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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율 재정립이 필요한 시대

“술 마시지 말라”는 계가 확고히 서지 못함으로써 계 전체의 권위가 떨어진다. 지금 여기의 삶에서 이 계를 지키기는 너무도 어렵다는 것을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너무 잘 알기에, 계를 받고도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없다. 하나의 계가 흐리멍텅해지면 나머지 계도 마찬가지가 되고, “술 마시되 취하지 말라” “술 팔지 말라” 등등 어떤 변화를 꾀해 보려는 것도 권위가 수반되지 않아 결국 계율 전체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만다.

계율의 권위가 서지 않는다는 것은 종교가 현실적인 삶을 건강하게 이끌어가는 원리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 된다. 이미 이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한 바 있지만, 지금 우리 불교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삶을 이끌어가는 건강한 원리로 계를 재정립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한 이 때, ‘간통죄’에 대한 위헌 판결이 내려졌다.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는 계에 대하여 현실적인 법은 면죄부를 준 셈이다. 그것은 개개인들의 책임에 관한 영역이요, 그에 대한 부부 간의 문제도 서로 합의해서 해결할 일이지 법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고 판결한 것이다. 그러하기에 현실적인 법과 불교의 계 사이에 확실한 차이가 나게 되었다. 그래서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좀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한 때가 된 것이다.

물론 종교적 계율과 현실의 법과는 엄연히 큰 차이가 있다. 또 법에서 간통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하여 그것이 범해도 괜찮은 것이라는 판단이 타당한 것도 아니고, 그것을 권장할 이유는 더더구나 없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더라도 불교에서는 엄하게 금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쪽이든 깊은 성찰을 통한 원칙적 인도나 안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불교계에서 이러한 성찰이 이루어지고 있는가는 매우 의심스럽다.

이러한 ‘삿된 음행’의 문제 이전에 ‘성(性)’문제에 대한 불교의 성찰 자체가 빈약하여, 그 문제에 대하여 불자들을 적절히 인도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거기에 간통죄 위헌 판결 이후에는 그러한 불교와 현실의 규범 사이에 괴리가 더더욱 심해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우선 성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출가자들에 있어서 성 문제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이고, 계율 제정의 출발점에 바로 음행이 놓여 있다.

성적인 행위를 부정적인 ‘음행’이라는 용어로 부르고, 그것을 금하는 계율의 표현은 정말 그 이상 강렬할 수 없을 정도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재가자들의 성 문제에 대한 관점에까지 이어진 것이 불교의 성문제에 대한 시각이 아닐까 싶다. 그런 시각에 서면 재가자들은 나쁘다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음행의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즉 할 수 없이 죄업을 짓는 열악한 중생이라는 결론에 달하고 만다. 이는 참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시각이다. 부부간의, 연인간의 사랑 표현으로 나타나는 성적인 접촉이나 표현도 죄업의 약화된 버전에 불과하다는 말인데, 이는 재가불자들을 영원히 불교의 이등시민으로 격하시키며 우리 현실의 삶 전체를 죄업으로 보는 소극적이고 바람직하지 못한 종교의 양상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출가자의 규범을 불교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출가자라는 기(機)에 대(對)하여 설한 대기설(對機說)이다. 그것을 무시하고 그 자체를 불교의 본질적인 가르침으로 보면 안 된다.

이제 새로운 시각에서 성의 문제를 조명할 필요가 있다. 현대의 삶에서 잘못된 성이 괴로움을 초래하는 양상을 밝게 드러내고, 또 성의 에너지가 행복으로 이끄는 힘이 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불교의 시각이 제시되어야 할 때다. 그러한 문제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이며, 또 근본에 놓여 있는 간통죄의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가 되어 있을 때, 불교가 앞장서 가장 이상적인 성의 모습을 모색하는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성의 문제라면 무언가 주눅든 모습을 보이며 뒷전에 물러나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출가자에게 요구된 규범에 얽매어 우리의 삶 전체를 이끌어가는 힘에 대해 언제나 부정적인 태도만을 취하는 구태의연함을 이제 벗어던져야 한다.

성태용 건국대 철학과 교수 tysung@hanmail.net

[1288호 / 2015년 4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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