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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승주 조계산 선암사-천년불심길-송광사-무소유길(상)

꽃바다 걷고 싶은 나그네 선암사로 가라

"법당 뒤 켠 장경각 담장아래
백매 몇 송이 숨어서 웃음 짓네
그대, 隱梅라 부르노니 수줍지 마라"

▲ 선암사는 매화와 동백을 시작으로 영산홍, 금낭화를 연이어 피어낸다. 사계절 꽃이 지지 않는 도량이라 해서 ‘꽃절’이라 불린다.

선암사로 갔다. 정호승 시인의 ‘선암사’처럼 눈물이 나서가 아니다. 선암사 무우전 흙돌담길 옆 백매(白梅)를 보기 위함이다. 겨우내 내렸던 눈 그치고, 봄기운 오르는 3월이면 순백의 자태 내 보이는 저 매화를 두고 사람들은 ‘선암매(仙巖梅)’라 했다. 꽃 중에서도 유독 매화를 좋아하는 홍선웅 판화가는 고려시대부터 꽃을 피워 그 향기 지금까지 전하니 ‘고려매(高麗梅)’라 해야 한다고 초봄만 되면 지인들에게 목청을 높인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고려시대 국사였던 의천 스님이 선암사 중창할 때 삼성각 앞 와송과 함께 저 매화를 심었기 때문이다. 수령 600년의 선암매는 단연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토종 매화다. 저 아래 금둔사 납월매, 눈 내리는 한겨울에 꽃 피우니 황벽 선사의 시 ‘추위가 한 번 뼈에 사무치지 않는다면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향기를 얻으리오’가 제격이다. 초봄에 피는 선암매는 조선의 문장가 신흠의 시와 어울린다.

‘오동나무는 천년을 묵어도 변함없는 자기 곡조를 간직하고 /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바탕 변치 않고 / 버드나무는 백번을 꺾여도 새 가지 돋는다’(桐千年老恒藏曲 梅一生寒不賣香 月到千虧餘本質 柳經百別又新枝)

선암매가 꽃을 피우면 그 향기 저 산 너머 화엄사로 건너가 각황전 홍매를 깨운다는데 올해는 홍매가 먼저 피었다. 꽃망울 흐드러지게 터뜨리는 시간 맞추느라 선암사행을 무려 두 번이나 연기했다. 그래서일까? ‘1년을 기다린 선암매 이제 곧 만난다’ 생각하니 탑전을 지나면서부터 가슴이 콩닥거린다.

▲ 선암사 최고 명물 승선교를 강행원 화백이 걷고 있다. 저 멀리 보이는 누각은 신선이 내려온다는 강선루다.

그 매화 혼자 보기 아까워 한국문인화의 대가 윤산 강행원 화백과 함께 길을 나섰더랬다. 강 화백, 가던 길 멈추고 애써 왼쪽으로 틀더니 계곡 물소리 음미하며 승선교(昇仙橋)를 건넌다. 예토서 정토로 넘어가고 싶었던 것일까? 어쩌면 43년 전 못다 그린 승선교가 아릿하게 떠올랐는지 모른다. 그는 1970년대 초반, 국전에 출품할 작품을 그리려 선암사를 찾았다. 저 승선교, 100호 화폭에 담으려 했지만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미완성의 대작 ‘승선교’는 그의 화실 어딘가에 머물며 마지막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그 기다림 거의 반백년에 이르고 있으니 대작은 시절인연이 닿아야 탄생하는 듯싶다. 원력성취인들 아니 그럴까.

조선 숙종 때 호암대사는 관세음보살 친견 원력을 세우고는 100일 기도를 올렸다. 저 벼랑 끝 바위에서 정진했을까? 산자락에 들이치는 매서운 찬바람도 그의 간절함 앞에 맥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호랑이, 여우인들 그의 선기에 놀라 울음소리나 제대로 냈겠는가. 그렇게 100일을 보냈지만 끝내 관세음보살을 보지 못했다. 위법망구의 간절함 마지막으로 하늘에 알리듯 벼랑에서 몸을 던졌다. 순간 한 여인이 나타나 호암대사를 구하고 사라졌다. 원통전(圓通殿)을 지었고, 자신이 본 여인의 형상을 조각해 관음보살로 모셨다. 그리고는 이곳에 무지개다리(홍예교)를 세웠다. 일주문에 들어서자마자 무우전 돌담길로 걸음을 재촉했다.

아니, 이런! 꿈속에서 그리던 풍광이 아니다. 선암매는 벌써 그 하얀 꽃잎들을 흙돌담에 쏟아 내렸다. 만개시간 맞춘다고 두 걸음 늦춰놓으니 꽃은 저 멀리 가 버렸다. 낙담한 표정 너무 역력했는지 지나던 스님 한 분이 이른다.

“3일만 일찍 오셨어도 마지막 떨기라도 보셨을 텐데요. 올해는 일찍 필 꽃이 늦게 피고, 늦게 필 꽃이 일찍 피네요.”

아, 배가 아프다. 선암사 ‘뒷간’으로 가 앉았다. 억울함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 ‘선암사 해우소 앞 /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고 싶다. 해우소 빗살창으로 오전 햇살 몇 가닥 들어온다. 선암매 보려는 것도 욕심인가? 아니다. 추위 이겨낸 그 향기 한 줌 가슴으로 안아 보겠다는 게 어찌 욕심인가.

빗살창문 사이로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을 상징하는 작은 인공섬 삼인당(三印塘)이 쬐끔 보인다. ‘우주만물 변하지 않는 게 없다’ 했으니 선암매인들 한 나그네만 기다릴까! ‘오늘 꼭 봐야만 한다’는 건 집착이다.

