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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책임과 내적 환경-하

“과거에 집착하고 미래 두려워하면 희망이 없습니다”

▲ 티베트 라싸에 있는 달라이라마의 여름궁전인 노블링카. 정갈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은 여전하지만 1959년 이후 주인을 잃었다. 티베트 민족을 향한 중국의 무차별 폭력과 살상을 막기 위해 달라이라마가 인도로 망명했기 때문이다.

“번뇌! 번뇌! 지혜의 눈에는 사라져 버리는 너는, 내 마음에서 사라져 어디로 가는가? 너는 어디에 있다가 나를 해치러 다시 오는가? 의기소침한 나에겐 정진할 힘마저 다해 버렸구나!” 
‘입보리행론 보리심 불방일품 중에서’

우리는 지금 이시각에도
시간을 소비하고 있으니
소비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가 가장 중요해

과거는 존재하지 않고
현재는 찰나에 불과하고
미래는 하늘의 구름과 같아
결코 두려워할 필요없어

일분일초를 방일한다면
일분일초에 절망 깃들어

신심과 자비심 끊임없이
사유하고 사유할때 증장
신심과 자비심 충만하면
고통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물질적으로 급속하게 발전한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여전히 가난과 굶주림의 고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가난과 굶주림으로 인한 고통은 산업화가 가속되고 경제가 발달해도 그 어디에서든 상존하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번영과 함께 우리 인간 내면의 평화와 행복도 균형을 맞추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진리를 역설적으로 증명해 주는 대목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최악의 상황으로 단정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극한의 고통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을 갖게 됩니다. 항상 스스로 수행정진하면서 세간에 대해 연민하시기 바랍니다. 신심과 자비심은 거듭 사유함으로써 더욱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힘은 그 어떤 상황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이 되곤 합니다.

우리 앞에 어떤 미래가 놓여있는지 우리 인류는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지배와 통제로부터의 자유, 민주주의, 권리로서의 자유 등 미국식 체제 때문이 아니라 주로 미국의 군사력 때문입니다. 아마도 경제력 또한 어느 정도 관련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걸프전이 발발한 직후 저는 여생을 지구의 비무장화에 헌신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공영방송인 BBC 방송을 통해 아프리카에서 약 1800만명이 기아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직접적인 기아의 원인은 가뭄이고, 또 다른 원인으로는 최근 몇해 동안의 내전을 꼽을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많은 돈이 무기 구입에 사용되었고, 식량을 생산하기 위한 농업은 방치되었습니다.

이와 관련된 모든 불운한 경험들은 궁극적으로 무기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슬프게도 군대조직과 전쟁은 인류 역사의 한 부분입니다. 오늘날 상황은 완전히 변했고, 어떤 새로운 사고방식을 찾아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위해 함께 행복하고 싶어하는 지능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지능은 결코 누군가를 파괴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닙니다. 만약 우리의 지능이 파괴를 위해 사용된다면 그것은 정말로 불행한 일입니다.

금세기 일어난 지구상 최악의 사건은 ‘러시아의 10월 혁명’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혁명을 성취하기 위해 그리고, 혁명을 유지하기 위해 너무도 많은 유혈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10월 혁명’은 너무나도 많은 희생이 따랐습니다. 본래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는 깊이 공감하지만, 이의 실현과 최종적인 전개 과정 때문에 그 결과는 너무나도 끔찍했습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러시아 혁명은 1905년 1차 러시아 혁명과 1917년 3월 혁명(구력 2월)을 포함하는 러시아의 사회변혁 혁명을 일컫습니다. 구 소련에서는 1905년부터 1907년까지 혁명을 1차 러시아 혁명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1917년 3월(구력 2월)과 11월(구력 10월)의 혁명을 소련에서는 ‘2월 혁명’ 또는 ‘2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라고 하며, 후자를 ‘대(大) 10월 사회주의 혁명’이라고 합니다.

어느 특정 기간 동안 일반적인 무기들은, 특히 핵무기는 전쟁 억제력이라고 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독일을 동서로 분할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으며 소비에트 공산제국이었던 소련도 무너졌습니다. 지금은 오로지 공산 중국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이제는 공산주의로부터의 위험이나 위협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핵무기는 제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 가공할 무기에게 작별을 고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됐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핵무기에 탐익하는 독재자와 국가가 존재합니다.

