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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푸티상사의 지상법문] 9. 멋진 인생을 설계하자(2)

기자명 법보신문
  • 법공양
  • 입력 2015.04.28 09:59
  • 수정 2016.01.05 16:09
  • 댓글 0

선장이 항로 정하듯 가장의 권위 인정해야 가정 평안

 
사람이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지만 몇 가지 큰 도리는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마치 건축물의 큰 콘크리트 기둥처럼 곧게 서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건물 전체를 지탱할 수 있고 더 큰 힘을 버텨낼 수 있으며 더 많은 가족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습니다.

자식이 드리는 최고 선물은
부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

조상에 대한 그리움 표현하는
제사·차례 등 의식 통해
가족에 대한 애정 더 커져

부부간 진정한 사랑은 공경
공경 모르면 싸움 잦아지기도
부부간 평등도 중요하지만
가장의 권위는 존중받야야 

부모를 섬기고 공경하라
일생을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핵심을 알아야 합니다. 이 몇 가지 핵심을 우리가 터득하면 큰 잘못을 범하지 않고 쉽게 대업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럼 핵심은 무엇일까요? 핵심은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양심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첫째, 자신의 부모를 섬기고 공경해야 합니다. 능력이 되어 부모에게 효도를 할 때 겉치레만 번지르르하게 하지마세요. 이것은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것입니다. 부모에 대한 효도가 하나의 비교대상으로 변질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새해 선물로 아버지께 무엇을 사드렸는지 물었을 때, 어떤 사람이 “저는 아버지께 노주(老酒, 오래 묵힌 고가의 발효주) 두 병을 사드렸어요.”라고 말하면, 여러분은  “아, 그렇군요.”라며 고민에 빠지기 시작하지요. “저요? 저는 그럼 맥주 몇 병 사 드리지요 뭐.”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위선이에요. 부모에 대한 사랑은 술이나 옷, 시계 이러한 것들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아무 소용이 없어요. 여러분이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부모에게 문제가 생기면 더 많이 보살펴드리고 틈이 날 때마다 부모와 이야기하고 산책도 하면 부모님은 아주 행복해 하실 겁니다.

조상을 공경하라
노인들은 고독을 두려워합니다. 어떤 할아버지들, 그리고 부부 중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난 경우, 예를 들면 할머니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할아버지 혼자 남겨진 경우, 얼마나 외롭겠어요. 체력도 떨어지고 걷는 것도 아주 느리고, 반응도 치매 걸린 것 같이 둔하고, 돈도 벌 수 없습니다. 말투도 어눌하고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지요. 어떤 경우는 집에서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되어도 아무도 모르고 자식들도 신경 쓰지 않지요.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런 안 좋은 행태의 영향이 몇 대까지 이어질 수도 있어요. 어떻게 안 좋으냐고요? 노인이 세상을 뜨기 전 그의 마음속에는 온통 자식에 대한 원망과 한이 서려있을 겁니다. 여러분의 조상이자 길러주신 부모가 정말 여러분을 원망한다면 여러분에게 분명 좋지 않겠지요. 특히 중국 남방 사람들은 풍수를 많이 따집니다. 풍수는 양택(陽宅)과 음택(陰宅)으로 나누어집니다. 여러분이 사는 집은 양택이라고 하는데, 바로 태양의 ‘양’이지요. 광명의, 태양의, 밝은 에너지를 가진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음택은 조상의 무덤입니다. 음택, 조상의 무덤을 돌보는 것은 바로 무덤의 풍수로 후손에게 좋은 영향을 끼칩니다. 무덤 속에 묻혀 있는 조상이 만약 여러분을 원망한다면 괜찮을까요? 당연히 안 좋겠지요. 그래서 조상을 공경하고 경외심을 가져야 합니다. 청명절(淸明節)과 중원절(中元節, 음력 7월15일) 이 두 절기는 모두 조상의 망령을 기리는 날입니다. 어느 집이든 모두 이미 고인이 된 가족이 있지요. 이 때 고인에게 제사를 지내고 추모하며 지방을 태우고 제사상을 차리고 진실, 공경하는 마음으로 큰절을 합니다. 어떤 집에서는 향을 피우기도 합니다. 중원절에는 조상께 종이공예로 만든 옷을 태움으로써 겨울이 와도 춥지 않도록 했습니다. 홍콩에서는 종이 컴퓨터를 태우기도 하는데 하늘나라에서도 계속 인터넷을 하라는 의미지요, 어쨌든 그리움의 정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조상이나 가족에게 제사를 지낼 때, 되도록이면 진짜 현금을 태우지 마십시오. 종이를 태우면 됩니다. 종이에 인쇄된 금액이 크면 클수록 좋습니다. 장당 천만, 억 이상도 좋으며 어느 나라 화폐인지 표시할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정성만 담으면 됩니다. 고인은 교환해서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이것을 망령과 조상을 위로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대의 대문인(大文人), 철학자, 수도(修道)자들은 모두 ‘예(禮)’를 특별히 강조했습니다. 바로 공자가 강조한 ‘예’입니다. 윗사람을 공경해야 하고, 신령을 공경해야 하며 어리고 약한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도덕적이고 품격을 갖춘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나이를 불문하고 이 두 절기를 꼭 기억하라고 합니다. 하나는 7월 15일이고 하나는 봄날의 청명절입니다. 청명절에는 성묘와 벌초를 하고 지방을 태워 조상에게 새로운 한 해가 왔다고 알려드리며 천국에서 기뻐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두 절기 외에 여러분의 직계 가족이 돌아가신 날에도 제사를 지내야 합니다.

