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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자명 강용주
  • 법보시론
  • 입력 2015.04.06 12:29
  • 수정 2015.06.11 10:44
  • 댓글 1

세월호 참사 1년이 다 돼 가는데 실종자 아홉 사람은 여전히 바다 속에 있다. 세월호 선체 인양은 진상규명을 위해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실종자 아홉 사람이다. 두고 온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도, 떠나간 가족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도 원초적인 본능이다. 이 본능이 좌절될 때, 상처입은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를 발굴하는 미군들의 부대 휘장엔 “그들이 집으로 돌아 올 때까지”라고 써있다. 그들은 최후의 한 구까지 최선을 다해서 찾겠다고 다짐한다. 전사한 군인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게 국가의 마땅한 의무여서일 테다. 하지만, 죽은 자들을 야산에 버려두지 않고 십년이고 이십년이고 샅샅이 뒤져서 거두는 것은 ‘죽은 자에 대한 의무’, 인간다움의 가장 기본적인 예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데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신이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매장해야 영혼이 하데스의 문을 통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땅에 묻히지 못한 영혼은 하데스의 집 근처를 정처 없이 떠돌기 때문에 영면도 안식도 불가능하다. 죽은 자가 들판에 버려져 개와 새의 먹이가 된다면 신의 뜻을 거스르는 고통이자 저주일 뿐이다.

그리스 신화는 죽어서도 땅에 묻히지 못한 사람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먼저, ‘일리아드’의 아킬레우스 이야기. 그는 친형제 같은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의 손에 죽자 자기가 직접 원수를 갚아야 한다며 전장에 나가, 마침내 헥토르를 죽인다. 분노가 풀리지 않은 아킬레우스는 “네 어미는 너를 위해 울지도 못할 것이다. 개와 새가 다 뜯어먹었을 테니까”라며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에 매단 채 끌고 다닌다. 헥토르의 아버지이자 트로이의 성주 프리아모스가 아킬레우스를 찾아와 무릎 꿇고 “시신을 돌려달라”고 애원한다. “신을 두려워하라, 그대 아버지를 생각하여 나를 동정하라”는 프리아모스의 호소에 아킬레우스는 눈물을 흘린다. 그는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주고, 차분히 장례를 치룰 수 있도록 12일 동안 휴전을 선언한다. 마음만 먹으면 트로이 성주의 목을 베어 승리를 취할 수 있었지만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의 소원을 들어주고 장례까지 배려해 준 것이다. 아킬레우스는 단순히 강하기 때문에 영웅이 된 게 아니라, 아들의 시신을 수습하고자 하는 아버지의 아픔을 이해했기에 진정한 영웅이 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안티고네’다. 오이디푸스 두 아들은 테베의 왕이 되려고 싸우다가 서로 찔러서 죽고, 결국 외삼촌 크레온이 왕이 된다. 크레온은 외국 군대를 이끌고 테베를 공격한 폴리네이케스를 반역자로 낙인찍어 “새와 개들에게 몸뚱이가 먹히고 망가진 채 구경거리가 되도록” 그의 장례를 금한다. 이를 어기는 사람은 사형에 처한다고 선포한다. 안티고네는 ‘신의 법’인 양심이 ‘실정법’인 크레온 왕의 명령보다 우위에 있다고 믿었다. 그녀는 크레온 왕의 명령을 어기고 오빠인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몰래 묻어주려 했다. 분노한 크레온 왕은 안티고네에게 사형을 선고, 석굴에 가둔다.

크레온 왕 앞에는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을까? 아들 하이몬은 사랑하는 여인 안티고네가 목매어 자살한 것을 보고 아버지를 죽이려다 여의치 않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아내 에우리디케도 이 소식에 절망하여 자살한다. 혼자 남은 왕은 절규한다. “비참한 내 신세! 파멸과 혼연일체가 되다니!”

세월호 참사 1년,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심각한 무능을 드러냈다. 295명이 죽었고 아홉 사람은 아직도 바닷속 뻘에 남아 있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 영혼이 바다 속을 떠도는 게 아니라 하데스의 문을 지나 안식할 때 비로소 남겨진 자들은 마음껏 슬퍼할 수 있다. 국가가 왜 존재하는지, 그 이유를 말할 수 있으려면 시신이 훼손되기 전에 실종자 아홉 사람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줘야 한다. 기술적으로 어렵다거나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인양을 회피하는 것은 국가가 존재 이유를 포기하는 일이다. 아킬레우스의 길을 택할 것인가, 크레온의 길을 택할 것인가. 선택의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세월호 1년, 아직 아홉사람이 남아 있다.

강용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 hurights62@hanmail.net

[1289호 / 2015년 4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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