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 티끌서 자신 업그레이드 해 부처 되고자 뜻 세운 사람이 보살
번뇌 티끌서 자신 업그레이드 해 부처 되고자 뜻 세운 사람이 보살
  • 박상준 원장
  • 승인 2015.04.06 17: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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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홍서원 이야기
사홍서원은 ‘중생이 가이 없지만 모두 제도하고자 서원을 세웁니다(衆生無邊誓願度)’ ‘번뇌가 끝이 없지만 모두 끊고자 서원을 세웁니다(煩惱無盡誓願斷)’ ‘법문이 한량없지만 모두 배우고자 서원을 세웁니다(法門無量誓願學)’ ‘불도가 위없지만 모두 이루고자 서원을 세웁니다(佛道無上誓願成)’라고 원을 세우는 것이다. 이 네 가지는 우리 불제자들이 보살행을 닦는 자로서 일으키는 것이다. 그런데 보살은 별다른 사람이 아니라 마음을 크게 낸 범부(大心凡夫)이니 번뇌의 티끌 속에서 자신을 업그레이드시켜 부처가 되고자 확고한 뜻을 세운 사람이다.

중생은 부처의 생대인 짝
번뇌가 중생의 근본 뿌리
사홍서원은 불제자들이
보살행 닦으려 일으킨 것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말해본다면 “위로 부처의 과위를 구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아래로 중생을 교화해야 한다”고 하였다. 중생을 교화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번뇌를 끊고자 하는 뜻을 일으켜야 한다. 번뇌를 끊고자 한다면 반드시 법문을 널리 자세하게 배워야 한다. 그러므로 이 네 가지가 서로 함께 있는 것이다.

중생은 부처의 상대인 짝인데 번뇌가 중생의 근본뿌리이다. 법문은 번뇌를 다스리는 약이다. 중생이 가이 없는 것은 번뇌가 끝이 없기 때문이다. 번뇌가 끝이 없기 때문에 법문도 한량이 없다. 제도하기 어려운 것을 제도하고자 서원을 세우고 끊기 어려운 것을 끊고자 서원을 세우고 배우기 어려운 것을 배우고자 서원을 세우는 것이니, 이 세 가지가 능숙해지면 불도가 비록 위없이 높다 해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사홍서원이다.

마음을 크게 낸 사람은 이와 같은 큰 서원을 일으킬 수 있고 큰 서원을 갖춘 사람은 대업을 세울 수 있고 큰 공을 이룰 수 있고 큰 이름을 이룰 수 있다. 이것은 모두 대행으로 밑받침인 서원을 삼는 것이니 헛된 서원이 아니다. 이 네 가지는 밖에 있는 것에 의지해서 구하는 것이 아니니 자기 자신에게서 구하는 것일 뿐이다.

어떻게 밝힐 수 있는가. 우리 자신의 마음이 본래 부처님이어서 중생과 더불어 원래 두 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생각 때문에 ‘나’라는 것이 있게 된다. ‘나’가 한번 세워지면 나에게 적이 되는 것은 모두가 ‘남’이다. ‘남’도 또한 하나의 ‘나’이니 온갖 ‘나’의 무리가 모여서 중생이 되는 것이다. 중생이 근본뿌리로 삼는 것이 있으니 번뇌를 근본뿌리로 삼는다. 번뇌를 단단하게 붙잡으면 ‘나라는 생각[我相]’이 더더욱 딱딱하게 굳는다. 나라는 생각이 딱딱하게 굳으면 ‘남’이 없어지지 않는다.

‘나’가 없어지면 ‘남’도 없어진다. 남이 없어지면 번뇌가 텅 비게 된다. 이렇게 되어 내 마음의 번뇌가 다 없어지면 ‘나’와 ‘남’이 허공의 헛꽃과 같은 것일 뿐임을 돌이켜 관하게 된다. ‘나’가 허공의 헛꽃과 같은 것이라면 중생을 찾아보아도 허공의 헛꽃에 허공의 헛열매가 맺히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으니, 이것과 저것을 찾아보아도 끝내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른바 “번뇌가 다 없어지면 중생이 텅 비게 된다”고 하는 것이니 이렇게 되면 제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제도된다. 이것은 서로 함께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온 세상 사람들은 ‘나’가 있지 않음이 없다. ‘나’가 있는 것은 모두 번뇌 때문인데 번뇌로 힘을 써서 작용하는 것이어서 진실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번뇌는 정(情)이다. [본래 타고난 마음 그대로인 것은 성(性)이고 정(情)은 그 마음에 청황적백흑의 색깔이 덧칠 된 것이다. 역자주]

만약 번뇌를 끊으려하면서 번뇌를 일으키는 마음을 끊으려 한다면 이것은 적의 병사를 빌려다가 도둑질한 곡식을 나르려고 하는 것이니, 정(情)을 가지고 정(情)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불을 끄려 하면서 불을 불에 던지는 것과 같으니 ‘더욱 많아진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끊으려고 해도 끊을 수가 없다. 따라서 법문을 배우지 않아서는 안 된다. 법문은 정(情)에서 벗어나는 법이다.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289호 / 2015년 4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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