망령과 이미 타계한 가족에게도 그리움을 표현하는데 살아있는 가족에게는 더 많은 애정을 베풀어야 하지 않을까요? 공경하는 마음을 알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일생이 행복합니다.

1인자를 존중하라
하찮은 일로 싸우는 부부가 많은데 그 이유는 공경하는 마음을 몰라서입니다. 부부는 같은 항렬인데 누가 누구를 공경해야 할까요? 사실 진정한 사랑 또한 상대방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공경할 때 싸움을 피할 수 있습니다. 늘 싸우게 되면 부부간의 감정은 죽을 만큼 사랑하는 사이에서 죽을 만큼 원망하는 사이로 바뀌게 됩니다. 그럼 이혼은 어떻게 하게 될까요? 우선 서로 말다툼을 벌이다가 논쟁이 점점 더 커집니다. 토라지고 다시 잘못을 저지르고 결국은 헤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공경하는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윗사람을 공경할 줄 알아야 하는데 학교에서는 선생님을 공경하고 회사에서는 사장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하나의 규칙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존(尊)과 중(衆)입니다. 존은 윗사람, 우두머리를 가리키며 중은 대중, 서민을 가리킵니다. 만약 여러분이 민중이고 우두머리가 아니라면 여러분은 우두머리를 존중해야 합니다. 아프리카 대초원의 동물 다큐 ‘동물의 세계’를 볼 때 소와 양의 무리가 있었는데, 소와 양이 호랑이와 이리의 상대가 될까요? 상대가 안 되지요. 그래서 그들은 집단생활, 집단행동을 합니다. 그들이 특히 존중하는 것은 우두머리 소, 우두머리 양입니다. 그 우두머리들은 첫째, 특별히 타고난 감지능력인 영성(靈性)이 있고, 둘째 영감(靈感)이 특별히 뛰어납니다. 그들의 감지능력은 어디에 물이 있고 풀이 있으며, 어디가 안전한 지를 알아내는데, 우두머리는 그 곳으로 무리를 이끌고 무리들은 그를 쫓아 이동합니다. 그래서 그 우두머리가 존(尊)이고 무리들은 반드시 그의 말을 따라야 합니다. 말을 따르지 않으면 이리나 호랑이에게 잡아 먹혀 그들의 아침식사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국가에도 황제나, 대통령이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도 1인자, 즉 가장이 필요하며 그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가 모두 정상이라면 아이는 절대 가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세요. 가장의 나이, 경험 모두 아이에 비할 바가 안 됩니다. 대다수의 가장은 가정을 충분히 통솔할 수 있습니다. 어떤 가정에서는 가장이 무력으로 다스리려고 하는데 이도 나쁜 것은 아니고 특성입니다. 부부관계에서는 많은 남성이 여성의 보살핌을 필요로 합니다.

젊은 부부가 싸움을 하고 저를 찾았습니다.

“당신들 부부는 왜 이렇게 울고불고 합니까?”
부인이 남편을 툭 치면서 말했습니다. “당신이 먼저 말해요.”
남편이 말했습니다. “스승님…, 제발 아내가 저를 때리지 못하게 해주세요.”
“부인이 자주 때리는데, 헤어지지 그래요?”
“저는 헤어지지 않을 겁니다.”
“헤어지지 않을 거면 맞아야지요!”
“부인, 결혼도 했고 가장역할하기가 얼마나 힘든데, 시부모님도 때려본 적 없는 남편을 왜 자꾸 때립니까?”
“맞아요! 우리 부모님도 때린 적 없다고요.”
“남편을 때려서는 안 돼요. 남편을 때리는 이유가 뭐예요?”
 “남편은 담이 작아요. 혼자 방에서 잘 때, 제가 불을 끄면 놀라 소리를 지르면서 이불을 뒤집어써요. 제가 집에 없으면 제가 오기만을 기다려요. 담이 이렇게 작으니 얼마나 얄미운지 몰라요. 다 큰 어른이 어찌 이렇게 못났을까요?”
 이게 엄마가 하는 말이지 어디 부인이 하는 말입니까?
 “너무 화가 나 남편을 때렸어요. 스승님 제가 남편을 때리는 것이 일리가 있지 않습니까?”
“일리가 있네요. 그러면 좀 살살 때리세요. 머리는 때리지 말고 엉덩이를 때리세요. 안 그러면 담이 더 작아질 겁니다.”

