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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 폐지와 국민감정

사형제 폐지 특별법안 발의가 국회에서 추진되고 있다. 불살생 종교인 불교계가 사형제 폐지에 찬성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동물의 생명까지도 존중해야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이런 이유로 불교계는 2006년부터 사형제 폐지에 나서고 있다.

140개국 사실상 사형제 폐지국
한국, 18년간 사형 집행 안 해

살인은 국가나 개인 모두 범죄
범죄는 개인 아닌 국가의 책임

그러나 사형제 폐지로 가는 길은 멀다. 무차별 폭행으로 숨진 윤일병 사건을 비롯해 계모에 의한 아동살해 사건과 같은 용인하기 힘든 흉악범죄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사형제 폐지에 대한 국민의 여론은 부정적이다. 지난 2009년 법무부가 실시한 사형제 폐지 관련 설문조사에서 국민의 64.1%가 사형제 존속에 찬성했다. 사형제 폐지를 바라는 국민은 13.2%에 불과했다. 이런 국민의 법 감정과 달리 우리나라는 사실상의 사형제폐지국이다. 1997년 김대중 정부 이후로 18년째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사형제가 없는 곳이 98개국이다. 사형제가 있기는 하지만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우리나라와 같은 곳도 42개국에 이른다. 이제 사형제 폐지는 세계적인 추세인 셈이다.

사형제 존속을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복수심이다. 당사자를 죽여서라도 억울함을 풀어야겠다는 고전적인 응보(應報)욕구의 연장이다. 특히 당신의 부모나 가족이 그렇게 당했어도 사형제 폐지를 주장할 수 있겠느냐는 주장은 사형제 폐지 논쟁을 무력화시키는 강력한 논리다. 그럼에도 서구에서는 사형제 폐지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사형을 허용하는 나라의 가입자체가 불가능하다. 살인을 살인으로 되갚는 일은 정부라 하더라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범죄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서구의 이런 시각을 잘 보여준 것이 노르웨이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이다. 2011년 7월22일, 노르웨이에서는 기독교 극우주의자 브레이비크의 무차별 총기난사 사건으로 민간인 77명이 살해됐다. 피해자의 대부분이 청소년캠프에 참가했던 어린 학생들이어서 더욱 충격이 컸다. 범인은 곧 재판에 넘겨졌고 최고형인 21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런 그가 2013년 오슬로 대학 수강을 신청해 논란이 일었다. 논란 끝에 오슬로 대학은 그의 수강을 허락했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자 오슬로대학 오테르센 총장은 말했다. “브레이비크는 자신이 저지른 잔악함으로 우리의 민주주의와 법 제도를 시험했다. 그러나 우리의 사법부와 국민은 놀라운 침착함과 이성으로 우리가 그 시험을 무사히 통과했음을 보여줬다.” 오테르센 총장은 분노와 복수가 아닌 관용과 포용이 바로 민주주의 정신임을 세계에 일깨운 것이다.
 
노르웨이를 비롯한 상당수 유럽연합 국가에서는 범죄를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범죄가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 국가의 책임을 함께 묻는다. 그래서 서구의 사법제도는 징벌적인 보복보다는 교화를 통해 사회일원으로 복귀시키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범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개인의 책임과 복수심에 치우쳐 있다. 피해자에 대한 국가적인 위로와 관심, 지원 등은 뒤로 한 채 그저 국가가 대신 복수를 해줬으니 된 것 아니냐는 의식이 팽배하다. 그 과정에서 범죄자를 양산시킨 국가는 면죄부를 받게 된다. 이는 살인을 중대한 범죄로 보면서 국가가 정작 살인을 저지르는, 사실상 법리적 모순이다. 무엇보다 수사와 재판 또한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오판 가능성이 있다. 사형은 이미 집행됐는데 뒤늦게 범인이 잡히는 억울한 일들이 지금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 김형규 부장
사람을 죽인다고 해서 분노와 슬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은 원한으로 원한을 대신할 수는 없다고 가르쳤다. 아마도 살인자에 대한 가장 큰 처벌은 잘못을 뉘우치고 참회하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너의 부모나 자식이 억울하게 죽었어도 사형제 폐지를 주장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욱 더 그런 질문이 나오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몫이 돼야 한다. 

김형규 kimh@beopbo.com
 

[1287호 / 2015년 3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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