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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신아출판사 서정환 대표

“보왕삼매론서 배운 삶의 향기 실천으로 나눕니다”

▲ 서정환 대표는 “삶의 목표와 욕심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조금 더 무뎌지고, 조금 더 너그러워지고, 조금 더 기다릴 줄 안다면 날마다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 모든 이들이 살기 어렵다고들 한다. 삶이 팍팍하다고도 한다. 사람 살기 어렵다는 소리는 학계도 마찬가지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는 걸 보면 학계도 팍팍하다는 방증이다. 대학들이 취업 안 된다는 이유로 학생들이 기피하는 인문 관련 학문을 등한시하고, 학과를 폐지하거나 통폐합하고 있으니 인문학이 위기는 위기다. 다른 한편에선 ‘인문학이 도래하고 있다’고 한다. 소통과 융합의 시대, 이성보다는 감성으로 소통하는 인문학적 능력과 소양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위기가 곧 기회이기에 모두 맞는 말이다. 기실 인문학은 인간과 관련된 근원적인 문제나 사상, 일체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탐구와 인간이 만들어온 문화를 연구하는 것을 말한다. 기계적으로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끼워 맞출 순 없지만 그 어디에도 걸림 없이 잘 녹아들 수 있고, 실무적인 능력은 배울 수 없지만 인간 삶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으니 인류가 존재하는 한, 문화와 역사가 이어지는 한 인문학은 필수학문일 것이다.

아내 넉넉한 마음 닮고 싶어서
20년 전 화엄불교대학에 입학
‘보왕삼매론’ 가르침 접하고서
“참다운 불제자 되겠다” 서원
인문학·불교대중화 위해 정진
출판박물관·도서관 건립 발원

서정환(벽산·76) 신아출판사 대표는 ‘인문학 시대의 도래’를 꿈꾼다. 그는 ‘수필과 비평’, ‘소년문학’ 등 3종의 월간지와 ‘문예연구’, ‘인간과 문학’등 4종의 계간지를 비롯해 10여종의 정기간행물과 매년 100권 안팎의 인문서를 출간하고 있다. 넉넉지 못한 작가의 사정에 마음이 쓰여 실비만 받고 책을 내주기도, 공짜로 만들어주는 경우도 있으니 경영 마인드는 있는지 의문스럽다. 여기에 신곡문학상, 수필과비평문학상, 황의순문학상을 제정해 문인들의 창작의욕을 북돋우고 저변을 확대하는데 앞장서고 있으니 공익법인 대표처럼 보인다. 최근에는 신아문예대학을 열어 시, 수필, 아동문학, 사진, 시낭송 강좌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인문학 대중화를 위한 노력이기는 하나 돈벌이와는 거리가 멀다.

문사철(文史哲)로 대변되는 인문학에 대한 그의 열정은 20살 청년의 풋풋함 그대로다. 그에게 인문학은 존재의 이유이자 삶의 중심이다. 그는 인문학을 때 묻지 않은 인간 본연의 순수한 마음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이라 말한다. 부처님 가르침 또한 이와 다르지 않기에 그는 불자임을 기꺼워한다. 지금, 여기, 왜라고 자문하며 실행하는 모든 일을 부처님의 일(佛事)로 받들어 정성을 다한다.

지인들은 몇 가지 키워드로 그를 평가한다. ‘열정적인 가슴’, ‘인문학 발전’ 그리고 ‘불교 대중화’이라는 키워드는 그의 오십년을 함의한다. 이 말들은 다시 ‘자랑스러운 불자문인’으로 귀결된다. “말없이 꾸준히 행동하십니다. 불자의 삶을 말로 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하시는 분입니다.” 오종근 전북불교네트워크 공동대표의 평가다. 출판사를 운영하는 대표로서 글을 통해 불교를 쉽고 바르게 알리는 문서포교에 매진하고 있다는 게 오 대표의 설명이다. 또한 문인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불교단체를 지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택회 전북불교문학회장은 “완판본(完板本) 고장 전주의 전통을 이어가는 신심 깊은 불자”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완판본은 조선시대 완주(현 전주)지역에서 발간한 책과 그 판본을 말하는 것으로, 판소리의 한글소설화를 통해 목판인쇄 발전과 한글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이 회장은 “전주가 한글을 대중화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처럼 서 대표는 다양한 월간·계간 문학지를 통해 인문학 알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며 “전북불교문학회 작품집 ‘다르마’ 역시 서 대표가 없다면 빛을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하루는 마음속 부처님을 깨우는 108배로 시작된다. 늘 염송하는 ‘보왕삼매론’은 그대로가 삶의 지남이다. 점심식사 후 갖는 산책은 부처님을 염(念)하는 정근 시간이다. 부처님과의 인연은 생을 관통해 이어져 왔겠지만, 그가 오계를 수지한 것은 꼭 20년 전이다. 2004년 작고한 부인 황의순씨가 없었다면 그의 불심을 영글지 못했을 것이다.

 
5남매에 맏이인 그는 일찍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청년가장이었다. 단칸방에 쥐꼬리만한 월급, 그의 미래는 캄캄한 어둠이었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사랑하는 사람과 보금자리를 꾸리는 것조차 사치로 여겼다. 부인 황의순씨는 그런 그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가난한 시절이었죠. 월급쟁이로는 여섯 식구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어요. 1969년 5월 아내와 결혼식을 올리고 이듬해 인쇄소인 신아문예사를 창업했습니다. 책 읽기는 유일한 취미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갓 인쇄된 책을 다른 사람보다 먼저 읽는 게 좋았고, 잉크냄새는 꽃밭에 있는 것처럼 향기로웠습니다. 힘은 들었지만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한 겁니다.”