▲ 처진올벚나무 꽃이 선암사를 화려하게 장엄하고 있다.

복효근 시인은 ‘선암사 매화 보러 갔다가 / 매화는 일러 피지 않고 / 뒤가 마려워 해우소’ 찾았다는데, ‘선암사 매화 보러 왔다가 / 매화는 늦어진 뒤였고 / 오장이 뒤틀려 해우소’ 찾은 격이라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난다. 뒷간서 통곡 버리고 미소 찾았으니 근심 하나 잘 비웠다. 해우소 나와 하늘 한 번 올려보고 앞을 보는데, ‘우와!’

처진올벚나무다. 한 줄기에서는 꽃을 피우고, 한 줄기에서는 꽃을 떨어뜨리고 있다. 한 떨기 꽃, 저 하늘 끝에서 내려와 땅 끝 여기 연못에 사뿐히 내려앉는 광경이란! 그 누가 저 가지 끝 아래에 연못을 파 놓았을꼬. 물 위에 꽃잎 가득하니 나무와 연못이 하나다.

저 멀리서 강 화백이 어서 오라는듯 손짓한다. “가장 멋진 선암사 매화는 저기 있네요!”

▲ 장경각 흙돌담 앞에 딱 한 그루 매화나무가 있다. 강 화백은 ‘은매(隱梅)’라 이름했다.

‘히야!’ 눈이 휘둥그레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다. 흙돌담 앞에 다소곳이 서 있는 작은 매화나무 한 그루가 매화 몇 송이 품고 있다. 강 화백은 ‘저 자체가 그림’이라 단언했다. 고백하건데 수차례 선암사를 찾았지만 저 매화는 처음 보았다. 선암매에 홀렸으니 저 작은 매화나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게다. 강 화백은 선암서의 숨은 매화라며 ‘그대 이름은 은매(隱梅)’라는 시 한수 그 자리서 짓는다.

‘선암사 담장에 피던 고매(古梅) / 보러가던 날을 비켜 / 매화는 저 혼자 먼저 다녀갔네. // 허탈한 서운함 어쩌랴만 // 법당 뒤 켠 장경각 담장아래 / 백매 몇 송이 숨어서 웃음 짓네. / 그대, 은매(隱梅)라 부르노니 수줍지마라 // 정토(淨土) 단장한 봄이 그대 웃음 속에 / 맑은 향을 장엄한 도량 서성케 했으니 / 그 연기(緣起)로 반야(般若)를 꿈꾸리.’

선암매 놓친 나그네에게 선암사는 처진올벚나무의 화려함과 은매의 고고함을 동시에 안겨 주었다. 일 년 열두 달 꽃이 핀다는 ‘꽃절 선암사’의 진면목이다. 며칠 지나면 영산홍, 금낭화, 은목서가 만개하겠지. 이제 곧 꽃강이 흐른다. 세상 사람들에게 전한다.

‘꽃 바다 걷고 싶은 나그네 선암사로 가라!’

강 화백이 화답하듯 옛 시 한 수 읊는다.

▲ 선암사서 송광사로 넘어가는 천년불심길 초입에 측백나무숲이 있다.

‘물과 산빛 그림의 근본이요 / 꽃향기 새 울음소리 시의 정감이로다.’(水色山光皆畵本 花香鳥語是詩情)
발길을 돌려 삼인당 앞 선각당 옆으로 난 ‘천년불심길’로 들어섰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측백나무가 들어찬 숲이 나그네들을 맞는다. 이 산길을 올라 저 재를 넘어가면 송광사다.

채문기 본지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도움말]

 

길라잡이
들머리는 승주 선암사 매표소. 선암사를 참배한 후 다시 선암사 찻집 ‘선각당’으로 내려와 송광사(탐방로) 방향 이정표를 확인. 측백나무 숲을 지나 산을 오르면 큰 굴목재에 이른다. 송광사 방향으로 내려가면 보리밥 집이 나오고, 여기서 송광사, 천자암길로 들어서야 한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장안마을로 들어서니 조심해야 한다.) 송광굴목재에서 천자암과 송광사로 갈린다. 송광대피소를 지나 수석정교 삼거리를 지나면 송광사다. ‘천년불심길’로 명명된 이 길은 총 6.5km. 4시간은 잡아야 한다.

이것만은 꼭!

 
대웅전과 동서 삼층석탑: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은 선암사의 중심 법당으로, 그 앞에 만세루와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앞마당에는 순천 선암사 동ㆍ서 삼층석탑(보물 제395호) 2기가 나란히 서있다. 기단의 가운데 기둥이 하나로 줄고 지붕돌 밑면 받침 수도 각 층 4단으로 줄어 신라 중기 이후인 9세기경 조성된 것으로 보여진다.

 
불조전: 팔상전, 무우전과 함께 주목받는 전각이다. 정면 3칸의 익공계 팔작양식이며 조선후기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반적인 보전상태가 좋아 건축학적으로 연구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다.

 
대각암부도: 대각국사 의천 스님이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 해서 이름 지어진 대각암에 있는 부도(보물 제1117호)다. 조각수법과 지붕돌 형태 등으로 보아 고려 전기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해우소: 앞면 6칸·옆면 4칸.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에 정(丁)자 모양의 평면을 구성하고 있다. 북쪽에서만 출입할 수 있고, 입구에 들어서면 남자와 여자가 사용하는 칸이 양옆으로 분리되는 특이한 구조다.

 

 

 

[1291호 / 2015년 4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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