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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여래는 다 알고 다 본다

기자명 서광 스님

“금강경 진리는 우주 모든 존재에 적용가능”

“수보리야, 여래는 이 모든 중생들이 한량없는 복덕을 얻는다는 사실을 다 알고 다 본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중생들은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으며, 법이라는 상도 없으며, 법이 아니라는 상도 또한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마음에 상을 취하면 곧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 된다. 만일 법상을 취하더라도 곧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 되고, 법이 아닌 상을 취하더라도 마찬가지로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법이든 비법이든 취해서는 안 된다. 여래의 가르침은 항상 뗏목과 같은 줄을 알아야 한다. 진리에도 집착하지 말아야 하거늘 하물며 진리가 아닌 것이랴.”

불설은 보편타당한 진리지만
진리에 대한 집착도 결국 ‘상’
배운 것 보시하고 회향하는 게
뗏목 집착 않고 사용하는 방법

부처님께서는 이미 2500년 전에 오늘날 우리들이 당신의 가르침을 굳게 믿고 한량없는 복덕을 얻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다 알고 다 본다고 말씀하셨다. 어째서인가? 깨달은 분이라서, 부처님이시니까 당연하게 여긴다면, 원인과 결과(因果), 원인과 조건(因緣)을 중시하는 불교교리와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진리는 보편타당해야 하며 예외가 있어서는 안 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금강경’의 진리는 2500년이 지났든,  2억5000년이 지나든, 이 우주 모든 공간의 존재들에게 그대로 적용가능하다. 누구든지 자아에 집착하는 4가지 형태의 모양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금강경’을 읽고 깊은 믿음이 생겨나고, 삶의 태도가 바뀌고, 사람과 사물을 대하는 자세가 변화하고,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는 인생을 살게 됨으로써 한량없는 복덕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금강경’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핵심어 가운데 하나가 4가지 모양(四相), 즉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다. 우리는 이 4가지 모양이 자아에 대한 집착(아집)과 현상에 대한 집착(법집)이 구체적으로 작용하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거기에 더해서 부처님의 가르침, 즉 진리에 대해서도 집착을 일으키면 곧바로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을 발생시킨다고 말씀하신다. 반대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집착하지 않기 위해서 무리하게 애를 쓰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이 4가지 방식의 집착이 작용하기 때문에 당신의 가르침을 뗏목과 같이 사용하라고 말씀하신다.

무슨 뜻인가? 부처님의 가르침에 집착하는 모양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뗏목으로 사용하는 모양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금강경’을 외우거나 독송, 사경하고 공부하는 것을 뗏목을 만드는 작업에 비유해서 생각해 보자. 내가 뗏목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아상), 그 뗏목이 나의 것이라는 생각(인상), 나의 뗏목과 다른 이들의 뗏목을 비교해서 우월감과 열등감을 일으키는 심리상태(중생상), 그 뗏목이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이라고 믿어서 항상 모든 조건에서 올바르다는 생각(수자상)이 부처님의 가르침, 뗏목에 집착하는 4가지 방식이다.

그런데 뗏목은 타고 가는 것이지 짊어지고 가는 것이 아니다. 또 실제로 몸을 실어 나르는 것이지 그냥 생각으로 행위 없이 마음으로만 상상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뗏목에 집착하지 않고 뗏목을 사용한다는 것은 예를 들면, 사경, 독송, 공부한 것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보시하고 회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고통스런 마음을 극복하고, 성장하고 변화하도록 돕는 것이고, 그 결과 삶의 여정을 보다 따뜻하고 아름답게 걸어가도록 돕는 것을 의미한다. 뗏목을 사용하고 난 후에는 짊어지고 가지 말고 버리고 가라는 의미는 정신적 보시를 할 때, 4가지 집착을 일으키지 않고 행함으로써 보시하는 자와 보시를 받는 자가 다 함께 영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계산이나 이미지, 기대,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다.

서광 스님 한국명상심리상담연구원장 seogwang1@hanmail.net

[1293호 / 2015년 5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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