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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욕·자기중심 환상에 사로잡힌[br]오늘날 한국교회와 불교 비춘 거울

기자명 이병두

‘마지널리티-다문화시대의 신학’ / 이정용 지음 / 신재식 옮김 / 포이에마

▲ ‘마지널리티-다문화시대의 신학’
옮긴이 신재식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은 오늘의 한국 교회를 비추어보는 중요한 거울이다.” 그런데 이 책은 한국 불교계, 아니 한국 인문학계를 비추어보는 거울이 될 수도 있다.

이정용은 말한다. “우리 삶의 경험을 다루지 않는 신학은 어떤 신학이라도 살아 있는 신학이 될 수 없다. 신학은 삶을 신앙적으로 성찰하는 것이기에 이론과 실천이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신학도 삶과 분리될 수 없다.” 그런데 이 말이 이정용의 신학에만 해당될까? 불교학·철학, 아니 그를 넘어서 세상의 모든 학문이 삶과 분리될 수 없는 것 아닌가.

“예수는 주변인으로 태어났다. 미혼모의 아이로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태어났고, 구유에서 보살핌 받았으며, 유대 지도층이 아닌 동방 현자들의 방문을 받았고, 이집트로 피난 갔다.” “집 없는 무리와 함께 살았던 집 없는 사람이었다. 중심 집단 사람을 외면한 적은 없었지만 주로 주변부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뿐 아니라 “예수가 제자라고 부른 사람들도 주변부 사람들이었다. 종교·정치면에서 주류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수님은 본래 이런 모습이었는데, 왜 어떻게 해서 ‘모든 사람들의 저 높은 곳에 계신 거룩한 분’이 되었을까.

이정용은 이렇게 된 데에 ‘예수를 중심성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그래서 “예수를 중심 중의 중심으로 여기며, 그를 따름으로써 세상을 지배하는 중심 권력의 일부가 되기”를 바랐던 베드로의 오해에 큰 책임이 있다고 본다. 베드로의 오해를 좇다보니 “그리스도를 강력하게 한 것이 사실 그의 약함이었고, 그를 주(主)의 주로 만든 것이 겸손”이었음을 잊었던 것이다.

‘예수야말로 주변인 중의 주변인’이라고 하는 저자의 말을 듣다보니, 예수뿐 아니라 붓다·공자·소크라테스, 그리고 최근의 달라이라마와 틱낫한도 결코 중심에 들어간 적 없는 주변부 사람이 확실했던 것 같다. 이처럼 인류역사에서 성인(聖人)이라고 대접받게 된 이들의 경우, 본인이 원하지는 않았지만 중심을 떠나 주변화(周邊化)되면서 오히려 더 세상 사람들에게 가까워진 경우이다.

저자는 예수-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주변부 사람이 되어야 하고, “주변부에 있지 않는 한 제자가 될 수 없는데, 오늘날 교회는 주변성보다 중심성을 추구”하고 있으며, 그래서 진짜 교회는 사라지고 ‘가짜-교회’가 판을 친다고 걱정한다. 이 어려운 상황을 넘어서 “새로운 교회가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는 “가짜-그리스도교가 죽어야만 그 유해에서 진짜 그리스도교가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하는데, 이 말이 그리스도교에만 해당될까. 혹 ‘가짜-불교’와 ‘가짜-유교’가 죽어야 진짜 불교와 유교가 다시 일어설 수 있지 않을까.

“예수는 결코 자신을 따르는 무리의 숫자에 주의를 기울인 적이 없다. 나아가 돈에 탐욕을 가진 사람을 비난했다.” 그런데 “왜 교회는 돈을 사랑하는가? 이는 교회가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대신, 구원의 도구로서 부를 가치 있게 여기는 중심부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거듭 말한다. “예수는 황금 관을 쓰지 않았고, 화려한 예복도 입지 않았으며, 아름답게 고안된 지팡이를 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신구(新舊)교를 망라한 그리스도교와 불교, 세상의 거의 모든 종교가 자기네 교조(敎祖)는 꿈조차 꾸지 않았던 번쩍거리는 ‘명예욕’과 ‘중심’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으니 이를 어쩔까.

그러나 “고통당하는 사랑의 궁극적인 승리는 중심부 사람을 주변부 사람으로, 주변부 사람을 새로운 주변부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이를 보여주는 가장 모범적인 사례가 바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이고, 고국(중심)에서 쫓겨나 주변을 돌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큰 세상의 중심 역할을 하는 달라이라마와 틱낫한이리라.

이병두 문화체육관광부 종무관


[1285호 / 2015년 3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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