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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무상급식

학생들의 한 끼 식사를 놓고 세상이 시끄럽다. 홍준표 경남지사가 학교급식비 예산지원을 거부하면서 무상급식 논쟁이 정치권 싸움으로 비화되고 있다. 무상급식에 대한 논쟁이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2011년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자신의 진퇴를 걸고 서울시민에게 무상급식에 대한 찬반을 물었다. 시민들은 무상급식을 택했다. 오 시장은 하릴없이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무상급식은 전국으로 확대됐다. 특히 지난해 무상급식을 주장하던 교육감과 자치단체장들이 대거 당선되면서 무상급식은 이제 대세가 된 느낌이다. 무상급식 반대를 외쳤던 새누리당도 어린이집의 보육료 지원과 기초노령연금확대 등 오히려 복지를 화두로 정책대결을 벌이고 있다. 이런 때에 나온 홍 지사의 느닷없는 무상급식 거부는 일종의 정치적인 승부수란 분석이 많다. 무상급식에 비판적인 보수층을 결집시키고, 대권을 향한 이슈의 중심에 서기 위한 포석이라는 설명이다.

홍 지사의 급식거부 논란은
밥 통해 배움 갖지 못한 탓

불교서 공양은 자체로 수행
아이 밥그릇에 정치명운 한심

당장 무상급식이 중지된 경남지역 학부모들은 강력히 반발했다. 1인 시위에 이어 급식비 지급 거부, 홍 지사 소환운동까지 수위를 높이고 있다. 홍 지사는 이런 학부모들을 향해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곳이지 밥 먹으로 가는 곳이 아니다”라고 비수를 날렸다. 또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학부모를 향해 “종북”이라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홍 지사의 험한 입이야 이미 정평이 나 있지만 급식이 교육이 아니라는 그의 발언은 충격적이다. 국민들은 어릴 때부터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말을 귀에 따갑도록 들어왔다. 한 끼의 식사를 통해 ‘식구(食口)’라는 가족애나 공동체의 규율을 배우고 바른 식습관과 예절을 익혔다. 특히 음식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시간이었다. 사람관계라는 것이 대부분 함께 음식을 먹음으로써 이뤄진다는 점에서 한 끼의 식사는 인격체로 성장하는 중요한 배움터라는 것에 이견이 없다.

홍 지사는 학창시절 점심을 수돗물로 채우면서 지금의 성공을 일궜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가난한 시절의 배고픔과 고난이 밥은 성공해서 쟁취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가난한 사람들의 마지막 치료기관인 진주의료원을 일방적으로 폐쇄하고 학교 급식마저 무위로 돌리는 홍 지사의 행위는 아마도 밥을 통해 배워야 할 공동체의 의미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사실 밥에 관한한 불교만큼 치열한 가르침도 없다. 불교에서 식사는 교육의 의미를 넘어서 있다. 그 자체로 수행이다. 그래서 밥을 먹는 행위에 불교의 가르침이 응축돼 있다. 불교에서는 큰스님이나 이제 갓 들어온 사미까지 모두가 같은 음식을 같은 자리에서 평등하게 나누어 먹는다. 특히 음식을 먹기 전에 스님들이 함께 염송하는 공양게(供養偈)는 음식을 바라보는 불교관의 정점이다.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음식을 받습니다.”

한방울의 물에 천지의 은혜가 스며있고 한 알의 곡식에 만인의 노고가 담겨있다는 연기적인 세계에 대한 통찰이며, 그 은혜를 잊지 않고 반드시 깨달아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서원이다.

▲ 김형규 부장
초·중등 교육이 의무교육이라면 무상급식 또한 의무급식이 돼야한다. 성적 지상주의에 내몰려 가뜩이나 인성교육이 황폐해져가는 교육현장에서 무상급식은 학생들에게 평등과 공동체의 삶을 가르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막대한 예산을 거론하며 반대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 비리, 방산 비리를 생각하면 핑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 끼 식사를 통해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를 고민하는 대신 아이들의 밥그릇에 정치적 명운을 거는 이 나라의 품격이 한심스럽다. 

김형규 kimh@beopbo.com


[1290호 / 2015년 4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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