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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슬픈 행진 그리고 기억의 승화

기자명 조승미
  • 법보시론
  • 입력 2015.04.20 13:11
  • 수정 2015.05.19 10:07
  • 댓글 0

온갖 꽃들이 지천으로 피기 시작하는 아름다운 시간, 세월호 엄마들은 소복을 입고 삭발을 했다. 그리고 아직 시신도 건지지 못한 자식의 영정사진을 품에 안고는 1박2일간 안산에서 광화문까지 눈물의 행진을 했다. 아이들이 죽은 이유를 밝힐 수 없게 하는 것과 싸우고 다시 한 번 진상규명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세상 어디에 이보다 더 슬픈 행진이 있을까. 아이를 잃은 여인이 삭발을 하고 추모의 행진을 하는 예는 일찍이 없었다.

생떼 같은 자식이 하루 아침에 바닷물 속에 침몰되어 나올 수 없게 된 이 비참하고 끔찍한 참사(慘事)를 겪은 어미들이 편히 슬퍼할 수만도 없어 죽음을 불사하는 삭발을 한 것이다. 이들이 현재 얼마나 잔인한 상황 속에 놓여있는지 보여주는 것 같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꼬박 1년을 절규하고 절망하고 또 싸우면서 지내왔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으며, 오히려 이웃들은 삶의 피로감이라는 이유로 외면해 가고, 정부와 일부 정치가들은 돈으로 이들을 모욕하면서 깊은 상처를 주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 부모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오직 한가지라 한다.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분노나, 자식의 죽음에 대한 배상이 아니라, 바로 왜 그렇게 아이들이 어이없이 죽어야만 했는지에 대한 ‘진실’이었다.

진실이 빠진 수용은 인간에게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다. 그래서 ‘이제 그만 잊으라’는 말이 그들에게 비수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아이를 잃은 여인들의 이야기는 초기불전에서도 적지 않게 등장한다. 아이들은 병으로 사고로 혹은 굶어서 죽었는데, 자식의 죽음을 받아드릴 수 없었던 여인들은 종종 정신을 잃고 오열했던 것이다.

파타차라 비구니 역시 이처럼 두 아이를 잃은 엄마였는데, 출가 후 그녀는 똑같은 슬픔에 빠진 여인의 고통을 치유해 주기도 하였다. 그 여인은 파타차라 비구니가 “가슴에 박혀 잘 보이지 않던 화살을 뽑아 주었다”고 했다. 아이 잃은 고통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또한 그 고통의 화살을 어떻게 뽑아야 하는지 알았던 것이다.

석가모니 붓다 또한 아들을 잃어 슬픔에 빠진 키사고타미를 구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즉, 사람이 죽지 않은 집에서 겨자씨를 구하라는 처방을 주어 이 여인으로 하여금 자기만의 슬픔에서 스스로 빠져 나올 수 있게 한 것이다.

이처럼 불전에서 보이는 아이 잃은 여인들에 대한 가르침에는 그 어디에도 ‘잊으라’는 충고가 없었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직접 수용하는 것만이 치유가 되었고, 이를 통한 해탈의 길이 열렸던 것이다.

세월호 엄마들의 가슴에 박힌 화살을 뽑아 줄 수 있는 것은 그리하여 오직 ‘진실’ 뿐인 것이다. 삶은 무상하고, 무아이며 고통일 뿐이라는 본질적 진리도 진실이지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를 말해주는 현실의 해명 또한 진실이다. 이 세간의 진실이 수용되어야 비로소 이를 초월하는 삶의 진리가 수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망각이야말로 우리 자신이 언제라도 그 끔찍한 상황 속에 빨려갈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그리고 미안함에 ‘기억’을 약속한다.

한편 기억은 너무 고통스럽지만 이를 더 큰 힘으로 승화시킨 작업이 조용히 이루어졌다. 바로 세월호 시민기록위원회가 지난 10개월 동안 유가족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으로 담은 것이다. 이들은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많이 귀기울여 들었던 사람들이다. 유가족들은 이들에게 마음을 열고 자신의 고통스런 기억을 토해내어 이를 사회적 기억이 되게 하였다. 기억을 공유하면서 우리는 하나로 연결되고 있다. 이제 그 기억을 마주하고 진실의 행진을 이어가야 하는 것은 우리 공동의 책임이 된 것이다.

조승미 서울불교대학원대 연구교수 namutara@gmail.com

[1291호 / 2015년 4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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