그 사람의 정신과 육체, 그리고 삶은 망가진다. 하지만 참사를 겪은 사람들 중 일부는 그 트라우마에서 회복될 뿐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 그 트라우마를 딛고 고통 속에서 성장한다. ‘외상후 성장’은 고통의 경험에서 일어나는 긍정적인 변화다. 트라우마 이전 상태를 회복하는 수준을 뛰어넘는, 마음의 질적인 성장이다. 이러한 성장을 겪은 사람들은 말한다.

“트라우마를 통해 깨어났다. 사고 전에는 잠자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누군지, 무엇을 원하는지, 내게 무엇이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참사를 낳은 이기심, 무책임, 물신숭배를 너머 공동체가 더불어 살아가는 ‘안전사회’를 이루는 게 바로 우리 사회의 ‘외상 후 성장’일 테다. 세월호 참사 1주기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우리 사회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 듯하다. 광주 시민이 35년 동안 ‘5월 증후군’을 앓아 온 것처럼 해마다 4월이면 ‘세월호 증후군’을 겪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우리 사회의 변화와 발전의 계기로 삼아 ‘외상후 성장’의 기회로 만들 것인가? 선택은 우리 시민의 몫이다.

강용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 hurights62@hanmail.net


[1285호 / 2015년 3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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