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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생물에게 의도적 고통을 주는[br]인간만이 악마도 성자도 될 수 있다

기자명 이병두

‘희망의 이유’ / 제인 구달 지음 / 박순영 옮김 / 궁리

▲ '희망의 이유'
야생 침팬지의 도구사용과 잔인한 폭력성 등을 관찰하여 세상에 알려 유명해진 제인 구달. 이제 이 땅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알고 있다.

그는 평범한 영국 소녀였다. 그러나 인류학자 루이스 리키를 만나면서 그의 인생이 바뀌고, 세계 학계를 크게 흔들었다. 그러니 제인 구달과 루이스 리키의 만남은 어느 유행가 가사에서 말하듯, ‘우연이 아니라’, 숱한 전생 동안 쌓아온 인연의 결과였으리라.

루이스 리키와의 만남이 우연이 아니었듯이, 얼핏 우연처럼 보이는 ‘침팬지의 도구 사용 장면 발견’도 관찰대상 동물들에게 번호를 붙여 대상물로만 보는 다른 과학자들과 달리 침팬지 특성에 따라 사람처럼 이름을 붙여주고 친구처럼 다가갔던 여러 해의 노력이 인(因)이 되고 그날 그 침팬지와의 만남이 연(緣)이 되어 이루어진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 침팬지는 흰개미 둥지의 붉은 흙무더기에 앉아서 구멍 속으로 풀줄기를 반복해서 찔러 넣고 있었다. 잠시 후 그것을 조심스럽게 꺼내서 무언가를 한 마리씩 입속으로 털어 넣었다. 이따금은 새 풀을 주워서 사용했다.”

“며칠 후 나는 도구를 사용하는 행위를 다시 관찰했다. 잎이 무성한 작은 가지를 주워서 어떻게 잎을 떼어내는지 똑똑히 보았다. 그것은 물체를 변형하는 일이었다. 즉, 조잡한 도구 제작의 시작이었다. 나는 내가 본 것을 믿기 힘들었다. 우리 인간만이 도구를 제작하고 사용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존재라는 것이 오랫동안의 정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런 사실을 발표하자,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장면을 찍은 사진들이 진실을 입증하는데도, 일부 과학자들은 “침팬지에게 흰 개미 낚는 방법을 가르쳤음이 분명하다”는 말까지 했다.

구달은 차가운 과학자가 아니었다. “비가 내릴 때 숲 속에 앉아서 나뭇잎 위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듣는 것을 좋아했으며, 저녁 무렵 초록색과 갈색의 어슴푸레한 세계와 부드러운 회색 공기에 둘러싸여 있는 완전히 고립된 느낌”을 좋아했다. 이런 감성을 갖고 있었기에 야생 침팬지에 다가갈 수 있었고,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으리라.

그는 말이 끊어진 자리의 진실을 체득한 인물이기도 하였다. “말을 버렸을 때 다가오는 새로운 깨달음을 말로 묘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말은 경험을 풍부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또한 많은 것을 빼앗아 가버리기도 한다.…잠시 동안 그것을 포기하면 직관적인 자아가 좀 더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선가에서 내세우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을 숲 속에서 깨달았던 것이다.

그가 침팬지들의 잔인한 공격성을 관찰하여 발표하자 과학자들은 “인간 공격성의 본질에 대해 자신들이 좋아하는 이론을 입증하거나 반박하기 위해서 침팬지들을 이용하거나 무시했다.”

하긴 침팬지들도 “돌과 막대기를 집어던진다. 침팬지가 총과 칼을 가지고 있고 그것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안다면, 인간들처럼 사용할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바 없다.” 그러나 “그들이 인간적인 의미의 잔인성에 도달하지 못한 것은 확실하다. 오직 인간들만이 자기가 가하는 고통을 알면서도 혹은 심지어 알기 때문에 살아 있는 생물에게 의도적으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준다.” 그래서 구달은 “오직 우리 인간만이 악마가 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구달은 인간만이 “고결하고 관대한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도 갖고 있다”고 믿기에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 희망을 일구기 위해 젊은이들에게 “자연 자원을 보호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알려주는 책을 더 많이 쓰겠다고 다짐한다.

이병두 문화체육관광부 종무관

[1293호 / 2015년 5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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