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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론

필자는 기라성 같은 프로야구 스타들을 배출한 지방고 출신이다. 대학에 있을 때 학생들과 조크를 즐겼었다. 코리안 시리즈가 한창 달아오를 때면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선동열이가 어느 고 출신인가?” “K고입니다” “이종범은?” “K고이죠”. “그럼 나는 어느 고 출신인가?” 학생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또 전공이 지구물리학이라 가끔 북아메리카대륙을 흑판에 그릴 때가 있었다. 미국 중동부에 한 지점에 작은 원을 그리고 그 밑에 피츠버그라고 쓴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질문한다. “내가 유학한 곳은 어디인가?” 학생들이 웃어댔다.

고등학교 후배인 강정호가 미국 명문 야구구단 피츠버그 파이러츠(Pirates)에 입단했다. 40여 년 전에 내가 공부했던 도시에서 그가 성공하기를 바란다. 필자가 피츠버그대학에서 공부하던 1971년에 파이러츠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했다. 그때 온 도시가 광란의 물결에 휩쓸렸다. 멋모르고 휴지조각들이 나부끼는 축제의 거리에 나섰다가 고층건물에서 시민들이 버킷으로 쏟아 붇는 물세례를 받았다.

우리나라의 야구선수들에게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은 꿈이다. 최초의 메이저리거는 1994년 LA다저스에 진출한 박찬호이다. 그 뒤를  이어 김병현, 서재응, 최희섭, 추신수, 류현진 등이 그 꿈을 달성했고 이제 강병호가 추가되었다. LA다저스의 에이스였던 코리언특급 박찬호의 승전보는 1990년대 후반의 암울했던 IMF 금융위기 시기에 우리 국민들에게 필요했던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박찬호의 기록은 찬란하다. 메이저리그 통산 476경기, 1993투구, 124승98패로 그가 세운 아시아출신 투수로서 메이저리그 최다승, 최다투구 기록은 아직도 깨어지지 않고 있다. 그가 지난 2월24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남가주(USC)대학 한국학연구소 초청으로 특강을 했다. 그 강연에서 박찬호는 성공에 대한 그의 소견을 피력했다. 기자가 124승이 대단한 성공이 아니냐고 묻자 그는 그날 밤 호텔방에서 펑펑 울었다고 했다. 기뻐서가 아니라 허망해서 몇 시간 소리 내어 울었다고 했다. 노모 히데오의 기록(123승)을 깨보려고 마이너리그 강등도 이를 악물고 견뎌냈지만 아무것도 아니었더라는 것이었다. 124승을 세우니까 아무리 몸부림쳐도 자신을 밟고 125승을 세울 후배가 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음을 느꼈다고 했다. 그때 누구보다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을 성공이라 부르는 것이 부질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박찬호는 성공이란 “매 순간 목표를 향하여 성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다. 보통 성공은 어떤 목표를 세우고 공을 들여 일정 기간에 이루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박찬호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세우고 매순간 전진하여 성장하는 다이나믹한 과정을 성공이라고 했다.

세상에는 목표를 세우고 노력해도 바라는 기간에 이루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다. 이 경우 세속적인 관점에서는 성공이 아니나 박찬호의 관점에는 성공이 된다. 불교는 우리가 지은 업은 상응하는 과보가 나올 때까지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그 시기는 현세가 아니면 내세가 된다고 가르친다. 목표를 향하여 꾸준히 전진한다면 내세에라도 반드시 성취하게 된다. 그런 맥락에서 박찬호의 성공관은 불교적이다.

불교는 인생의 문제를 영겁의 시간에서 조망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 우리가 단지 삼세인과와 업불멸의 진리만 인식한다 해도 조급하게 부정한 방법으로 성공을 서둘러 현세 또는 내세의 큰 화를 자초하는 어리석음은 사라지고 세상은 더 아름다워 지리라.

그러나 박찬호의 성공관에는 우리가 매 순간 지향해야할 목표가 제시되지 않았다. 과연 그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가? 이 화두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에서 인간의 품위가 갈리게 된다.

이기화 서울대 명예교수 kleepl@naver.com

[1289호 / 2015년 4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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