이 같은 부부관계에서 남편은 2인자일 뿐입니다. 가정에 있는 남자 중의 하나일 뿐이고 권력은 여자에게 있지요. 그러나 대다수의 가정은 남자가 1인자이고 그는 멀리 내다볼 줄 압니다. 왜냐면 여성은 감성적이고 남성은 이성적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남성들은 좀 더 멀리 내다보고 선견지명이 있지요. 집을 살 때도 아이들이 학교에 가야 하는데 학교가 어떤가, 부인이 장을 보는데 멀지는 않은지, 치안은 괜찮은지, 부인의 전 남친이 사는 곳과 가깝지는 않은지 등을 모두 고려해 보고 난 뒤 결정을 하지요. 반면 여성들은 볕은 잘 들지만 도둑이 많으면 안 되는데 “와, 여기 괜찮네, 바깥에 햇빛이 잘 드네요. 이 집 살게요!”라고 합니다. 여성은 감성적이고 충동적으로 결정하며 남성은 이성적이라 전방위로 고려하거나 좀 더 멀리 내다봅니다. 저는 우리 수행자들이 돌아간 뒤 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투표를 해볼 수도 있겠지요. 어떤 아버지는 탁자를 치면서 말합니다. “투표는 무슨, 내가 어른인데!” 그럼 투표를 하지 말지요 뭐. 아버지의 사자왕 포스가 표출되었으니 투표하지 마세요. 잘못하다간 내년 학비를 스스로 벌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묘관찰(妙關察)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은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저울추입니다. 즉 천칭(天秤, 양팔저울)의 저울추로서 균형을 맞추지요. 여러분은 부모의 관계를 조절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상황이 아니다 싶으면 왼쪽, 오른쪽을 오가며 균형을 맞춰줄 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아주 대단합니다. 사실 외동일수록 저울추의 역할을 더욱 더 잘 합니다. 외동은 자신이 유일한 자식이므로, 이 작은 저울추는 아주 유용합니다. 그래서 부모의 감정이 좋고 나쁠 때, 아이들이 저울추를 조절하고 가정의 가장을 선출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의 엄마가 아빠에게 순종하도록 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저는 아이들이 아주 지혜롭다고 가정한다면 이 같은 효과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노력하고 지혜를 모은다면 말이지요. 그렇지 않을 경우, 가족이 함께 차를 타고 여러분이 운전을 한다고 가정할 때, 엄마가 “왼쪽으로 꺾어”라고 하고 아빠는 “오른쪽으로 꺾어”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멈춰서는 안 되는 곳에서 멈추게 되고 그러다보면 사고가 날 수 밖에 없지요. 그래서 최종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결정을 하지 못하면 가정은 이리 저리 망설이며 배회하겠지요. 사람이 갈림길에 직면했을 때 동서남북 어디로 가야 할 지 결정을 하지 못하면 우울해지기 시작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왜 우울증에 시달릴까요? 성공한 많은 사람, 예술가든 사업가든 정치가든 모두 약간씩 정신병이 있습니다. 이것은 왜냐하면 그들이 자기 마음속의 최고봉, 마음속 가장 큰 이상을 이미 실현했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과거 그가 천만 원을 벌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1억을 벌어들여 과거 예상 목표를 훨씬 초과달성했다면, 이제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요. 돈을 세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의미가 없어요. 차차 돈 세는 재미마저도 느끼지 못하고 옷 사는 것에 무감각해져서 결국은 암흑기에 도달하게 되어 병들어 버리지요. 그것도 머릿속부터 병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가정에는 생활의 목표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첫째도 둘째도 반드시 가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배를 띄우거나 운전을 할 때 선장이 키를 잡거나 운전기사가 핸들을 잡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2013년 7월 국제 청년 리더십 캠프서 (번역 : 정금주)
제공 : 한국 보리선수 약사선원

1292호 / 2015년 4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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