심한 병에 걸렸을 때 약이 필요하고, 어떤 종류의 ‘독’ 조차도 요구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병이 치료되고 나면 이런 유독한 약들은 집 밖으로 던져 버려야 합니다. 그것들을 계속 보관하는 것은 정말로 위험합니다. 그것으로 인해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제는 적당한 시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먼저 핵무기와 생물학 무기를 제거해야만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전쟁과 군사 조직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숙고해 보아야 합니다. 핵무기를 전적으로 금지하자는 중국 측 제안은 매우 타당하고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중국이 그 제안에 정말로 충실할 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들은 최근에 핵실험을 감행했습니다.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독일TV와의 인터뷰 중에 저에게 주어진 서면 질문 한 가지는 서구인은 죽음을 매우 두려워하고 동양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인터뷰 진행자에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 반대라고 답했습니다. 제 생각은 그러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당신네 서구인들은 전쟁을 사랑합니다. 당신들은 이 가공할 무기를 사랑합니다. 이 무기들은 살상을 합니다. 전쟁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매우 끔찍한 일입니다. 당신들은 죽음에 대해 아무런 두려움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금 이 시대 우리 티베트인들은 군인과 군대를 부정적인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죽음에 대해 더 많은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방어라는 이름으로 군사 조직을 양성한다는 개념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군사 조직은 최악의 인권침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군사 조직은 합법화 되어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지구촌의 수십억 인구 중 말썽을 일으키는 일부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라는 것도 사실입니다. 미래의 국제 사회에서도 100% 완벽한 사회 또한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대책이 절실합니다.

걸프전 위기 중에 주력은 미군이었습니다. 세계정세로 인하여 집단적 물리력 체제가 이미 나타났습니다. 미래에는 경찰력 또는 군사력은 대국이던 소국이던 가릴 것 없이 국가에 의해 균형 잡힌 물리력의 배분에 의해 창설되어야 합니다. 이런 집단 물리력은 집단 지도체제에 의해 국제적인 기준으로 통제되어야만 합니다. 그 물리력은 어떤 곳이든 동원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이런 조건들이 갖춰진다면 국가 간의 폭력적인 충돌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더 이상의 내전도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많은 비용을 절약하고, 파괴를 피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에서 공포를 주는 분위기를 어느 정도 감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인류가 함께 살아가는 ‘지구 공동체’를 보전하기 위해서 모든 예방조치를 취하더라도 인구 증가 문제로 인해 지구보전은 그야말로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현재의 인구 증가율이 유지되면 정말로 위험하고, 그 심각성은 매일매일 증가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인간 생명은 진귀한 보석처럼 매우 소중하다고, 불교 승려로서도 그러한 생각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출산을 통제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일입니다. 개개인의 측면에서 보아서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인류 전체를 고려하면, 분명 많은 인구 때문에 지구는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을 그야말로 충분히 공급해 줄 수가 없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는 한 사람 또는 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형태의 생명체를 포함한 인류 전체의 고통에 관한 문제입니다. 불교적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산아 제한에 대해 생각해보고 진지하게 이를 실천하는 것이 분명 가치 있는 일임에 분명합니다.

우리를 참 행복으로 이끌 수 있는 지혜를 증대하기 위해서는 무아의 지견인 맑은 신심과 자비심이 뒷받침 되어야만 합니다. 맑은 신심과 자비심이 있다면 고통은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존재하지 않기에 집착할 필요가 없으며 현재 역시 번개처럼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찰나’에 불과합니다. 아울러 미래 역시도 그렇습니다. 떠다니는 구름처럼 어디로 갈 것인지 확정된 바가 없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나왔고 지나가고 있고 지나야 할 시간입니다. 그 시간을 아름답고 맑게 채워나가는 것은 온전히 ‘나’의 책임입니다.

<출처=달라이라마오피스 홈페이지>
번역=백영일 번역전문위원

1292호 / 2015년 4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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