등사기 하나로 시작한 사업이었다. 알음알음 일거리를 구해와 밤새 작업해 놓으면, 아내는 검정고무신에 자전거를 타고 전주 일원을 돌며 일감을 실어 날랐다. 부부의 성실함은 곧 신용수표가 됐고 일감으로 돌아왔다.

“든든한 아내가 있었기에 일벌레처럼 밤낮으로 일에 매달릴 수 있었습니다. 바쁜 일상만큼 사업과 살림살이는 늘어났어요. 그렇지만 일상은 늘 고단했습니다. 일에 쫓겨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지 못했지요. 일상이 힘겨워지니 상대적으로 작은 일에도 벌컥 화를 내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저와는 정반대였습니다. 억척스러울 만큼 부지런했지만 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죠. 그리고 언제나 희망을 이야기했습니다.”

한편으론 부끄럽고 한편으론 부러웠다. 똑같은 일상, 아니 아이들 키우는 일까지 도맡고 있는 아내에겐 웃음이 있는데 자신에겐 짜증만 깃들어 있으니 아내가 위대해 보였다. 그런 아내의 마음이 궁금했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항상 자신을 낮추며 먼저 상대를 배려하는 그 마음, 그것은 부처님의 자비와 맞닿아 있었다. 부처님 공부에 열중하는 아내처럼 되고 싶어 1995년 화엄불교대학에 입학했다.

“또래의 여느 시골 출신들이 그렇듯 저 역시 불교는 집안의 종교였습니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독실한 불심을 보고 자랐지만 그렇게 끌리지가 않았어요. 어린 나이지만 삶은 스스로 노력으로 이뤄가는 것이지 누군가의 의지로 결정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와 어머니에게서 본 불교는 사실 후자에 가까웠지요. 여기에 나름 인문학과 관련한 일을 하다 불교를 조금 접하기는 했는데 잘 모르겠더라고요. 불교가 철학이라고 하는데 아는 게 별로 없는 거예요. 불교대학 입학을 결심한 또다른 이유입니다. 개강법회를 마치고 자기소개를 하는데 저는 당당하게 ‘불자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불교가 어떤 종교인지 궁금해서 왔으니 나를 불자로 만들어보라고 요청했지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상(我相)으로 가득 찬 그 말에 불자님들이 기가 찼을 겁니다.”

그의 오만함과 당당함은 이내 참회의 절로 바뀌었다. 사성제(四聖諦), 팔정도(八正道), 연기(緣起)와 인과(因果) 그리고 공(空)과 같은 부처님의 위없는 가르침을 맛보기도 전이었다. ‘보왕삼매론’ 10가지 가르침을 접하고 참 불자의 삶을 서원했다. ‘보왕삼매론’의 가르침은 그대로가 아내의 모습이었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인생의 이정표였다.

“마음에만 머물던 불교가 삶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계기였습니다. 화엄불교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동기모임을 지속하고, 지역에 큰스님 초청법회가 열리면 열일 제쳐놓고 찾아갑니다. 도반들과의 대화와 스님들의 가르침을 통해 불심을 다잡습니다. 자연스레 불교단체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스님 책이나, 불교단체 소식지, 법회 안내문 등 일감이 들어오면 혹여 오자나 탈자는 없는지 한 번 더 보게 되더라고요. 2003년부터 6년간 전북불교문학회 회장 소임도 맡았습니다. 30여명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출판사 대표를 맡고 있으니 직접 포교에 동참할 수 없어 문서포교라도 힘을 더하고 싶었습니다.”

부처님 일 한다고 해서 어찌 좋은 일만 있었겠는가.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는 ‘보왕삼매론’의 가르침처럼 엄청난 아픔도 겪었다. 그를 불법의 세계로 안내했던 평생 도반 아내가 2004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독했던 가난을, 힘겨운 어둠의 터널을 모두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이 되어준 아내의 죽음은 그를 방황하게 했다. 신체의 절반을 잃은 듯한 고통, 그는 급격히 무너졌다. 극심한 우울증과 죽을 것 같은 공황장애마저 찾아왔다.

“가족, 도반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무너졌을지 모를 일입니다.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는 가르침과 불연을 맺어준 아내 덕분에 살길이 보이더군요. 제 아내 황의순은 부처님이 보내준 관세음보살입니다. 이 고마운 인연, 지역에 회향하는 것으로 갚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꿈이 있다. 신아문예대학을 통해 다양한 소양을 갖춘 인문인을 양성하고, 완판본의 맥을 잇는 출판박물관과 도서관을 여는 것이다. 신아문예대학은 올 3월 개원했고, 출판박물관과 도서관 설립을 위한 등록신청을 마쳤으니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인문학을 통해 삶을 반조(返照)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그 속에서 저마다의 불성을 가꿀 토대를 마련한다면 후회 없는 생이라고 확신한다.

“행복이란 게 별거 아닙니다. 지금 현재의 나에게 만족하면 그것이 바로 행복입니다. 세상사 뜻대로 되는 일 있습니까? 욕심을 내고 이루지 못하니, 불만이 생기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삶의 목표와 욕심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조금 더 무뎌지고, 조금 더 너그러워지고, 조금 더 기다릴 줄 안다면 날마다 행복할 것입니다.”

그가 웃는다. 때 묻지 않은 순박한 웃음이다. 유마거사는 “바다에 들어가지 않으면 진주를 얻을 수 없다. 번뇌의 바다에 들어오지 않으면 지혜의 보배를 얻을 수 없다”고 했다. 지혜의 보배를 찾아 바다로 향하는 그의 얼굴에 유마의 미소가 피어난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1290호 / 2015년 4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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