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노릇 잘하는 법
중노릇 잘하는 법
  • 문광 스님
  • 승인 2015.03.30 12: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선 중기 조광조의 스승이었던 한훤당 김굉필 선생은 20대 10년 동안 ‘소학(小學)’ 1권만을 집중적으로 공부하여 별명이 ‘소학동자’였다고 한다. 8세의 어린이들이 공부를 시작하면서 배우는 내용을 이처럼 지독하게 공부하였다는 것은 기본에 충실하고 근본을 바로 잡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몸소 실천해 보여주었던 좋은 예가 된다 하겠다. 탄허 스님은 사미과 초학자들이 배우는 ‘치문(緇門)’을 번역하고 나서 쓴 서문에서 이 일화를 소개하면서 초심자 때의 발심을 영원히 잊지 말라고 간절히 당부하고 있다.

최근 탄허 스님의 법문과 강연 자료를 수집하면서 한 번도 문자화되지 않았던 새로운 법문내용을 발굴한 것이 있다. 스님은 강의에서 “스님네는 절대 속인을 욕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하셨다. 그 이유는 스님들의 본 고향이 바로 세속이기 때문에 근본자리를 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누구나 속인이었다가 출가한 것이므로 스님들은 늘 재가자들을 따뜻한 자비로써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재가자들은 늘 스님들에 대해서 큰 기대를 갖고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에 항상 자신의 수행을 잘 돌아보아서 한 치의 방일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만공선사는 ‘승니(僧尼)란 무엇인가’라는 법문에서 ‘이 우주 전체가 곧 나인 것을 깨달아 체달된 인간을 중이라 하느니라. 중으로서 속인의 부귀를 부러워하거나 외로워하거나 설움과 한이 남았다면 여기서 더 부끄러운 일이 없느니라. 공부는 하지 않으면서 중의 명목으로 시물(施物)을 얻어 쓰는 것은 사기취재(詐欺取材)니라’라고 무섭게 일갈하셨다. 예전 스님들의 추상과도 같은 출가정신과 수행에 대한 준엄하고도 매서운 결의가 돋보이는 일구(一句)가 아닌가 한다. 아울러 출가인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중노릇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한다.

행자시절 시봉했던 조계종 제10대 종정 혜암 스님께서는 “중이 없으면 지옥이 비고 소가 없다”고 입버릇처럼 법문하셨다. 출가하여 수행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시주의 은혜를 갚지 못해서 다음 생에 소가 되어 평생 일을 하거나 지옥고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 이 법문을 들었을 땐 다소 강력한 표현법 때문에 적잖이 놀랐었는데 그 때 받은 충격여파로 이 말씀은 지금껏 내 개인적인 좌우명이자 중노릇 하는 법을 떠올릴 때 나도 모르게 회상하는 구절이 되었다. 제8대 종정이셨던 서암 스님께 시자가 주지하는 법을 여쭤봤더니 돌아오는 답은 “덤덤하게 하라”였고, 중노릇 잘하는 법을 여쭤봤더니 “노인네처럼 하면 된다”고 하셨다 한다. 너무 과도한 열정으로 열심히 하고 잘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집착과 병폐가 생기게 됨을 경계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흥미로운 것은 큰스님의 대답에서 힘이 빠져 있음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힘이 빠져 있는 생력처(省力處)가 곧 득력처(得力處)라는 선가(禪家)의 경구가 그대로 느껴져서 혼자 조용히 차 한 잔 마실 때면 이 말씀을 떠올리곤 한다.

경허선사께서 ‘중노릇 하는 법’이란 법문에서 설하신 것처럼 “중노릇하는 일이 어찌 적은 일이겠는가. 잘 먹고 잘 입기 위해서 중노릇 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되어 나고 죽는 것을 면하고자 하는 것이니 부처되려면 내 마음을 찾아보아야 하는 것”이다. 스님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을 이 법문이지만 하루에도 천번 만번 되새기면서 수행정진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 만공선사 말씀처럼 불교의 흥망이 곧 인류의 행복과 불행을 좌우한다. 한국불교의 흥망은 일차적으로 우리 스님들의 수행여하에 그 성패가 달려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예이론가 게오르그 루카치의 ‘체험된 사유 말해진 기억’이란 책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구절이 있다. ‘히말라야 산맥의 정상에 뛰노는 토끼가 조심해야 하는 것은 자기가 평지에 사는 코끼리보다 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혹시 내가 부처님과 불교라는 거대한 히말라야 산맥만 믿고 철없이 뛰노는 토끼는 아닌지 가끔 섬뜩하여 소름이 끼쳐온다.

문광 스님 탄허기념박물관 연구실장 naksanbosal@daum.net

[1288호 / 2015년 4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