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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위해 필요한 건 다름 이해하는 여유

기자명 원빈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5.05.04 12:19
  • 수정 2015.10.20 18:07
  • 댓글 0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1위이고, 행복지수가 최하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안 좋은 부분에서는 최고이고, 좋은 부분에서는 꼴찌인 나라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인간관계 고통 벗어남은
인위적인 노력에서 시작
본인의 의견만 고집하는
어리석은 생각 벗어나야

부처님의 탄생설화를 보면 갓난아기의 간절한 외침이 이 세상의 성질을 명확히 규정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화택 아당안지”

인간 세상은 번뇌와 고통의 불길에 휩싸인 집과 같아 그 이름을 사바세계라고 하셨나 보다. 인간 세상은 본래 고통이 많은 사바세계인데 그 중에서 최고로 고통스러운 나라로 대한민국이 꼽히고 있으니 우리나라는 사바세계 중의 사바세계인 ‘사바사바 세계’라고 할 만하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우리는 그 고통을 체감하고 있는가? 고통에 사로잡혀 있다면 우리는 벗어날 방법이 있을까?

우리나라는 강제적 근대화의 압박에 찌부러진 20세기를 살 수밖에 없었다. 동아시아의 막내였던 일본이 근대화의 힘인 하드파워를 바탕으로 우리 민족을 유린했고, 해방 이후 전란을 겪으며 한반도 위의 모든 기반이 불바다로 변했다. 그 폐허 위에서 미국의 도움을 받으며 50여 년 간의 압축된 근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근대화를 주도한 서유럽의 경우 300여 년의 기간 동안 진행되었던 농업 사회, 산업화 사회, 정보화 사회로의 변화를 우리나라는 50여 년 만에 따라갔으니 다양한 혼란과 억눌린 문제들이 시한폭탄처럼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필연이다.

2015년을 지나고 있는 시점의 대한민국은 3가지 민족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노년 세대는 조선식 교육을 받고 농업사회를 살아갔던 첫 번째 민족이다. 중장년 세대는 조선의 부모를 모시고 미국식 교육을 받으며 산업화 사회를 살아갔던 두 번째 민족이다. 청년 세대는 철저한 미국식 교육으로 사상을 무장하고 정보화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세 번째 민족이다. 껍데기는 모두 한국인이지만 그 세계관은 철저히 다른 다민족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조선인 노년 세대, 조선 미국 반반인 중장년 세대, 미국인 청년 세대가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쉬운 일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리고 서로 간의 그릇된 해석이 관계 속 고통의 주원인으로 작용한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청년들을 그들의 부모는 이해할 수 있을까? 청년들에게는 당연한 현상이 부모들에게는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비친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으로 부모를 모시고 살지 않는 중장년 세대를 노년 세대는 정상으로 바라볼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조선인과 미국인 사이에는 절대적인 문화적 격차가 존재하기에 서로를 이해하는 것보다는 오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실이다.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사회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 서로를 오해하게 되는 세대 구조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이해를 하기 위해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할 만큼 한국 사회의 흐름은 압축된 시간에 뒤틀려 있다.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자살 충동을 느끼는 이유를 세대별로 조사한 자료를 살펴보니 가장 큰 원인으로 인간관계를 꼽는 경우가 많았다. 부모, 배우자, 자녀, 연인, 동료 등과의 갈등. 결국 모두 인간끼리의 갈등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관계의 갈등은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오해로부터 생겨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현재의 한국 사회는 세대 간 이해보다는 오해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해를 위해 인위적으로라도 노력해야 한다. 효과적으로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다른 세대의 가슴에 이름표를 붙여서 바라보자. 미국인, 조선인, 반반인이라고 이름을 붙여보자.

▲ 원빈 스님
행복명상 지도법사
서로를 만날 때 외국인을 향한 인위적 이해의 노력이 동반된다면 최소한 ‘말 안 해도 나와 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내 의견만 고집하는 어리석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사바사바 세계’에서 강렬한 고통의 흐름을 초월하고 싶다면 빈번하게 나를 찾아와 괴롭히는 인간관계 속 고통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은 오해를 버리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인위적인 노력에서 시작된다. 행복을 위해 다름을 이해할 여유가 필요한 요즘이다.

[1293호 / 2015년 5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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